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광장] 평균의 함정

  • 오피니언
  • 편집국에서

[목요광장] 평균의 함정

김재석 국가인권위원회 대전사무소장

  • 승인 2021-04-07 10:16
  • 수정 2021-04-07 10:33
  • 이현제 기자이현제 기자
김재석
김재석 소장
인상 깊게 읽은 책 중에 '평균의 종말'이라는 책이 있다. 국내에서도 교육종사자나 아이를 둔 부모들 사이에서 꽤 인기가 높았고 호평을 받은 책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준거로 삼고 있는 평균이라는 것이 개개인의 속성을 파악하는 데 있어 얼마나 근거가 약하고 허상인지에 대해 구체적 사례들을 통해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 예로 이 책의 서두에서는 미국 공군의 사례를 들고 있다.



1940년대 말 미국 공군은 갑자기 공군 조종사들이 전투기 조종에 애를 먹고, 추락사고가 급증하는 심각한 문제에 봉착했는데, 이 시기는 전투기가 프로펠러 방식에서 제트엔진 방식으로 전환되던 때였다. 제트엔진 방식의 전투기는 속도가 매우 빠르고 비행방식도 종전보다 복잡해지긴 했으나 조종사들에게서는 별다른 문제점이나 과실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비행기 기체 오작동도 발견되진 않았다.

잦은 비행기 추락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대대적인 조사 결과 결론은 비행기의 조종석과 조종사의 신체조건이 맞지 않는 것이 원인으로 밝혀졌다.



당시의 조종석은 비행기 도입 초기에 설계된 방식으로 가변형이 아닌 고정식 구조였다.

즉 비행기 도입 초기에 남성 조종사 수백 명의 신체 치수를 잰 뒤 평균을 산출하고 이를 기준으로 조종석 규격을 정한 것이다. 속도가 느린 프로펠러 전투기의 경우엔 크게 문제가 없었으나 제트엔진 방식의 경우엔 사소한 조작의 실수나 불편함이 비행기 추락의 원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당시 4천여 명의 조종사를 대상으로 10개 항목의 신체 치수를 재어 평균값을 산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항목별 평균값의 편차가 30% 이내의 경우 평균치에 포함되는 것으로 봤다. 각 항목의 편차를 30%로 여유 있게 두었고 엄격한 신체검사를 통해 선발된 조종사들이니 대부분 조종사가 10개 항목 전체에서 평균값에 해당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조사결과 조종사 4천여 명 중에 10개 전 항목에서 평균치에 드는 조종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10개 항목 가운데 임의로 3개 항목만을 골라서 비교해보더라도 3개 항목 전체에서 평균치에 드는 조종사는 3.5%도 안 되는 결과가 나왔다.

모든 사람의 평균은 그 누구의 평균도 아니었던 것이다.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가변형 조종석이 도입돼 조종사 개개인의 신체에 맞게 조절할 수 있었고, 비행기 추락 사고를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었다.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고 계량화할 수 있는 신체조건마저 평균이 개개인의 신체조건을 파악하고 적용하는 데는 별다른 의미가 없는데 사람의 성격이나 성향, 가치관 등을 측정하고 평균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개개인을 규정짓고 파악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신체의 평균을 구하고 활용하려는 시도만큼 사람의 내면을 측정해 해석하고 규정하고 적용하려는 많은 시도가 있었다. 성격이 내성적이거나 외향적이라는 단순한 규정부터 9가지 또는 그 이상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성격유형 검사 등도 그러한 시도일 것이다. 또한, 한때는 지능검사 결과 나오는 수치만으로 그 사람의 능력을 재단하고 예견하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신체조건이든 성격이든 지능이든 어떤 것도 한 사람을 정확히 측정하고 파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성격과 행동은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양한 속성이 발현되며, 지적 능력도 사람마다 강점을 가진 분야와 시기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우리는 종종 오랫동안 알며 지내왔던 다른 사람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면서 놀라기도 하고 심지어 그 사람이 변했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이는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르게 발현되는 개인의 다양한 속성을 간과한 채 상대방의 속성을 자신의 인식 틀 안에 무의식적으로 규정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평균·보통·상식·정상 등의 틀을 정해놓고 그 안에 들어오는 사람과 아닌 사람을 구분한다면 한 사람을 온전하게 이해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특정한 틀 안에 자신과 타인을 가두게 된다.

