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기록프로젝트] 재개발 개념에 삶의 흔적 보존하는 역사적 감성 더하자

[대전기록프로젝트] 재개발 개념에 삶의 흔적 보존하는 역사적 감성 더하자

도시정비 계획단계부터 남겨질 유산기록 고민해야
메모리존 물리적 공간 혹은 키오스크 활용안 고민도
전문가들 "인센티브제도 등 강제적인 조례 필요"
조합원의 의지가 관건, 동네의 역사기록은 공감

  • 승인 2020-04-20 16:34
  • 수정 2020-05-13 09:28
  • 신문게재 2020-04-21 5면
  • 이해미 기자이해미 기자

늙은 별의 최후는 소멸, 낡은 집의 말로는 철거다. 소멸한 별의 기억은 수 만 년을 달려와서라도 끝내 우리 곁에 도달하지만, 먼지 속에서 폭삭 주저앉아 버린 집의 기억은 되새겨 볼 방도가 없다.

골리앗의 펀치 닿자 툭툭 30년 전 우리 집이… 툭툭 50년 전 뛰어놀았던 골목이… 툭툭 한 시대가 사라진다. 대전은 조금 빠른 속도로 무너져 가는 중이다. 기억될 기록은 없다. 정훈 시인의 고택이 그러했고, 소제동 철도관사촌이 그럴지도 모른다.

재개발과 도시재생은 결코 부정사가 아니다. 침체 된 도시를 일으키는 시의적절한 선택에 오히려 가깝다. 다만 기억과 보존을 재개발과 도시재생에 대입해본다면 같은 답을 내놓을 수는 없을 거다. 그러나 이제는 재개발이라는 딱딱한 명사에 감성과 온기를 불어넣을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자발적 소멸이라는 최후를 맞이했을 때, 가슴 벅찬 반짝임으로 남고자 하는 일말의 욕심이다.

중도일보는 2020년 연중 기획 시리즈 '대전기록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재개발과 도시재생으로 사라질 위기에 직면한 동네를 기록하는 작업이다. 버리고 남길 것을 선별해 기록물과 물리적 유산이 보존될 '메모리존(가칭)'을 조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대전은 히스토리가 없다. 과거와 미래를 연결할 스토리텔링의 단서도 없다. 대전시 승격 100년을 앞둔 지금 '기록'을 위한 여정은 시작돼야 한다. 이는 훗날 오롯이 대전에 남겨질 문화유산이자, 수년이 지나도 밑천이 드러나지 않을 히스토리의 출발점이 되리라 믿는다. <편집자 주>

1. 도시를 기록해야 하는 이유
2. 무너지는 도시, 대전이 사라진다
3. 다가오는 재개발, 그들의 이야기
4. 도시재생의 끝은 '메모리존'
5. 정체성 없는 대전, 100년을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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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철거가 시작된 용문1·2·3지구 모습. 사진=이해미 기자
재개발과 재건축은 물리적으로 막을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 됐다. 도시가 고르게, 균형 있게 발전하기 위한 시대의 순리라면 변화하는 템포를 맞춰가야 한다. 다만 부수고 무너뜨려 결국은 집을 투자 대상으로 삼는 행태가 재개발의 기능이라면 이 개념 또한 변해야 할 시기에 도래했음을 깨달아야 할 시점이다.

가칭 '메모리존'은 동네와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담은 그릇이다. 철거를 앞둔 재개발 지역을 우선순위로 하되, 도시재생지역은 물론 일반 동네에도 접목할 수 있는 개념이다. 도시정비 계획 단계부터 메모리존 조성을 명시하고, 재개발 지역에서 남길 유산 혹은 기록들을 연구할 충분한 시간을 제공한다. 재개발을 완료하면 구역 내에 메모리존을 조성해 기록물과 유산을 영구히 보존하게 된다.

