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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대전교구청 경갑룡 요셉 주교가 16일 오전 1시50분 향년 91세에 병환으로 선종했다.
장례미사는 18일 오전 10시 30분 대전가톨릭대학교 대성당에서 교구장 유흥식 라자로 주교 주례로 열린다. 입관은 17일 오후 2시, 출관은 18일 오전 8시30분, 장지는
대전교구 성직자묘원(하늘묘원.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신방리 산 46)이다. 고 경 주교의 장례 기간 동안 '조의' 및 '근조 화환'을 받지 않는다.
고 경갑룡 주교의 서품 성구는 "그분은 갈수록 커져야 하고 나는 갈수록 작아져야 합니다"(요한 3,30)이다.
고 경갑룡 주교는 1930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62년 명동성당 본당에서 사제품을 받았고, 천주교 서울대교구 명동성당 보좌 신부 겸 재경부 차장, 천주교 서울대교구 재경부 국장 겸 금호동성당 주임 겸 겸 성모병원 경리처장 겸 청량리성당 보좌 신부를 역임했다. 이어 미국과 로마, 필리핀 유학을 거쳐 천주교 서울대교구 논현동성당 주임,부파다 명의 주교 및 천주교 서울대교구 보좌주교, 천주교 서울대교구 총대리 주교를 역임했다. 서울대교구 명동성당에서 주교 서품을 받았고 한국천주교회 창설 200주년 준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84년 천주교 대전교구 교구장으로 임명받았고 천주교 대전교구 제3대 교구장 착좌, 한국천주교 군종단 총재, 2000년 대희년 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2005년 천주교 대전교구 교구장 은퇴 후 2012년 사제서품 50주년 금경축을 맞았다.
고 경갑룡 요셉 주교는 교구장 착좌식 강론(취임사)에서 “여러분의 목자로, 여러분의 주교로, 여러분의 종으로 임명된 나는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마음으로 호소하고 싶은 한 마디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 겸손되이 주님께 되돌아가고, 주님 안에서 회개하자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고 경갑룡 주교의 일대기를 돌아보면 1984년 7월 2일 서울대교구 경갑룡(요셉) 보좌 주교가 대전교구의 제3대 교구장으로 임명되었다. 1984년 8월 29일 착좌식을 거쳐 대전교구는 제3대 교구장으로 경갑룡 요셉 주교를 맞는다. 2대 교구장 황민성 주교가 사망한지 5개월만의 일로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빠른 결정이었다. 새 교구장이 임명될 때까지 통상 1년 이상 걸렸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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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후 단행된 첫 인사발령과 조직 개편(1984년 10월 29일)에서 가장 큰 변화는 부교구장 제도를 폐지했다는 점이다. 수석 신부 -부주교 - 총대리 - 부교구장으로 명칭과 기능이 변경되어온 부교구장 제도를 없애고 사무처장으로 대신했다. 사무처가 "교구장은 행정사무 전반에 걸쳐 보필하는 한 단위 부서"(교구 공문 1984년 10월 29일)이므로 사무처장은 한 단위 부서의 장인 셈이다. 이러한 가운데 교육국과 홍보국이 신설되어 1처 4국(사무처, 사목국, 교육국, 관리국, 홍보국)으로 체제를 전환했다.
경갑룡 주교는 1930년 2월 12일(음) 서울에서 출생했고, 1951년 9월 육군에 입대 후 1956년 5월 포병 대위로 전역했다.
군대 말년인 1956년 3월 성신대학(현 가톨릭대학교)에 입학했고, 1962년 12월 21일 사제품을 받았다. 경갑룡 신부는 첫 사목지로 명동본당 보좌로 발령받아 1964년부터는 황민성 주임신부와 함께 활동한 경력도 있다.
이후 경갑룡 신부는 금호동 본당 주임(1967 ~ 1969)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교구청과 성모병원 등에서 재무를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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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3월 25일 주교품을 받으면서부터 1984년 7월까지 교구 총대리 겸 명동본당 주임을 역임했다. 이 기간 중 1981년 11월에 구성된 '한국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주교 위원회에서 기념행사 위원장을 맡아 1984년 교황 방한과 103위 시성식 행사를 총괄했다.
1984년 7월 2일 '제3대 대전교구장'으로 임명받고 8월 29일 주교좌 대흥동성당에서 착좌식을 했다.
경갑룡 주교는 교구 사제인사와 재정 구조를 개선했다. 그 결과 교구 조직을 1처 4국(사무처, 사목국, 교육국, 관리국, 홍보국)으로 개편하고 인사원칙을 만들었다. 또 재정자립 원칙을 세워 해외원조를 더 이상 받지 않기로 결정하고 본당 교납금 제도를 정착시켜 재정을 확보했다.
경갑룡 주교는 사제들의 재능에 따라 봉사할 수 있도록 사제단에 각종 위원회를 두었고, 늘어나는 신자와 지역사회 복음화를 위해 많은 본당을 신설했으며 소외된 농촌 사목을 위해 공소 지도자 학교를 개설했다.
특히 성소계발과 육성에 심혈을 기울여 1993년 '대전가톨릭대학교'를 설립하고 우리 손으로 직접 사제를 양성하게 된다. 또한 몽골 등에 해외 선교사제를 파견하고, 전파를 통한 복음화를 위해 '대전평화방송'을 개국했고, 하느님이 주신 생명을 지키기 위해 '성가정 생명장학금'을 마련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 대전교구는 2004년 말 본당 107개, 사제 236명, 신학생 161명, 신자수 21만 9000여 명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이렇게 대내외적으로 교구의 든든한 기틀을 마련한 경갑룡 주교는 2005년 4월 1일 교구장직에서 은퇴했다.
1986년 10월 주교회의는 '군인 사목에 관한 교황헌장'의 정신에 따라 군종교구 창설을 지지, 의결했고, 11월 25일 군종 신부단은 당시 군종단 총재 주교였던 경갑룡 주교 명의로 '군종교구 설정 요청서'를 교황청 인류복음화성에 제출했다.
이어 한 차례 수정을 거친 한국 군종교구 정관안이 1988년 11월 한국 주교단 의장 김남수 주교 명의로 인류복음화성으로 송부됐고, 이러한 과정을 거쳐 1989년 한국 군종교구가 설정됐다.
한성일 기자 hansung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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