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살롱] 비닐봉지 속에 담긴 정체성을 찾아라

  • 문화
  • 백영주의 명화살롱

[명화살롱] 비닐봉지 속에 담긴 정체성을 찾아라

[백영주의 명화살롱] 개빈 터크_비닐봉지

  • 승인 2016-11-09 18:06
  • 백영주 갤러리 '봄' 관장백영주 갤러리 '봄' 관장
▲비닐봉지(Bag), 2000, 터크
▲비닐봉지(Bag), 2000, 터크


슈퍼마켓에 가서 “봉지에 싸 주세요”라고 부탁하면 가장 자주 받는 검은 비닐봉지. 오랫동안 썩지 않아 환경파괴의 주범이라 불리기도 하지만 휴대가 간편하고 무거운 짐을 실어도 튼튼하게 버텨주는 덕에 여전히 일상 속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이런 잇 아이템(?)을 현대미술가들이 놓칠 리 없었다. 그중 제일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품은 개빈 터크의 <비닐봉지>였다.

영국 현대미술의 주역인 YBA의 대표 작가 개빈 터크는 <비닐봉지> 연작 이외에도 앤디 워홀과 자신의 얼굴을 합성한 초상화, 말라비틀어진 사과, 항상 기발한 오브제들로 자신의 정체성과 예술의 가치, 이 세계에 대한 의문을 제시해 왔다.

그는 데뷔초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1991년 런던의 왕립미술학교(Royal College of Art)를 졸업하며 ‘개빈 터크, 조각가, 여기서 작업하다 1989-1991’라고 쓰인 둥근 기념패 만 달랑 설치해 교수들로부터 맹비난을 받은 적도 있다.

다소 건방져 보이는 졸업작품 때문에 이 대학 역사상 최초로 학위를 받지 못하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그러나 본인은 이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대학시절이 막 끝났음을 알리는 동시에, 아티스트로써 이제 예술의 본질을 파고들 때가 왔음을 알린 신호탄이었다. 이 작품은 교수들에겐 외면받았지만 미술계에서 단연 주목을 끌었고, 아트 딜러였던 제이 조플링의 눈에 띄어 YBA 중심작가로 도약할 수 있었다.

▲cave, 2000, 터크
▲cave, 2000, 터크


개빈 터크의 <비닐봉지>는 보이는 것처럼 진짜 쓰레기 봉지가 아니라 채색된 청동 조각이다. 서구 사회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커다란 검정 비닐봉지가 ‘쓰레기 봉지’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불법으로 버리는 음식물 쓰레기를 자주 검은 비닐봉지에 버린다. 그래서 꽉 찬 비닐봉지는 소비주의 사회와 환경에 대한 관심의 부재, 그리고 변하는 개인의 충성도 등의 상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청동조각은 실재에 대한 환영을 강조하고, 눈을 속이며, 과거의 미술, 특히 바로크 시대에 찬양된 트롱프뢰유 회화를 상기시킨다. 개빈 터크는 사람들이 버리는 것과 미술관에 전시하는 것이 우리의 문화를 정의한다고 믿는다. 이 작품으로 그는 미술관의 진지함을 비웃는다.

터크는 사람들이 익숙한 사물과 어떻게 관련되는지, 그리고 왜 어떤 물건을 소중히 다뤄지고 어떤 물건은 경시되는지에 대해 고찰했다. 사실 어떤 미술품은 우상화되고, 다른 것은 무시되는 이유를 고찰하는 것이 그의 주요 관심사였다. 전시되었을 때, 사람들은 미술 작품임을 깨닫지 못하고 이 작품을 지나갔다고 한다. 터크는 비닐봉지를 다양한 버전으로 제작하고 여러 미술관에 전시했는데, 대체로 무례하고 모멸적인 대접을 받았다. 바로 이것이 작가가 기대한 것이었다.

