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칼럼] 호기심을 위한 변명

  • 오피니언
  • 사이언스칼럼

[사이언스 칼럼] 호기심을 위한 변명

  • 승인 2019-08-29 14:07
  • 신문게재 2019-08-30 22면
  • 김성현 기자김성현 기자
정영욱 융복합양자과학연구소장
정영욱 융복합양자과학연구소장
최근 필자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새로운 일에 대한 의욕도 샘솟았지만 내심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마음이 어지러웠다. 대부분의 도전은 위험과 두려움을 동반한다. 그래서 우리는 도전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학에서의 도전은 조금 다르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용기가 아닌 욕망에 가까운 호기심으로 도전해 새로운 연구를 시작하거나 어려운 숙제를 해결한다. 공자는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고 했다. 호기심을 채우는 '깨달음'의 희열이 죽음과 바꿀 정도로 극한의 것일 수 있다는 점에 깊이 공감한다. 필자는 지금도 무언가 새로운 것을 알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가슴이 뛴다.

박형주 아주대 총장은 '호기심의 생산성'이라는 칼럼에서 '목적지향의 연구'보다 '호기심으로 하는 연구'가 더 효과적이며 평범한 과학자를 노벨상으로 이끈 원동력이 됐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연구원 또는 과학자는 기초, 응용, 산업화 등 여러 단계에서 많은 역할을 수행하고 그에 대한 정부의 연구개발 투자비용도 20조에 이른다. 그래서 연구원들은 투자에 걸 맞는 높은 기대에 '즉각' 부응해야 하는 어려움과 성과에 대한 압박을 받는다. 또 한편으로는 좀 더 뚜렷한 '목표'와 '목적'을 가지라는 주문을 받는다. 일반적으로 연구원들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성과에 대한 압박없이 여유롭고 자유로운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연구원들이 좀 더 뚜렷한 목표를 가져야 생산성이 높아지고 더 나은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단정한다. 하지만 필자가 정작 연구현장에서 부족하다고 느낀 것은 '목적'보다는 '열정'이었다. 단기적인 목표와 정해진 목적이 너무나 뚜렷한 연구 환경에서 호기심과 지적 동기에서 생기는 열정이 자랄 여지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



'해야 하는 것', '잘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 연구원들이 연구주제를 선택할 때 가장 많이 고민하고 논쟁하는 화두다. 셋 중 어느 것을 연구해야 할까. 누구나 이 세 가지가 일치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아 적당한 타협점을 선택하기 마련이고, 현실에서는 결국 '해야 하는 것'이 선택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고 만다. 무조건 '하고 싶은 것'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최소한의 균형을 잘 잡고 있는지에 대해 깊이 따져보아야 한다. 우리는 목적과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점에는 강박과 같은 집착을 보이지만, 창의나 열정은 개인적이고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치부된다. 창의, 열정, 도전을 강조하는 사람에게는 이른바 학생티를 벗지 못한 유치하고 아마추어적이라는 평가도 서슴치 않는다. '하고 싶은 것'이 열정을 연료삼아 생산성을 높여 결국 '잘 할 수 있는 것'이 된다는 점은 간과하고 마는 것이다.