개개인의 몸에 맞게 조절해 편안한 운전과 사고를 줄여주는 가변형 운전석처럼 한 사람을 평균 또는 정상이라는 사고의 틀 안에 가두지 않고 이해하고 소통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특정 기준에 맞추어 판단하지 않고 다양한 요소와 상황에서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는 가변형 사고가 필요하다.
김재석 국가인권위원회 대전사무소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날씨]대전·충남 1~5㎝ 적설 예상…계룡에 대설주의보
  2. 대전시장 도전 許 출판기념회에 與 일부 경쟁자도 눈길
  3. '대통령 세종 집무실', 이 대통령 임기 내 쓸 수 있나
  4. "대전 충남 통합논의" … 金총리-與 충청권 의원 전격회동
  5. 대전역 철도입체화, 국가계획 문턱 넘을까
  1. 천안법원, 정지 신호에도 직진해 사망자 유발시킨 30대 중국인 벌금형
  2.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국립시설 '0개'·문화지표 최하위…민선8기 3년의 성적표
  3. 대전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 열려
  4. 대전충남 행정통합 발걸음이 빨라진다
  5. '물리적 충돌·노노갈등까지' 대전교육청 공무직 파업 장기화… 교육감 책임론

헤드라인 뉴스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국립시설 `0개`·문화지표 최하위…민선8기 3년의 성적표

[대전, 일류 문화도시의 현주소] 국립시설 '0개'·문화지표 최하위…민선8기 3년의 성적표

대전시는 오랜 기간 문화 인프라의 절대적 부족과 국립 시설 공백 속에서 '문화의 변방'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민선 8기 이장우 호(號)는 이 격차를 메우기 위해 대형 시설과 클러스터 조성 등 다양한 확충 사업을 펼쳤지만, 대부분은 장기 과제로 남아 있다. 이 때문에 민선 8기 종착점을 6개월 앞두고 문화분야 현안 사업의 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대전시가 내세운 '일류 문화도시' 목표를 실질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단순한 인프라 확충보다는 향후 운영 구조와 사업화 방안을 어떻게 마련할는지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중도일..

"대전 충남 통합논의" … 金총리-與 충청권 의원 전격회동
"대전 충남 통합논의" … 金총리-與 충청권 의원 전격회동

김민석 국무총리와 더불어민주당 충청권 의원들이 대전시와 충남도 행정통합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전격 회동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얼마 전 충청권을 찾아 대전 충남 통합에 대해 긍정적 메시지를 띄운 것과 관련한 후속 조치로 이 사안이 급물살을 탈 수 있을지 주목된다. 복수의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김 총리와 민주당 충청권 의원들이 15일 서울에서 오찬을 겸한 간담회를 갖는다. 김 총리와 일부 총리실 관계자, 대전 충남 민주당 의원 대부분이 참석할 것으로 전해졌다. 회동에서 김 총리와 충청권 의원들은 대전 충남 통합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대전역 철도입체화, 국가계획 문턱 넘을까
대전역 철도입체화, 국가계획 문턱 넘을까

대전 원도심 재편의 분수령이 될 '대전역 철도입체화 통합개발'이 이번엔 국가계획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14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초 철도 지하화 선도지구 3곳을 선정한 데 이어, 추가 지하화 노선을 포함한 '철도 지하화 통합개발 종합계획' 수립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종합계획 반영 여부는 이르면 12월, 늦어도 내년 상반기 중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당초 국토부는 12월 결과 발표를 예고했으나, 지자체 간 유치 경쟁이 과열되면서 발표 시점이 다소 늦춰질 가능성도 점쳐진다. 실제로 전국 지자체들은 종합..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까치밥 먹는 직박구리

  •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 ‘겨울엔 실내가 최고’…대전 곤충생태관 인기

  • 병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 병원도 크리스마스 분위기

  • 트램 2호선 공사현장 방문한 이장우 대전시장 트램 2호선 공사현장 방문한 이장우 대전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