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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 떠나가는 새벽열차 대전 발 영시 오십분 ~ 세상은 잠이 들어 고요한 이 밤 나만이 소리치며 울 줄이야 ~ 아, 붙잡아도 뿌리치는 목포행 완행열차 ~”
1956년에 발표된 안정애의 <대전 부르스>다. 지하철을 타고 대전역에서 하차할 즈음이면 이 노래가 흘러나오는데 여전히 귀에 착착 감겨서 좋다. 조용필도 이 노래를 다시 불러 화제가 되었는데 <대전 부르스>를 들을 적마다 느끼는 바가 있다.
그건 바로 새삼 그렇게 내가 살고 있는 이곳 대전에 대한 사랑의 감도가 여전히 짙고 뭉클하다는 사실이다. 대전으로 이사를 온 건 예전의 직장에서 근무지 조정이 된 때문이었다. 당시 아들은 생후 백일이 갓 지났는데 따라서 이사를 올 때 아들은 아내의 등에 업혀서 왔다.
이듬해 소장으로 승진을 했고 두 해가 더 지나선 딸을 보았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동네선 제일 먼저 최고급 승용차를 ‘뽑았다’. 그리곤 주말과 휴일이면 아이들을 태우고 대전의 이곳저곳을 원없이 유람(遊覽)했다.
대청호를 시작으로 계룡산까지. 그중엔 보문산과 계족산, 식장산 외에도 대전동물원(현 대전오월드의 전신)과 회덕의 동춘당과 가양동의 남간정사 등 문화재 역시도 포함되었음은 물론이다.
비래동의 옥류각을 여름에 찾으면 짜증스런 무더위를 일거에 날릴 수 있었으며 만인산의 자연휴양림을 거닐면 스트레스까지 해소되어 참 좋(았)다. 세종시가 올 연말이면 30만 명에 육박하는 인구 증가세를 기록할 거라고 한다.
이러한 주장에 ‘걸맞게’ 지인 중 여러 명이 세종시로 이사를 갔다. 때문에 혹자는 세종시의 오늘날 번영은 대전 인구를 빨아들인 ‘빨대효과’라고 지적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의 대전사랑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사통팔달의 탁월한 접근성과 교통 환경은 논외로 치더라도 전국에서 가장 저렴한 가격과 없는 것 없이 모두 갖춰진 중앙시장과 같은 전통시장은 주머니가 가벼운 서민일지라도 언제든 부담 없이 찾을 수 있어 좋다.
대전은 ‘교육도시’로도 소문이 짜하다. 사견이지만 아들과 딸이 모두 소위 명문대와 일류대를 졸업한 건 오로지 대전이라는, 교육에도 강한 지역적 특수성의 덕을 톡톡히 봤다는 느낌이다.
때문에 지금도 필자가 느끼는 나름 대전의 비유(比喩)는 ‘대전(大田)의 미래는 여전히 전도양양(前途洋洋)하다’를 조합하여 또 다른 ‘대전’이란 사실을 강조코자 한다.
1956년 발표 당시 대전 발 영시 오십분 열차는 이별의 말도 없이 냉큼 떠나갔을지 몰라도 지금의 대전역(열차)은 전국각지서 찾아오는 관광객들만으로도 마치 뜬돈(어쩌다가 우연히 생긴 돈)을 얻은 양 그렇게 충분히 흐뭇하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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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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