[수필 톡] 그까짓 게 뭐길래

  • 오피니언
  • 여론광장

[수필 톡] 그까짓 게 뭐길래

남상선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 승인 2019-08-30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아침 날씨치고는 유난스레 후텁지근하더니 맑기만 하던 하늘이 제법이나 무게감 있는 먹구름으로 소나기 한 줄금을 시원스럽게 쏟아 부었다. 느닷없이 내린 소나기라 피할 겨를도 없었다. 입은 채로 세탁비 목욕비를 들이지 않고 사우나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입은 채로 빨아서인지 후줄근한 빨래 감은 줄은 게 하나도 없었다.

불쾌지수 높은 하늘의 후텁지근한 날씨에다 지인 형님으로부터 들은 얘기까지 마음 무겁게 하는 것이어서 찌근덕거린 날씨는 더욱 사람의 힘을 빠지게만 했다.



명문고 명문대를 나왔다고 하는 친구 4인방은 자기들 깐에는 오랜 교류로 시간 날 때마다 등산도 같이 하며 식사 자리도 자주 갖는 소위 친하다고 하는 사람들이었다. 거기다 애경사가 있을 때는 보통사람들과는 달리 서로가 도와주고 잘 챙겨주기까지 하는 분들이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갑자기 허약 체질로 지병 중에 있던 친구 한 사람이 세상을 뜨게 되었다.



미망인 되는 부인은 유산이나 연금 한 푼 없는 어려운 살림이라 몸소 자신이 일을 하지 않으면 먹고 살기가 어려웠다. 그리하여 남의 집 파출부나 아기 보는 일을 비롯해서 돈 되는 일이라면 뭐든지 가리지 않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생활이었다.

그런데 4인방 친구 중 한 사람이 아들 결혼이 있었는데 미망인은 남편의 친구 혼사를 챙기지 못했다. 남의 집 일을 하느라 예식장에 가지도 못했을 뿐더러 축의금 봉투도 신경을 쓰지 못했다. 워낙 살기가 어려웠던 모양이었다.

예식이 끝나고 한 달쯤 된 어느 날 혼사를 치른 남편의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은 미망인은 영문도 모르고 약속 장소에 나갔는데 어안이 벙벙한 쪽지 한 장을 받게 되었다.

남편의 친구가 건네준 쪽지에는 다음과 같은 청구액이 꼬박고박 적혀 있었다.

청구서

1. 2010년 10월 8일 장남 결혼 5만원

2. 2012년 3월 9일 딸 결혼 10만원

3. 2014년 9월 28일 차남 결혼 5만원

4. 2015년 3월 9일 김돌쇠(미망인 남편) 부의금 10만원

계 30 만원

이자는 그만두고 원금만 1주 이내 2016년도 4월 16일까지 돌려주시오.

미망인은 그걸 보는 순간 그 쪽지를 건네준 사람이 정말 남편의 친구가 맞는지 의구심까지 생겼다. 얼떨떨하여 믿겨지지가 않았다. 소설에서나 있을 법한 일을 몸소 당하는 느낌이어서 미망인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까짓 돈이 뭐길래!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돈만 챙기려는 남편의 친구, 가슴 없는 남자가 야속했다. 세상을 돈으로만 거래하려는,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무쇠로 만든 기계인간에 환멸감까지 생겼다.

아니, 남편의 친구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부끄럽고 창피하였다. 자격지심과 비애감으로 눈물이 앞을 가렸다.

돈만 있으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세인의 의식구조에 마음 한 구석이 후벼 파이는 아픔이었다.

요새는 신문방송 접하기가 꺼려진다. 아니, 신문 읽고 TV 시청하기가 끔찍스러울 정도다.

삭막한 현실이라 하지만 노름빚 때문에 자식이 아비를 살해하는 세상이니 이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한단 말인가?

부모의 유산 상속문제로 초상 중에서까지 형제간 피 터지는 싸움을 하는 현실이니 이 누구를 탓해야 한단 말인가?

말만 친구이지 우정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돈의 노예, 글의 주인공 같은 사람도 있으니 이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돈, 그까짓 게 뭐길래 천륜도 저버린단 말인가!

돈, 그까짓 게 뭐길래 친구도 우정도 종이쪽지처럼 버린단 말인가!

돈, 그까짓 게 뭐길래 한 어머니 젖으로 자란 형제자매가 돈밖에 안 보인단 말인가!

우리는 돈보다, 세상의 어떤 보물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다는 걸 알아야겠다.

억만금으로도, 어떤 보물로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 있다는 걸 알아야겠다.

사람은 사람냄새를 잃으면 짠 맛을 잃은 소금이나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돈 그까짓 게 뭐길래!