<비닐봉지> 연작 이외에도 다양한 설치, 평면, 조각 작업을 통해 저자성, 진위성,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이슈를 제기해온 터크는 현재에도 남다른 재치와 참신한 비주얼을 무기로 정체성, 팝 문화, 예술의 가치와 본질에 대해 신랄한 의문을 던지며 독특한 개념미술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다.

백영주 갤러리 '봄' 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민주당 절반의 성공·국힘 예상외 선전… 내란청산·정권심판 팽팽
  2. 대전 지방선거 당선자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조문
  3. 해수부, 중국과 해운 회담으로 현안 합의
  4. 천안 수신멜론축제 6~7일 개최
  5. 해양사고 선박의 30%, 기존 행위 반복… 예방책 없나
  1. 천안의료원, 아산 더골든케어요양원과 MOU 체결
  2. 천안법원, 주차장서 음주측정요구 거부한 혐의 40대 남성 징역형
  3. 한기대, 산업현장 문제 해결 초점 졸업연구작품전시회 '주목'
  4. 새벽에 뒤집힌 대역전극 환희와 눈물이 교차했던 대전교육감 당선 순간
  5. 백석문화대, K-뷰티 실무 인재 육성을 위해 (사)대한미용사회중앙회와 MOU 체결

헤드라인 뉴스


[한화에어로 참사] "더는 일터서 목숨 잃지 않길"…합동분향소 발길

[한화에어로 참사] "더는 일터서 목숨 잃지 않길"…합동분향소 발길

"타지에서 일하는 아들 생각 나서 더 마음 아파요." 5일 오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사업장 사고 희생자를 애도하기 위해 유성구청 1층 로비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한 시민은 이같이 말했다. "20대 희생자도 있다는 사고 소식을 접한 후 생산직에서 근무하는 아들이 걱정됐다"라며 "남 일 같지 않다. 젊은 청년들이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 일은 더는 없으면 한다"고 전했다. 지난 1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사업장에서 폭발과 함께 화재로 근로자 5명이 숨지고 2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유성구청은 오는 25일까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400년 전 절절한 사부곡(思婦曲)…당진시 `안민학 애도문` 국가보물 승격 추진
400년 전 절절한 사부곡(思婦曲)…당진시 '안민학 애도문' 국가보물 승격 추진

당진시가 20대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아내를 향한 남편의 애틋한 사랑이 담긴 충남도 유형문화재 제243호 '안민학 애도문 및 백자명기'를 국가 지정 문화유산(보물)으로 승격시키기 위한 절차에 나선다. 시는 6월 5일 충남도 문화유산 안민학 애도문의 국가지정(보물) 승격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2018년 도지정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안민학 애도문은 안민학 선생이 부인을 여의고(1576년 5월 10일 병자년) 관에 넣은 부장품으로서, 한글로 쓰인 16세기 애도적 내용의 편지다. 애도문은 1978년 소유자가 14대 조모인 현풍 곽씨 묘를 충..

제1회 섬비엔날레, 개막 300일 앞으로…24개국 70여 명 작가 참여 전망
제1회 섬비엔날레, 개막 300일 앞으로…24개국 70여 명 작가 참여 전망

2027년 4월 3일 개막을 목표로 준비 중인 제1회 섬비엔날레가 300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충청남도와 보령시가 공동 설립한 섬비엔날레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가 행사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조직위는 2026년 3월 종합운영계획을 수립해 전시, 행사 운영, 홍보, 교통·숙박, 안전관리 등 분야별 실행체계를 구체화했다. 4월에는 관계기관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해 협력 기반을 마련했으며, 5월에는 자문위원을 위촉해 전문가 의견 수렴 체계도 갖췄다. 전시 분야에서는 24개국 70여 명의 참여 작가 섭외와 작품 콘셉트, 설치 위..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 지방선거 당선자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조문 대전 지방선거 당선자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조문

  • 지방선거 끝…선거벽보 철거 지방선거 끝…선거벽보 철거

  • 분주한 개표소 분주한 개표소

  • 허태정 대전시장 후보 당선 ‘확실’ 허태정 대전시장 후보 당선 ‘확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