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확대된 연명의료법

  • 오피니언
  • 세상보기

[세상보기]확대된 연명의료법

이승훈 을지대학교의료원장

  • 승인 2019-08-15 09:42
  • 원영미 기자원영미 기자
을지대학교의료원 이승훈 의료원장1
이승훈 을지대학교의료원장
얼마 전 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셨다. 동네 노인회에서 연명의료 결정제도에 대한 강의를 들었는데 사전연명 의향서를 작성하는 것이 좋을지 물어보셨다. 나는 작성하시는 것이 좋고, 그래야 임종 단계에서 불필요한 치료로 인한 고통을 피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다. 내 설명에 어머니는 알아듣기는 한 것 같은데, 그래도 죽음에 대해서 아직까지 깊이 생각하지 않으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사실 여태껏 나도 어머니와 돌아가시는 문제나, 장례 그리고 사후 정리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이 없다.

또 다른 이야기를 소개한다. 몇 년 전 고등학교 동창이 오랜만에 연락했다. 그 친구 아버지가 90세가 넘으셨는데 암이 발병해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물었다. 그런데 문제는 중견 기업을 경영하신 아버지가 워낙 건강하셔서 100세까지 사실 줄 알고 회사의 기술 전수나 후계자 결정 등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고 한다.

장수사회가 되면서 우리는 어느 틈엔가 죽음에 대해서 무관심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죽음은 패배로 인식되기 때문에 이야기하는 것조차 터부시한다. 그리고 장수 숭배주의가 팽배해 있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오래 살려고 하고, 남보다 일찍 죽는 것을 애통해 하며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그러나 죽음은 누구에게나 오는 일이다.

과연 좋은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 많은 연구 결과를 보면 첫째, 건강하게 오래 살면서 이루고자 하는 것을 완성하고 둘째, 가족이나 주변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셋째, 평안한 내 보금자리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서 고통 없이 평화롭게 마무리 지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정리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족들과 함께 충분한 토의를 거쳐 다가올 죽음에 대해 미리 대비하고, 의료진과의 상담을 통해서 불필요한 연명의료를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연명의료 결정제도는 2018년 2월부터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에 따라 시작되었다. 이들 환자는 사망에 임박했을 때, 인공호흡기, 항암제 치료, 혈액 투석, 심폐소생술을 거부한다는 의사를 미리 밝혀둠으로써 불필요한 연명치료에 의한 고통스러운 임종과정의 연장 없이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법적인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시행과정에서 생긴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연명의료결정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해 올해 3월부터 시행되었다.

달라진 점은 첫째, 연명의료시술의 종류가 확대되었다. 기존의 4가지 연명치료법에 체외생명유지술, 수혈, 혈압상승제 등이 포함되고, 그 밖에 담당의가 환자를 위해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할 필요가 있다고 의학적으로 판단하는 시술 등으로 확대되었다. 따라서 모든 연명치료술이 대상이 된 것이다.

둘째, 대상 질환이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 만성간경화 등 4가지 질병에서 이제부터는 질환과 관계없이 모든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가 이 법에 적용을 받게 되었다.

셋째, 환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에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할 사람들에 대한 기준이 현실화되었다. 환자가족 중 배우자와 1촌 이내 직계 존속, 비속의 전원합의만 있으면 가능하도록 개정되었다.

한편 연명의료결정법이 2018년 시행된 후 최근까지 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다가 연명의료유보 및 중단을 결정한 환자가 6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본인의 의사에 의한 것이 1/3, 나머지 2/3는 가족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고 한다. 또한 사전연명 의향서는 30만명가량이 작성하였다. 연명의료에 대한 국민의식 변화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100년 가까이 살아온 삶을 마무리한다는 것이 간단할 리 만무하다. 그렇다고 황망하게 죽게 되어 남은 가족들에게 짐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세상을 떠나는 동안 불필요한 고통을 받아서도 안 된다.

