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딸에 대하여'

  • 오피니언
  • 월요논단

[월요논단] '딸에 대하여'

최영민 대전평화여성회 공동대표

  • 승인 2024-09-22 23:04
  • 신문게재 2024-09-23 18면
  • 송익준 기자송익준 기자
a
최영민 대표
폭염이 물러가고 드디어 가을이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재난 수준의 더위를 힘겹게 지나온 사람들과 뭇 생명들에게 주말엔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렸다. 비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내리고 빗물을 포함해 모든 물은 낮은 곳으로 흘러 바다로 이르는 하방연대의 표상이다. 약하고 부드러운 물끼리 모여 만남을 이루듯 사람도 서로 연결되어 살아갈 때 삶은 아름답다.

9월 첫주 양성평등주간을 맞이하여 준비한 대전여성영화제 상영작 중 '딸에 대하여'영화 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시지정보조금 사업으로 수탁하여 양성평등주간 행사를 추진해오던 대전여성단체연합은 대전시와 영화 상영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 만났지만 '딸에 대하여' 영화에 성소수자가 나온다는 이유로 양성평등주간에 상영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으니 다른 영화로 대체하라는 공문을 보내왔다. 대전여성단체연합은 누구든 어떤 이유로든 배제와 혐오를 용인하면 안 된다는 의견을 모아 보조금을 전액 반납하고 시민후원금을 모아 계획대로 영화제를 성황리에 마쳤다.

'딸에 대하여'영화를 보고 감독과의 대화까지 참여한 후, 난 영화와 감독의 성숙함에 매료되었다. 성소수자는 말 그대로 우리 사회의 소수자를 대변하는 하나의 기표일 뿐이었다. 애초에 그렇게 알고 있었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는 이런 영화를 왜 상영하지 말라고 했을까 의아했다. 남편을 먼저 보내고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엄마와 시간강사로 일하는 딸과 딸의 동성연인이 영화의 주요 인물이지만 이 영화의 핵심 주제는 나이듦과 돌봄, 가족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다. 전세값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동성연인과 엄마집에 들어온 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엄마, 그 엄마가 요양원에서는 환자의 부당한 처우에 대해 맞서는 요양보호사였다. 가족과 모녀, 삶의 복합성을 그대로 드러낼 뿐 어느 것도 판단하지 않는 이미랑 감독의 카메라는 성정체성 너머 사람에 대한 사랑과 존엄이 깃들어 있었다.

양성평등주간이니까 양성인 남녀평등만 얘기하면 되지 왜 성소수자 소재 영화를 상영해야 하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양성평등은 젠더 이퀄리티(gender equality) 개념을 협소하게 해석한 것이다. 양성평등은 여성주의의 덫이라는 말이 있다. 평등은 남녀뿐 아니라 성차별과 사회구조적 차별을 함께 제거해나가는 의미지 남녀평등만 실현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여성주의 자체가 이미 노동, 정치, 환경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산되고, 평등은 똑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공정한 대우를 받는 것이다. 여성혐오, 다양한 혐오의 근저에는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이분법적 구조가 공고하게 짜여있다.



개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요소들이 무엇이든지 그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환대의 공동체가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아닐까. 비단 성정체성뿐 아니라 누구와 살 것인가, 누구와 가족을 구성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 인가의 문제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내가 정한 기준과 틀을 정해놓고 자기 입장과 생각이 다르다고 말할 순 있지만 그들의 권리를 침해할 순 없다.

'딸에 대하여'상영에 대하여 상영 중지 민원을 넣었던 분들이 기독교계 일부 사람들이라고 들었다. 기독교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예수의 복음이 사람을 구별해서 전달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성별, 계층, 인종, 장애여부, 성정체성에 상관없이 종교가 모든 개별적인 존재의 권리를 확장하는 일에 헌신해야 하지 않을까.

