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이타심을 버린 괴물

  • 오피니언
  • 편집국에서

[편집국에서] 이타심을 버린 괴물

이해미 정치행정부 행정팀장

  • 승인 2021-01-13 08:18
  • 이해미 기자이해미 기자
이해미
이해미 차장
#오랜만에 겨울다운 겨울이다. 지난주 밤새 함박눈이 쌓였다. '미끄럽겠지, 차를 가져갈까, 버스를 탈까' 순백의 세상을 감탄하기도 전에 출근길을 걱정했다. 동심은 개뿔, 순수성도 사라진 듯한 그날 아침, 차에 쌓인 흰 눈을 쓸어내고 엑셀을 밟아 눈길을 달렸다.

오랜만에 내린 눈 소식은 코로나19로 텅 비어 버린 감성에 동심을 채웠나 보다. 한파와 폭설에 세상은 아수라장이었지만, 곳곳에서 귀여운 인증이 쏟아졌다. 아파트 단지 앞, 대학 카페, 버스정류장 등등 곳곳에 눈사람이 등장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2등신의 고전 눈사람이 아니다. 올라프, 가오나시, 심지어 엘사와 첨성대까지 조각가가 다녀갔다 싶을 정도로 숨겨진 능력자들은 참 많았다. 또 일렬종대로 열 맞춰 등장한 눈오리의 기습은 코로나도 출근길이나 퇴근길도 잠시 잊게 하는 겨울의 선물이었다.

오후가 되자 제설작업으로 사람들의 짓밟힘으로 흰 눈이 회색빛으로 물들었다. 질퍽하게 녹은 눈, 그래 이게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지 싶어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또 한번 동심이 와장창 깨진 순간, 아침에 봤던 눈사람 소식이 또 들려왔다. 이 정도 한파라면 녹지 않고 수일은 버티겠다 했는데, 눈사람은 고작 하루를 견디지 못했다. CCTV에 찍힌 한 남자는 주변을 살핀 뒤 순식간에 엘사 눈사람의 목을 가격했고, 누군가는 돌려차기 한 번으로 또 다른 눈사람을 부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가르침은 베풀고 나누고 사랑하는 것에 있었다. 적어도 내가 배운 하나님의 말씀 그랬다. 신천지에 이어 교회 발 감염이 또다시 들불처럼 번진다. 예배는 생명처럼 지키더니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라는 지침은 목숨 걸고 피하는 아이러니에 허탈한 쓴웃음이 터져 나온다. 당신의 이웃이 죽어가는 이 시국에 당신만을 위한 생명수가 그렇게 달고 달았을까. 하나님의 말씀이 새겨진 성경의 행간은 읽지 못한 채, 글자만 믿으니 일부 교회는 우리 이웃이 아니라 변방의 사람으로 더 멀어진 듯하다.



이타심(利他心) 상실의 시대다. 폭력과 이기심 그리고 아집이 사회 곳곳에 괴물을 심어둔 것 같다. K-좀비가 흥하는 이유는 그들과 닮은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반증은 아닐까. 누군가의 즐거움을 짓밟은 당신들도 누군가의 생명보다 말씀 한 줄에 붙들린 쇠심줄 같은 신념도 결코 이타심을 논할 수 없다.

그들이 처절한 상실감을 맛봐야만 속이 조금 풀릴까. 아니다. 나까지도 이타심을 잃은 괴물이 될 순 없다. 내 안의 괴물을 막아내고 나니 온몸에 저릿하다. 한파라더니, 시베리아 북풍이 우리집까지 오셨나보다. 찬기 어린 웃풍이 코끝을 쓸고 지나간다.
이해미 정치행정부 차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신세계백화점 앞 6중 추돌사고…1명 숨지고 2명 중상 등
  2. 김진명 작가 '세종의 나라'에 시민 목소리 담는다
  3. 대전문화방송과 한화그룹 한빛대상 시상식
  4. 세종 '행복누림터 방과후교육' 순항… 학부모 97% "좋아요"
  5. 전교생 6명인 기성초등학교 길헌분교 초대의 날 행사
  1. 사나래복지센터, 이웃들과 따뜻한 정 나누기 위한 사랑의 김장나눔
  2. [인터뷰]장석영 대한언론인회 회장
  3. 대한전문건설협회 대전시회, 한국건축시공학회와 업무협약 체결
  4. 대전 향토기업 '울엄마 해장국'...러닝 붐에 한 몫
  5. 따르릉~ 작고 가벼운 '꼬마 어울링' 타세요!

헤드라인 뉴스


"일본 전쟁유적에서 평화 찾아야죠" 대전 취재 나선 마이니치 기자

"일본 전쟁유적에서 평화 찾아야죠" 대전 취재 나선 마이니치 기자

"일본에서도 태평양전쟁을 겪은 세대가 저물고 있습니다. 80년이 지났고, 전쟁의 참상과 평화를 교육할 수 있는 수단은 이제 전쟁유적뿐이죠. 그래서 보문산 지하호가 일본군 총사령부의 것이었는지 규명하는 게 중요합니다."일본 마이니치 신문의 후쿠오카 시즈야(48) 서울지국장은 5일 대전 중구 보문산에 있는 동굴형 수족관 대전아쿠아리움을 찾아왔다. 그가 이곳을 방문한 것은 올해만 벌써 두 번째로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의 종결을 앞두고 용산에 있던 일본군 총사령부를 대전에 있는 공원으로 옮길 수 있도록 지하호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

학생·학부모 10명 중 8명 "고교학점제 폐지 또는 축소해야"… 만족도 25% 미만
학생·학부모 10명 중 8명 "고교학점제 폐지 또는 축소해야"… 만족도 25% 미만

올해 고1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고교학점제에 대한 만족도가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제도 시행 첫 학기를 경험한 응답자 중 10명 중 8명 이상이 '제도를 폐지하거나 축소해야 한다'고 답했으며, 학생들은 진로 탐색보다 대학입시 유불리를 기준으로 과목을 선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종로학원은 10월 21일부터 23일까지 고1 학생과 학부모 47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75.5%가 '만족하지 않는다'고 답했다고 6일 밝혔다. 반면 '만족한다'는 응답은 4.3%, '매우 만족한다'는..

대전 갑천생태호수공원, 개장 한달만에 관광명소 급부상
대전 갑천생태호수공원, 개장 한달만에 관광명소 급부상

대전 갑천생태호수공원이 개장 한 달여 만에 누적 방문객 22만 명을 돌파하며 지역 관광명소로 주목받고 있다. 6일 대전시에 따르면 갑천생태호수공원은 9월 말 임시 개장 이후 하루 평균 7000명, 주말에는 최대 2만 명까지 방문하는 추세다. 전체 방문객 중 약 70%가 가족·연인 단위 방문객으로, 주말 나들이, 산책과 사진 촬영, 야간경관 감상의 목적으로 공원을 찾았다. 특히 추석 연휴 기간에는 10일간 12만 명이 방문해 주차장 만차와 진입로 혼잡이 이어졌으며, 연휴 마지막 날에는 1km 이상 차량 정체가 발생할 정도로 시민들의..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과학기술인 만남 이재명 대통령 과학기술인 만남 이재명 대통령

  • ‘사랑 가득한 김장 나눠요’ ‘사랑 가득한 김장 나눠요’

  • 수능 앞 간절한 기도 수능 앞 간절한 기도

  • 국민의힘 충청권 지역민생 예산정책협의회 국민의힘 충청권 지역민생 예산정책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