그래서 평상시에 죽음에 대하여 가족들과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의 의사를 밝혀놓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반드시 자신의 인생 마무리에 대해서 학습하고 생각하고 찾아보고 정리해서 기록해야 한다. 자신이 어떻게 이 세상에 기억이 되었으면 좋을지 성찰해 보고, 병에 걸렸을 때 내가 원하는 치료에 대해서 미리 밝혀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국가는 임종기 환자들이 인생을 아름답게 정리하게 도와줄 수 있는 제도와 시설 등을 국민에게 제공하여야 하고, 동시에 죽음에 익숙하고 사려 깊은 의사, 간호사 등 전문 인력의 육성에 나서야 한다. 죽음이라는 것은 지극히 개별적인 것이기 때문에 각자의 사정에 맞는 맞춤 인생 마무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의 연명의료 거부에 대한 2015년 조사 결과를 보면 가족 동의에 의한 연명치료 중단은 77%가 찬성하였고, 본인의 연명치료 중단을 원하는 사람이 90%였다. 그런데 부모 또는 배우자가 회생 불능 상태일 때 연명치료를 중단하겠다는 사람은 63%로 타인의 생사를 가르는 선택권 행사에 대한 부담감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왜 죽어서까지 배우자나 후손들에게 힘든 일을 남겨줘야 합니까? 배우자나 자식들에게 그 힘든 결정을 미루시겠습니까? 아니면 본인 스스로 정하시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필자 어머니의 사전연명 의향서 작성 결심에 감사드리며 마음속 깊이 응원한다. /이승훈 을지대학교의료원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천안홍대용과학관, 8일 개기월식 온라인 생중계 운영
  2. 천안아산범방, 제18회 청소년 풋살대회 성료
  3. 새마을금고 천안시이사장협의회, (재)천안시복지재단에 후원
  4. 천안법원, 고객 휴대폰 몰래 판 30대 남성 '징역 1년 6월'
  5. [날씨]200년 빈도 폭우 쏟아진 서천…시간당 137㎜ 누적 248㎜
  1. 천안시, '보라데이' 기념행사 개최
  2. 상명대, 충남반도체마이스터고와 조기취업형 계약학과 활성화 맞손
  3. 한기대, '다담 EMBA 최고경영자과정' 40기 힘찬 스타트
  4. 천안시, 천안흥타령춤축제 앞두고 '안심 방역' 총력
  5. 나사렛대 대학일자리플러스센터, 2025 충남지역혁신 프로젝트 채용박람회 참가

헤드라인 뉴스


`여가부` 세종시 이전 전면에...법무부는 어디로

'여가부' 세종시 이전 전면에...법무부는 어디로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 논란에 앞서 미완의 과제로 남겨진 '여성가족부(서울)와 법무부(과천)'의 세종시 이전. 2개 부처는 정부세종청사 업무 효율화 취지를 감안할 때, 2019년 행정안전부와 함께 동반 이전 필요성이 제기됐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미뤄져 6년을 소요하고 있다. 해수부 이전이 2025년 12월까지 일사처리로 진행될 양상이나 여성가족부와 법무부 이전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새 정부의 입장도 애매모호하게 다가오고 있다. 2025년 6월 3일 대선 이전에는 '법무부와 여성가족부'의 동시 이전이 추진되던..

대전.충남 행정통합 특별법 발의 코앞… 여야 정부 공감대 `안갯속`
대전.충남 행정통합 특별법 발의 코앞… 여야 정부 공감대 '안갯속'

내년 출범을 목표로 추진 중인 대전·충남 행정통합을 위한 특별법안이 빠르면 이번 주 국회에 제출된다. 두 시·도는 실질적인 지방정부 구현을 강조하며 통합에 속도 내고 있는 가운데 특별법 국회 통과를 위한 여야와 정부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7일 대전시와 충남도에 따르면 이달 중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서산태안)이 '대전·충남 행정통합 특별법'을 대표 발의할 예정이다. 시·도와 성일종 의원실은 현재 여야 의원 50명 이상을 공동 발의자로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실제 대전시는 지역 국회의원들과 만남을 통해 행정통합 추진을 위..

`노조파업 전성시대 열리나` 커지는 우려감
'노조파업 전성시대 열리나' 커지는 우려감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자동차와 조선업 분야에서 노조 파업이 잇따르면서 '노조 파업 전성시대'가 열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연관성을 부정하며 긴급 진화에 나섰지만, 지역 경영계는 법 통과가 노조파업의 도화선이 됐다고 보고 있다. 현대자동차와 한국GM, HD현대중공업·HD현대미포·HD현대삼호 등 국내 주요 자동차·조선업 노조는 기본급 인상과 정년 연장을 요구하며 줄줄이 파업을 선언했다. 노사 갈등이 연쇄적으로 폭발하는 양상이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지난 4일 설명회를 열고 "이번 파업은 임단협 과정에서 임금·..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물에 잠긴 도로 달리는 차량들 물에 잠긴 도로 달리는 차량들

  • 맨발로 느끼는 힐링 오감 축제…‘해변을 맨발로 걸어요’ 맨발로 느끼는 힐링 오감 축제…‘해변을 맨발로 걸어요’

  • 대전 동구 원도심에 둥지 튼 대전일자리경제진흥원 대전 동구 원도심에 둥지 튼 대전일자리경제진흥원

  • ‘대전 병입 수돗물 싣고 강릉으로 떠납니다’ ‘대전 병입 수돗물 싣고 강릉으로 떠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