많은 공포영화에서 호기심 많은 등장인물은 어리석게 표현되고 허무하게 목숨을 잃기도 한다. 하지만 남은 인물들은 그 호기심어린 희생 덕분에 수수께끼와 생존의 열쇠를 알게 된다. 아주 오래 전 우리의 조상들 역시 호기심 때문에 엄청난 대가를 무수히 치렀다. 후손인 우리는 그 대가의 결과로 찬란한 문명을 누리고 있다. 인류가 직면한 시련을 창의적으로 극복한 결과가 바로 지금의 문명인 것이다. 현대의 연구원과 과학자들은 과학과 기술이라는 도구로 문명의 발전에 기여한다. 호기심은 우리의 문명을 발전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현대의 과학자들이 연구주제를 결정할 때 역시 더욱 호기심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호기심을 자극하는 주제야말로 타인에게 명확하고 본인에게는 열정적인 도전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창의와 열정의 용광로인 호기심의 효용가치는 지금도 유효하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정영욱 융복합양자과학연구소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롯데백화점 대전점, 성심당 리뉴얼... 백화점 중 최대 규모 베이커리로
  2. "아산시 '곡교천 탕정지구 연계사업' 밑그림 그려졌다"
  3. [라이즈 현안 점검] 대학 수는 적은데 국비는 수십억 차이…지역대 '빈익빈 부익부' 우려
  4. [행복한 대전교육 프로젝트] 대전변동중, 음악으로 함께 어울리는 행복한 예술교육
  5. {현장취재]김기황 원장, 한국효문화진흥원 2025 동계효문화포럼 개최
  1. "함께 걸어온 1년, 함께 만들어갈 내일"
  2. 농식품부 '농촌재능나눔 대상' 16개 부문 시상
  3. 작은 유치원 함께하니, 배움이 더 커졌어요
  4. 충남경찰, 21대 대선 당시 선거사범 158명 적발… 직전 대선보다 119명↑
  5. 충남경제진흥원 '2025 중소기업 육성자금' 기업 만족도 94.5%

헤드라인 뉴스


대법원 세종 이전법 발의했는데, 뒤늦은 대구 이전법 논란

대법원 세종 이전법 발의했는데, 뒤늦은 대구 이전법 논란

대법원을 세종시가 아닌 대구시로 이전하는 내용의 법안이 국회에 발의돼 향후 논의 과정이 주목된다. 다만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의원이 주도한 데다, 11월에 혁신당 대전시당 위원장인 황운하 의원(비례)이 ‘대법원 세종 이전법’을 발의한 터라 논의 과정에 들어가기 전부터 여러 이견으로 대법원 지방 이전 자체가 표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혁신당 대구시당 위원장인 차규근 의원(비례)은 10일 보도자료를 통해 “민주당 권칠승 의원과 함께 대법원을 대구로 이전하고 대법원의 부속기관도 대법원 소재지로 이전할 수 있도록 하는..

내년 출산휴가급여 상한액 220만원으로 오른다
내년 출산휴가급여 상한액 220만원으로 오른다

직장맘에게 지급하는 출산 전후 휴가급여 상한액이 내년부터 월 220만원으로 오른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하한액이 출산휴가급여 상한액을 웃도는 역전현상을 막기 위한 조치다. 고용노동부는 10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출산전후휴가 급여 등 상한액 고시'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고용보험에 가입한 근로자는 출산 전과 후에 90일의 출산전후휴가를 받을 수 있다. 미숙아 출산은 100일, 쌍둥이는 120일까지 가능하다. 이 기간에 최소 60일(쌍둥이 75일)은 통상임금의 100%를 받는 유급휴가다. 정부는 출산·육아에 따른 소득 감소를 최소..

대전 회식 핫플레이스 `선사유적지 인근`... 월 총매출 9억 1000만원 상회
대전 회식 핫플레이스 '선사유적지 인근'... 월 총매출 9억 1000만원 상회

대전 자영업을 준비하는 이들 사이에서 회식 상권은 '노다지'로 불린다. 직장인을 주요 고객층으로 삼는 만큼 상권에 진입하기 전 대상 고객은 몇 명인지, 인근 업종은 어떨지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가 뒷받침돼야 한다. 레드오션인 자영업 생태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다. 이에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빅데이터 플랫폼 '소상공인 365'를 통해 대전 주요 회식 상권을 분석했다. 10일 소상공인 365에 따르면 해당 빅데이터가 선정한 대전 회식 상권 중 핫플레이스는 대전 서구 월평동 '선사유적지 인근'이다. 회식 핫플레이스 상권이란 30~5..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병오년(丙午年) 달력이랍니다’ ‘병오년(丙午年) 달력이랍니다’

  • 풍성한 연말 공연 풍성한 연말 공연

  • ‘졸업 축하해’ ‘졸업 축하해’

  • 부산으로 이사가는 해양수산부 부산으로 이사가는 해양수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