우리 사람의 가슴이 냉혈 가슴이 되어 사람 냄새 없는 짐승으로 살아야 한단 말인가!

돈이나 황금덩이보다는 우리 힘들고 어려울 때 너와 나 손 잡고 같이 힘내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

돈 많은 짐승으로 살지 말고 부족해도 따뜻한 가슴으로, 사랑으로, 서로 위로하며 너와 내가 아닌 우리로 살아야 한다.

돈, 그까짓 거 때문에 눈이 멀어 부모형제도, 친구도 알아보지 못하는 장님으로 살지 말아야 한다.

정작 소중한 것, 보아야 할 것을 제대로 챙기고 살아야 한다.

남상선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남상선210-수정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천안법원, 정차 차량 들이받고 도주한 40대 여성 '징역 1년 6월'
  2. 천안시의회 박종갑 의원, 경로당 안마기기 구매 과정 점검 필요성 제기
  3. 천안시의회 노종관 의원 대표발의, '천안시 지역생산품 구매촉진 및 판로지원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본회의 통과
  4. 행복청, 2026년 4월 중앙동 전진 배치...행정수도청 시동
  5. 국립한밭대 교수 연구팀, 데이터센터 설비인프라 연구 성과 입증
  1. 충남콘텐츠진흥원 지원기업, 데이터 창업대회 대통령상 쾌거
  2. 대전·충남 행정통합 탄력받나… 李대통령 "모범적 통합" 언급
  3. 백석대 상담대학원, 서울보호관찰소와 교류협력을 위한 업무협약 체결
  4. 연암대 연합팀 '7DO', 충청·강원권 공유·협업 창업 아이디어 경진대회 대상
  5. 한밭새마을금고, 취약계층 위한 성금 1000만 원 기탁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탄력받나… 李대통령 "모범적 통합" 언급

대전·충남 행정통합 탄력받나… 李대통령 "모범적 통합" 언급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이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전·충남 행정통합에 대해 긍정적으로 언급하면서다. 김태흠 충남지사와 이장우 대전시장은 이 대통령의 긍정적 반응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히며 행정통합 법안 처리에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 이 대통령은 5일 충남 천안 한국기술교육대학교에서 '첨단산업의 심장, 충남의 미래를 설계하다'라는 주제로 열린 타운홀미팅에서 '5극 3특' 체제를 거론하며 "지역 연합이 나름대로 조금씩 진척되는 것 같다"면서도 "협의하고 협조하는 수준이 아니라 대규모로 통합하는 게 좋다고 생..

충남도, 당진에 2조 원 규모 `AI데이터센터` 유치
충남도, 당진에 2조 원 규모 'AI데이터센터' 유치

충남도가 2조 원 규모 AI데이터센터를 유치했다. 김태흠 지사는 4일 도청 대회의실에서 오성환 당진시장, 안병철 지엔씨에너지 대표이사, 정영훈 디씨코리아 대표이사와 당진 AI데이터센터 건립을 위한 투자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 따르면, 지엔씨에너지는 당진 석문국가산업단지 내 3만 3673㎡(1만 평) 부지에 건축연면적 7만 2885㎡ 규모로 AI데이터센터를 건립한다. 이를 위해 지엔씨에너지는 디씨코리아 등과 특수목적법인(SPC)을 구성하고, 2031년까지 2조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지엔씨에너지는 이와 함께 200여 명의 신규 고용..

11월 전국 민간아파트 평당 분양가 2797만 원 달해
11월 전국 민간아파트 평당 분양가 2797만 원 달해

전국 민간아파트 ㎡당 평균 분양가가 사상 처음으로 800만원을 넘어섰다. 평당(3.3㎡) 분양가로 환산하면 2797만 원에 달했다. 5일 리얼하우스가 청약홈 자료를 분석한 결과, 11월 전국 민간아파트 ㎡당 평균 분양가격은 827만 원이다.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최고치로 1년 새 6.85% 올랐다. 전국 ㎡ 당 분양가는 지난 2021년 530만 원에서 2023년 660만 원으로 오른 데 이어 2024년에는 750만 원까지 치솟았다. 올해 들어 상승 흐름은 더 빨라져 9월 778만 원, 10월 798만 원, 11월 827만 원으로..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충남의 마음을 듣다’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 ‘충남의 마음을 듣다’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

  • 2026학년도 수능 성적표 배부…지원 가능한 대학은? 2026학년도 수능 성적표 배부…지원 가능한 대학은?

  • ‘추울 땐 족욕이 딱’ ‘추울 땐 족욕이 딱’

  • 12·3 비상계엄 1년…‘내란세력들을 외환죄로 처벌하라’ 12·3 비상계엄 1년…‘내란세력들을 외환죄로 처벌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