안준호 대전시 문화유산과 팀장은 "면 단위 개발이 이뤄지면서 구시대적 개발 논리로 대전의 역사와 도시 정체성을 간직한 장소, 건축물들이 사라졌다. 이는 집단 기억의 자발적 소멸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런 관점을 깨기 위해서라도 도시기억 프로젝트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별 계룡건설 상무는 "메모리존 개념은 상당히 좋은 아이디어다. 다만 미래 세대를 생각했을 땐 물리적인 공간도 좋지만, 키오스크를 이용하는 새로운 방식도 고민해 볼 법하다"고 조언했다.

건축과 문화를 전공하는 지역 전문가들도 재개발에 앞서 사람과 동네의 기억을 보존할 수 있는 '메모리존' 조성에는 긍정적이다. 대전은 그동안 재개발이 이뤄지면서 그 안의 삶의 흔적은 물론이고 지방등록문화재 지정을 논의해볼 만한 건축, 장소들이 훼손돼왔음을 부인할 수 없기에 이제부터라도 삶의 기록을 남길 필요가 있음을 공감했다.

김재일 금성백조 상무는 "재개발 단지 내 의무적으로 조형물이 들어가는데 무의미한 예술장식품보다는 구역 내 한 공간을 마련해 조감도라든지 모형도 등 상징성을 부여하는 건 의미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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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들이 마을을 떠나자 빈집은 폐허처럼 홀로 남았다. 사진=이해미 기자
다만 대전의 첫 사례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조례나 법적인 테두리가 우선 해야 한다는 조언도 있다.

류완희 용문 1·2·3구역 재건축사업 조합장은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면 커뮤니티센터 내에 전시를 한다면 좋겠다. 이미 진행된 사업장에 적용하기는 어렵고, 처음 시작하는 곳에 적용할 수 있도록 제도화한다면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이희준 대전도시재생지원센터 정책지원팀장은 "다소 강제성 있는 조항이 있어야 한다. 메모리존을 만들면 용적률 인센티브를 제공한다거나, 행정적 절차를 단축해준다는 것을 명시하면 시공사와 조합도 메모리존 조성에 부정적이진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국에서 지역 흔적 남기기 사업에 가장 집중하고 있는 곳은 경남 창원시다. 창원시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통해 연속성 있는 지역흔적 남기기를 진행하고 있다. 이를 볼 때 대전형 메모리존의 첫발도 조례 여부가 관건이 될 수밖에 없다.

조성열 창원시 의창구청 건축허가 담당은 "재개발은 마을을 다 쓸어버리고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고민은 재개발 지역에서 거주했던 분들은 추억이 있지만, 새롭게 분양받아 오는 분들에게는 마을흔적 자체가 호불호가 갈린다는 문제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문제를 어떻게 조율하고 구상할지는 결국 민간 사업자들의 콘텐츠 개발에 달렸고, 기관은 이를 움직이는 행정과 제도적인 부분을 뒷받침할 뿐"이라고 했다.

소제동 철도관사촌에서 태어난 김승국 씨는 "우리 집은 관사촌 제59호 푯말이 붙은 집이다. 일제강점기 지어진 집 구조가 고스란히 남아 있고 지금까지 보존하려 노력했다. 때려 부순다고 잊히지 않는다. 나는 이곳을 어떤 형태로든 지켜내고 싶다"고 말했다.

몰아치는 재개발 홍수 속에서 소제동마저 밀리고 나면 대전의 역사를 논할 수 있는 마지막 유산마저 잃게 된다는 얘기다.

김종헌 배재대 건축학부 교수는 "서울의 경우 한 세대 정도는 아카이브존으로 만들어 보존하고 있다. 만약 현장 보존이 어렵다면 커뮤니티 센터를 활용해 기록화하고 있다. 무너지더라도 실측이나 사진 자료는 필요하기에 재개발 현장의 기록화 사업은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자의든 타의든 기억과 기록이 사라지는 행위는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과오다. 오래된 미래를 지켜낼 수 있는 것은 결국 우리의 의지에 달렸다.이해미·김성현·이현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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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구역인 용문동 구역의 빈집들. 사진=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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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관사촌 소제동 또한 개발로 인한 무차별적 철거가 이뤄졌다. 사진=이강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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