우여곡절 속에 단 며칠 사이 498명이 후원금을 보내와 '파도를 넘어, 성평등으로' 2024 대정여성영화제 행사가 성료되는 것을 보면서 애초에 페미니즘이 타자에 대한 이해와 소수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려는 움직임에서 생겨났다는 점을 다시 확인했다.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세상, 성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길 희망하는 사람들, 솔선해서 대여비를 받지 않고 영화를 상영할 수 있도록 해준 영화사와 함께 이뤄낸 2024 대전여성영화제가 모두의 영화제가 되었기에 더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최영민 대전평화여성회 공동대표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2025 국감] "출연연 이직 대책 마련 시급… 연봉보단 정년 문제"
  2. 밀양시 홍보대사, 활동 저조 논란
  3. 응원하다 쓰러져도 행복합니다. 한화가 반드시 한국시리즈 가야 하는 이유
  4. "대전 컨택센터 상담사님들, 올 한해 수고 많으셨습니다"
  5. 유등교 가설교량 안전점검
  1. 유성구장애인종합복지관, 여성 장애인들 대상 가을 나들이
  2. 김태흠 충남도지사, 일본 오사카서 충남 세일즈 활동
  3. "행정당국 절차 위법" vs "품질, 안전 이상없어"
  4. 박경호 "내년 지선, 앞장서 뛸 것"… 국민의힘 대전시당위원장 도전장
  5. ‘자랑스런 우리 땅 독도에 대해 공부해요’

헤드라인 뉴스


대전시 국감서 `0시 축제` 예산 둘러싸고 격돌

대전시 국감서 '0시 축제' 예산 둘러싸고 격돌

2년 연속 200만 명이 다녀간 대전시 '0시 축제' 운영 재정을 둘러싸고 여당 의원과 보수야당 소속인 이장우 대전시장이 24일 뜨겁게 격돌했다. 이날 대전시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대전시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선 민간 기부금까지 동원 우회 재정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맞서 국민의힘 광역단체장인 이 시장은 자발적 기부일 뿐 강요는 아니라고 해명하면서 여당 주장에 대해 정면 반박했다. 민주당 한병도 의원(익산을)에 따르면 3년간 0시 축제에 투입된 시비만 124억 7000만 원, 외부 협찬 및 기부금까지 포함..

[갤럽] 충청권 정당 지지도… `더불어민주당 51%, 국민의힘 29%`
[갤럽] 충청권 정당 지지도… '더불어민주당 51%, 국민의힘 29%'

충청권에서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힘을 앞서는 여론조사 결과가 24일 나왔다. 한국갤럽이 21~23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정당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대전·세종·충청에서 더불어민주당은 51%, 국민의힘은 29%를 기록했다. 이어 개혁신당 4%, 조국혁신당 2%, 진보당 1%로 나타났다. 무당층은 14%에 달했다. 전국 평균으론 더불어민주당 43%, 국민의힘 25%, 조국혁신당 3%, 개혁신당 2%, 진보당 1%, 기본소득당 0.2%, 사회민주당 0.1%, 무당층 25%로 조사됐다. 충청권에서 이재명 대통령 직무수..

[기획] `가을 정취 물씬` 자연이 살아 숨쉬는 충남의 생태명소
[기획] '가을 정취 물씬' 자연이 살아 숨쉬는 충남의 생태명소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태적 가치를 고스란히 간직한 충남도의 명산과 습지가 지친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 힐링 여행지로 주목받고 있다. 청양 칠갑산을 비롯해 예산 덕산, 공주 계룡산, 논산 대둔산, 금산 천내습지까지 각 지역은 저마다의 자연환경과 생태적 특성을 간직하며 도민과 관광객에게 쉼과 배움의 공간을 제공한다. 가을빛으로 물든 충남의 생태명소를 알아본다.<편집자 주> ▲청양 칠갑산= 해발 561m 높이의 칠갑산은 크고 작은 봉우리와 계곡을 지닌 명산으로 자연 그대로의 울창한 숲을 지니고 있다. 칠갑산 가을 단풍은 백미로 손꼽는다...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시 국감…내란 옹호 놓고 치열한 공방 대전시 국감…내란 옹호 놓고 치열한 공방

  • 유등교 가설교량 안전점검 유등교 가설교량 안전점검

  • ‘자랑스런 우리 땅 독도에 대해 공부해요’ ‘자랑스런 우리 땅 독도에 대해 공부해요’

  • 상서 하이패스 IC 23일 오후 2시 개통 상서 하이패스 IC 23일 오후 2시 개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