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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어귀에는 농협에 신청한 퇴비가 도착하여 한보따리 짐을 풀고 있다. 농사는 미리미리 준비해야 하다 보니, 코로나19든 뭐든 상관없이 돌아간다. 예전에 없던 풍경은 마스크로 얼굴을 감싸고 있는 농민들이다. 그들의 얼굴에 시름이 깊다. 시골의 삶은 도시와 연결되어 있다. 도시 경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번 코로나19로 경기가 침체일로라 하니 앞으로 농산물 소비가 걱정될 수밖에….
모든 체계를 갖춘 역사의 모델들은 흔히 4단계 발전을 한다고 한다. 농업도 하나의 체계를 갖춘 모형이다. 보통 1단계는 전통적인 경작중심의 생산형 농업이다. 농민은 생산만 하고, 판매는 농협이나 청과물 회사가 대신하는 구조이다. 2단계는 정치형 농업으로 농업환경 개선을 위한 농민운동을 예로 들 수 있다. 요즘 같으면 농민수당 요구와 같은 것인데 집단의 힘으로 농업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3단계는 경영형농업이다. 소비자에게 효율적으로 농산물을 판매하려는 기업적 마인드를 가진 자본주의형 농업이다. 4단계는 문화형 농업이다. 농촌체험관광사업이나 도농교류, 경관농업, 전통문화와 결합한 슬로우시티나 슬로우푸드 운동 등 농업의 범주를 넓혀 다각적인 사업화를 추진한다. 이제 한국도 6차 산업이란 이름으로 4단계로 진입했고, 성공한 사례도 곧잘 나온다.
내 주위에 귀농하신 분 중에는 이런 6차 산업에 눈을 떠서 관광농원을 운영하면서, 교육체험농장으로 지정받고, 도시 소비자와 직거래로 농산물을 파시는 분들이 있다. 전통 농업을 고수하는 분들은 농산물을 공판장에 내 놓고 반값을 받지만, 이런 분들은 소비자에게 직접 팔기 때문에 제값을 다 받는다. 이렇듯 귀농귀촌인이 들어오면서 농촌사회가 점점 변화를 추구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 역시 한계는 있다. 인구 감소로 인한 지역 소멸 위기가 바로 그 한계이다.
내가 온 5년 전에는 순창군도 인구 3만 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실제 거주 인구가 2만 5천 명 정도라고 한다. 이 정도면 국고 낭비를 막는 차원에서 공무원 수도 줄이고, 다른 시군과 통합하는 게 맞지만 이쪽 유지들은 생각이 다를 것이다. '붉은 여왕 가설'(계속해서 발전하는 경쟁 상대에 맞서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발전하지 못하는 주체는 결국 도태된다는 가설. '붉은 여왕의 달리기' 혹은 '붉은 여왕 효과'라고도 한다)이란 말이 있다. 루이스 캐럴의 소설 '거울 나라의 엘리스' 속에 나오는 붉은 여왕이 엘리스에게 이런 말을 한다.
"여기선 힘껏 달려야 제자리야. 만약 앞으로 가고 싶다면 지금보다 두 배는 더 빨리 달려야 해."
순창군을 유지하려면 제자리에서 힘껏 달리든가 더 빨리 달려 다시 인구를 늘일 수 밖에….
요즘은 '도시재생사업'이란 명목으로 몇 백억 원의 농촌개발 자금이 내려오고 있다. 순창군도 도시재생사업으로 순창읍 정비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낙후한 시설을 정비하고 도시청년을 끌어들이는 일거리 창출과 관광자원을 개발한다는 방침이다. 군 입장에서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일테지만, 자칫 오라는 도시청년은 오지 않고, 세금만 축내는 사업으로 전락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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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농업이 아니더라도 이런 문화예술활동이나 크레이티브한 활동을 뒷받침할 수 있는 논의가 먼저 있어야 한다. 나는 몇 백 억원을 들여 읍정비사업을 할 것이 아니라 순창읍 인근에 청년예술가를 위한 대규모 공예미술타운을 새롭게 조성해 줄 것을 부탁하고 싶다. 이 타운 안에 순창의 어메니티를 살린 예술의 거리를 만들어 젊은 창작자들을 지원했으면 한다. 이제는 자연과 예술이 결합상품으로 묶인 곳에 관광객도 몰리고 일자리도 생긴다. 농업으로 청년세대를 끌어들인다는 발상보다 이제는 시골문화를 재창조해 청년을 끌어들인다는 역발상을 해야 할 때이다. 이것이 군에서 도시재생사업으로 추진해야 할 진정한 4단계 문화형 농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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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원고택은 지상의 한옥과 지하의 현대미술관으로 공간이 분할된다. |
봄, 다시 보다
by 김재석
논두렁 밭두렁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쑥을 캐는 여인들
한 폭의 그림에 담겨 손 안 액정으로 다시 보다
다시, 봄
물감에 밴 쑥들이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는 따스한 봄날
시골을 담은 예술로 쑥쑥 자라며 퍼져가는 인드라망
다시, 바라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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