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고 유익한 내용으로 독자들에게 사랑받은, 추억의 코너를 되살려보기 위해 ‘송교수의 재미있는 우리말 이야기’ 시즌 2를 시작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변함없는 성원과 관심을 부탁드립니다.<편집자 주>
▲ TV프로그램 '문제적 남자' 화면 캡쳐 |
▲ TV프로그램 '문제적 남자' 화면 캡쳐 |
인색하고 얄미운 행동을 일삼는 사람을 깍쟁이라고 한다. 이 깍쟁이는 깍정이가 변해서 된 말이다. 이 깍정이는 본래 조선시대 청계천 가에 조성된 이른바 조산造山에서 살면서 구걸을 하거나 무덤을 옮겨 장사를 지낼 때 방상시方相氏 같은 행동을 하던 무뢰한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여기서 방상시란 원래는 악귀를 쫓는다는 신으로서 곰의 가죽을 들씌운 큰 탈에다 붉은 옷에 검은 치마를 입고, 금빛의 눈이 2~4개이고 창과 방패를 가졌다고 한다.
이 방상시는 처음에는 무덤 속, 즉 광중壙中의 악귀를 쫓는다는 목적으로 쓰였는데 그 뒤에 임금의 행차나 사신의 영접, 그리고 궁중의 행사 등에서 악귀를 쫓는 역할을 맡은 사람을 총칭해서 사용했던 것이다. 그것이 근래에는 장례 행사에서 무덤 속에 있는 악귀를 쫓는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한정하여 쓰이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러한 방상시와 같은 행동을 하는 무뢰한들을 지칭하던 말이 그 뒤 점차 그 뜻이 축소되어 이기적이고 얄밉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변하여 쓰이게 되었다.
깍쟁이패의 유래는 조선조 초기의 태조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조 태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한 뒤에 중범자들은 여러 참수형斬首形: 목을 베는 형벌이나 능지처참형陵遲處斬形: 머리, 손, 발, 그리고 몸을 토막 치던 극형 등 여러 형태로 사형에 처하고, 경범자輕犯者들은 얼굴에 먹으로 죄명을 새긴 다음에 석방하는 이른바 경을 쳤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얼굴의 흉터 때문에 사회생활을 온전히 할 수 없는 그들 전과자들은 끼리끼리 모여서 살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들이 모여 살던 곳이 바로 지금의 청계천 근처였다.
당시에 청계천에 흘러들어온 모래와 흙이 많아 이것을 긁어모아 산을 만들었는데 이처럼 인공적으로 만들었다고 하여 그 산을 조산이라 불렀던 것인데, 그들은 이 조산에다 굴을 파고 함께 살았다. 그 토굴에 사는 땅꾼들은 서로 패거리를 지어서 큰 잔칫날이나 명절날 등에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거지생활을 했고, 때로는 생계를 위해서 뱀을 잡아다 팔기도 했다.
그런 생활을 하는 가운데도 그들 중에서 돈을 많이 모아서 장사를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상사용품을 파는 장의사를 차렸다. 이처럼 청계천변의 조산에 살면서 거지생활을 하거나 장의사를 하면서 방상시와 같은 무뢰한 행동을 일삼는 사람을 깍쟁이라 불렀는데 그 뜻이 차츰 변하여 앞서 말한 것처럼 인색하고 이기적이며 얄미운 행동을 하는 사람을 깍쟁이이라 일컫게 되었다.
/송백헌 충남대 국문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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