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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천식 행정학 박사·도시공학박사 |
'내 삶의 주인공은 누구입니까?', '내게 운명이 존재한다면 그 무엇으로부터 주어지는 겁니까?or 스스로 선택하는 겁니까?'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며 아직도 현대철학사에 깊은 여운을 남기고 있는 플라톤(plato)은 운명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스스로 골라잡는 것이라고 했다. 책임은 고른 사람에게 있다. 신에게는 어떤 책임도 없다. 플라톤 의 국가- 플라톤의 주장을 빌리면 이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모순과 부조리, 자신에게 닥치는 불운과 악재를 절대적 존재에게 전가하는 것은 헛되고 헛된 일이라고 한다. 올해의 엄청난 불볕더위를 사람의 의지와는 무관한 자연현상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자연 재해를 피할 수 없고 고스란히 겪어내야 한다. 그것을 운명이라고 정의한다면 운명은 절대로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그 무엇이 된다. 그러나 운명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라면 사건과 상황을 맞이하는개인에 따라 반응과 해석이 달라지고 대응도 상이해진다. 우리는 불볕 더위를 피해 피서여행을 갈 수도 있고, 에어컨을 온 종일 틀어댈 수도 있으며 이열치열의 어떤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선택하는 운명이다. 플라톤이 선택할 수 있다는 운명도 바로 이것이다.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지만 개천에서 난 그 무엇이라도 저절로 용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그렇게 된 것은 선택과 실천이 따랐기 때문이다.젊어 고생은 사서 하라고 합니다만 젊어서 고생했다고 누구나 말년이 행복한 것은 아니다. 지금의 내 모양 내 꼬라지를 가정 환경이나 나라 탓만을 하고 있는 사람은 운명을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는 언제나 자신 아닌 외부에서 자신의 불운과 침체의 원인을 찾아낸다. 그는 운명의 노예이고 운명에 끌려 다닌다. 그는 자신의 소중함이나 가치조차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을 부정하는 사람이다.
플라톤을 이야기했으니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이야기도 해야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에서 키네시스(kinesis)와 에네르게이야(Energeia)의 개념을 거론하고 있는데 인생의 의미를 이러한 분류에 따라 해석할 수가 있을 것이다. 키네시스는 목적과 목표달성이 최우선이고 과정은 중하지 않다. 에네르게이아는 지금 이 순간 하고 있는 이 자체를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당신도 살아가면서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어디에서 어디까지이며 얼마 만큼 이루어져야 한다는 목표설정과 달성이 중요한 키네시스적 삶일까,아니면 매 순간 순간 일어나는 행위와 과정에 집중하고 만족하는 에네르게이아적 삶일까. 인생을 목적 달성을 위한 긴 여정으로 바라보는 통념적 관점과 예상할 수 없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알기에 현재에 충실해야한다는 대립된 관점의 충돌로 볼 수도 있다. 목표가 이루어지는 내일을 위해 현재 누릴 수 있는 모든 만족과 즐거움을 포기할 것인가와 지금 이 순간 하고 싶은 일에서 기쁨과 재미를 누려야한다는 대립도 있을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만의 삶을 살아간다. 우리는 미래의 자기 인생살이에 관한 어떠한 선택도 할 수 있으며, 과거조차도 살아온 세월의 의미를 해체해 새로운 의미의 과거로 달리 구축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이 운명이라 해도 우리는 삶에 순종하거나 아니면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인간이기에 시공간적 제약 속에서 우리의 선택이 지극히 제한적이라는 사실이다. 한번 내린 결정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던 그것은 당신의 몫이다. 그것이 당신의 삶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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