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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기의 행복찾기] 의식(意識)과 무의식(無意識)의 경계에서…

박광기 대전대학교 대학원장,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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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9-08-30 00:00 수정 2019-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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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음을 의식하고 사는 사람은 아마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삶을 사는 것'을 의식의 범주에서 항상 인식하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과도 같습니다. 물론 인간이 삶을 산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냥 무의식 속에서만 사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삶의 시간을 살펴보면 의식하지 않고 사는 것이 대부분이고, 일부러 인식의 범주에 포함시켜 삶을 인식하며 사는 시간은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와 같은 질문을 포함해서 공부를 하고, 직업을 택하고,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을 택하는 것 등은 물론 삶을 사는 의식의 범주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루의 일상, 또는 그렇게 지나가는 하루하루의 일상이 쌓여 지나가는 시간은 대부분 의식하지 않거나 못하는 무의식의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상의 대부분의 시간이 무의식의 연속에서 그냥 흘러가는 시간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때때로 의식적으로 어떤 행위를 하거나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같은 행동이나 행위라고 하더라도 어떤 경우에는 의식적으로, 또 다른 경우에는 무의식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잠을 자는 것'을 보더라도 무의식적으로 그냥 피곤하고 졸려서 잠을 자는 것과 다음 날 해야 하는 일을 위해 의식적으로 잠자리에 드는 경우는 같은 '잠을 자는 행위'라고 해도 의식과 무의식의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느끼는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는 잠을 자는 것이나 밥을 먹는 것과 같은 인간의 본능적인 것에만 국한되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정의(正義)에 대한 판단이나 불의에 대한 저항 등과 같은 가치판단이 필요한 것조차도 어떤 경우에는 의식적으로 또 어떤 경우에는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물론 이와 같은 가치판단이 필요한 것들은 평소 살면서 가져온 그 사람의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 판단의 기준이 되는 요소들에 따라서 달라질 수는 있지만 말입니다.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는 참 모호합니다. 그러나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가 모호한 것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사는 일상의 생활이 모두 의식의 범주에서 24시간을 의식 속에서 산다고 하면, 아마도 우리는 정말 피곤하고 답답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먹고, 마시고, 잠을 자고, 일을 하는 모든 행위를 의식적으로 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 합니다. 또한 우리가 의식적으로 하는 행위나 행동이 반드시 옳고 성공적인 것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아무리 의식적으로 계획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잘못된 의식적인 판단에 따른 행위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하고 또한 행위의 과정에서 실수도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삶을 모두 의식적으로 산다는 것은 아마도 불가능 할 것입니다.

그러나 무의식으로 산다는 것이 바람직한 것도 아닙니다. 무의식적으로 어떤 행동이나 행위를 하거나, 어떤 인물이나 사안에 대하여 평가나 판단을 하는 것은 자칫 잘못된 편견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무의식적인 행동이나 행위, 그리고 잘못된 편견은 의식적인 범주의 판단이나 평가 및 방향성을 결정함에 있어서 실수나 오류 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동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와 한계, 그리고 범위를 보다 명확히 인지하고 모든 행위나 행동을 포함한 삶의 내용을 나름대로 분류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물론 명확히 의식과 무의식을 구분하여 경계를 짓고 분류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도 하고 반드시 그렇게 구분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대략적인 경계를 구분하는 것이 삶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는 기준이 될 것입니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구분하는 것이나 의식과 무의식의 인식이나 인지하기 위해서는 소위 '이성'(理性)이라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성'은 소위 '감성', 또는 '감정'과 구분되는 것으로 합리적이고 개념적인 사유를 통해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성' 역시 의식과 무의식과 같이 '감성'이나 '감정'과의 구분이 명확한 것 같으면서도 구분이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이성적인 사고'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인간의 삶에서는 감성에 따른 판단이나 행동을 제어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고, 또 다른 측면에서 '이성적'인 것보다는 '감성적'인 것이 훨씬 '인간적' 일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때때로 이성적인 냉철함보다는 감성적이고 인간적인 따뜻함이 배려와 용인 또는 허용과 같은 인간의 삶에 필요한 긍정적인 가치를 가져다 줄 수도 있습니다.

얼마 전 어머님이 돌아가셨지만, 아직도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헤매고 있습니다. 이성적으로 그리고 의식에서는 분명히 어머님은 아버님 곁으로 가셨지만, 무의식의 세계에서는 아직 여기 계신 것만 같습니다. 어머님이 살아계실 때, 최소한 하루 두 번 이상 전화를 드려 안부를 묻던 무의식적 행동의 연장선에서 불현 듯 전화기를 꺼내 들기도 하고, TV에서 어떤 장면이 나오면 무의식적으로 어머님을 떠올리기도 하니 말입니다. 예상하지 못하고 갑작스러운 어머님의 서거는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충격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이런 충격은 누님에게는 더 큰 고통으로 다가온 것 같습니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 가슴이 조여 오는 심한 통증으로 누님이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고, 공황장애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아마도 무의식의 경계가 의식의 경계를 침해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그리고 의식적으로 어떤 상황을 인지하고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인간의 감성이나 감정에 의한 무의식의 세계를 모두 이해시키고 합리화 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인간은 의식적이고 또한 합리적인 이성적 사고로는 이해되지 않는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또 다른 세계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의식에 따른 냉철하고 다소 비인간적인 세계가 갖지 못한 인간적인 감성을 자극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인간적인 세상을 만들어 가는 동력이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갑작스럽게 어머님이 돌아가심으로 인해 생긴 의식과 무의식의 모호한 경계를 극복하기가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그리고 늘 함께 계실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당연함이 의식의 세계에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직도 무의식적으로 어머님을 그리워하고 추억하는 것도 '시간'이라는 것이 지나고 나면 다소 나아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추억을 그리워하는 감성으로 이번 주말 아버님과 어머님 묘소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행복한 주말되시길 기원합니다.

대전대학교 대학원장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광기 올림

박광기교수-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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