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산과 삶

  • 오피니언
  • 기자수첩

[편집국에서] 산과 삶

  • 승인 2019-04-24 09:05
  • 신문게재 2019-04-24 22면
  • 최고은 기자최고은 기자

 

GettyImages-1069988708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지난 주말 완벽한 '집순이'인 기자는 '밖순이'인 친구와 등산을 했다. 과장 좀 보태 중년의 체력을 가진 나는 다른 지역으로 놀러가자는 친구의 말에 극구 반대하며 가벼운 산행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친구는 내가 정성스레 골라놓은 낮은 산 중에서도 가장 높은 계족산을 골랐다. 그렇게 약속한 날이 밝았고, 우린 흐린 날씨를 뒤로한 채 산 입구에 도착했다. 친구는 산행을 다 마치면 4~5시간이 지나있을 거라고 말했다. 체념한 후 천천히 산을 타기 시작했다.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금방 사그라졌다. 제법 경사가 있는 길이었는데 친구는 깃털마냥 가볍게 오르고 있었지만 나는 점점 숨이 차오르고 무릎과 다리가 아팠으며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가끔 등장한 이정표만 보고 올라온 터라 제대로 가고 있는지 조차 알 수 없었다. 다행히도 마침 아주머니 한 분을 만나 길을 여쭤보니 바로 위로 가면 중간 지점이 나온다고 했다. 이제야 절반이라니.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친구에 비해 나는 절망했지만, 중간 지점에 다다라 다른 아저씨를 만나 조언을 들었다. 짧지만 가파른 코스와 길지만 완만한 코스의 기로에서 우린 다소 완만한 코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말도 거의 못하고 헉헉거리며 괴로웠었는데 어느덧 나도 편한 호흡으로 산행을 즐기고 있었다. 오로지 집 생각만 나고 빨리 쉬고 싶은 마음이 언제 있었냐는 듯 어느덧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가 생길 정도였다. 평화롭게 가다보니 작은 들판처럼 펼쳐진 계족산성에 도착했다.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은 잠시 사색에 빠지게 할 정도로 밝고 푸르렀다. 길을 모르는 탓에 내려오는 길도 뒤죽박죽 이었지만, 어쨌든 무사히 하산에 성공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산을 오르고 내리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도 희로애락 엇비슷한 감정들을 느낄 수 있다.



20대의 평범한 사회인은 불안정하다. 미숙함과 능숙함 그 어디쯤의 경계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넘어지고 쓰러진다. 극렬한 좌절감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러나 포기라는 허들의 한계선을 넘는 순간, 나는 한 뼘이나마 성장할 수 있었다. 무언가 해냈다는 그 순간의 쾌감과 짜릿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인생이란 싸움은 우리가 선택한 결정들이 쌓이고 쌓여서 승부가 난다. 산행의 갈림길처럼 각각의 선택들이 항상 최고일 수는 없다. 그렇다 해도 앞으로의 미래를 위해 매 순간 꾸준하게 노력하면 분명히 얻는 것이 있을 것이다.

30대를 목전에 둔 직장인은 불안하다. 그렇지만 지난 산행을 떠올리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다. 알고 보니 산은 삶과 같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최고은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충남경찰 인력난에 승진자도 저조… 치안공백 현실화
  2. 대전시와 5개구, '시민체감.소상공인 활성화' 위해 머리 맞대
  3. 세종시 '학교급식' 잔반 처리 한계...대안 없나
  4. [한성일이 만난 사람]여현덕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인공지능(AI) 경영자과정 주임교수. KAIST-NYU 석좌교수
  5. 세종시 재정 역차별 악순환...보통교부세 개선 촉구
  1. 세종시 도담동 '구청 부지' 미래는 어디로?
  2. 더이상 세종시 '체육 인재' 유출 NO...특단의 대책은
  3.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4. 세종시 '공동캠퍼스' 미래 불투명...행정수도와 원거리
  5. 세종시 교통신호제어 시스템 방치, 시민 안전 위협

헤드라인 뉴스


전기 마련된 대전충남행정통합에 이재명 대통령 힘 실어줄까

전기 마련된 대전충남행정통합에 이재명 대통령 힘 실어줄까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으로 대전·충남 행정통합이 새로운 전기를 맞은 가운데 17일 행정안전부 업무보고에서 다시 한번 메시지가 나올지 관심이 높다. 관련 발언이 나온다면 좀 더 진일보된 내용이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역대 정부 최초로 전 국민에 실시간 생중계되고 있는 이재명 대통령의 2주 차 부처 업무보고가 16일 시작된 가운데 18일에는 행정안전부 업무보고가 진행된다. 대전과 충남은 이날 업무보고에서 이 대통령이 대전·충남 행정통합에 대한 추가 발언을 할지 관심을 두고 있다. 내년 6월 지방선거 이전에 대전·충남 행정통합을 하기 위해..

[기획시리즈] 2. 세종시 신도시의 마지막 퍼즐 `5·6생활권` 2026년은?
[기획시리즈] 2. 세종시 신도시의 마지막 퍼즐 '5·6생활권' 2026년은?

2026년 세종시 행복도시 신도시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할 수 있을까.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하 행복청)이 지난 12일 대통령 업무보고를 거치며, 내년 청사진을 그려냈다. 이에 본지는 시리즈 기사를 통해 앞으로 펼쳐질 변화를 각 생활권별로 담아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행정수도 진원지 'S생활권', 2026년 지각변동 오나 2. 신도시 건설의 마지막 퍼즐 '5~6생활권' 변화 요소는 3. 정부세종청사 품은 '1~2생활권', 내년 무엇이 달라지나 4. 자족성장의 거점 '3~4생활권', 2026년 던져진 숙제..

‘의료 격차 해소·필수의료 확충’ 위한 지역의사제 국무회의 의결
‘의료 격차 해소·필수의료 확충’ 위한 지역의사제 국무회의 의결

의사가 부족한 지역에서 10년간 의무적으로 복무하는 소위, ‘지역의사제’ 시행을 위한 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출산과 보육비 비과세 한도 월 20만원에서 자녀 1인당 20만원으로 확대하고, 전자담배도 담배 범위에 포함해 규제하는 법안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54회 국무회의에서는 법률공포안 35건과 법률안 4건, 대통령령안 24건, 일반안건 3건, 보고안건 1건을 심의·의결했다. 우선 지역 격차 해소와 필수의료 확충,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지역의사의 양성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공포안’..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딸기의 계절 딸기의 계절

  • 보관시한 끝난 문서 파쇄 보관시한 끝난 문서 파쇄

  • `족보, 세계유산으로서의 첫 걸음` '족보, 세계유산으로서의 첫 걸음'

  •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 ‘대전의 밤은 낮보다 화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