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하추동]"이런 저런 일에 숨겨진 요런 생각"

  • 오피니언
  • 춘하추동

[춘하추동]"이런 저런 일에 숨겨진 요런 생각"

김충일 북-칼럼니스트

  • 승인 2024-11-26 16:43
  • 신문게재 2024-11-27 18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김충일 북칼럼니스트
김충일 북-칼럼니스트
며칠 전 병원에 가기 위해 일찍 집을 나섰다. 아파트 출입구를 나오니 승용차 위엔 낙엽이 오소소 소리 없이 한 겹씩 살옷을 벗어 놓으며 내려 앉아있다. 은행나무 잎은 진한 노랑으로 물들어 바람이 스쳐만 가도 엉켜져 흩날리고, 열매 맺기를 억압당한 감나무 잎들도 고난의 시절을 끝내려는 듯 잎마다 낙하의 신세가 되어간다. 바람에 흔들리며 아파트 뒷담 길을 지키던 억새풀도 이제 푸른색을 숨기고 매몰찬 시절인연과 작별하나보다.

진료를 마친 후에 기분 전환에 좋을 듯싶어 중촌공원으로 발길을 옮긴다. 지상에 내려 앉아 바람에 쓸리는 낙엽을 밟으며 걷다보니 이런 저런 생각에 젖어든다. 이 때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홀가분하다'는 <토지> 박경리 선생의 말씀이 떠오른다. 왜 일까? 방금 전 "세월이 가져다 준 상처입니다. 어쩌시겠습니까. 이제는 고쳐가면서 같이 가야지요"란 의사선생님의 잔음 때문일까. 갑자기 불어 닥친 찬바람이 몰고 오는 숙살지기(肅殺之氣) 때문일까. 아님 낙엽 속에 올 해 겪은 풍진과 같은 이런저런 일(이야기)들이 요런 저런 사유의 파편이 되어 가난해진 심신을 두드린 탓 일까?

뭐 살다보면 이런 일 저런 일 다 겪기 마련이다. 시야를 넓고도 깊게 보아야 할 '노모를 누가, 어떻게 섬길 것인가 라는 문제'를 정리해야 하는 이런 일, 조카의 '대학 진학 문제'로 상의를 구하는 막냇 동생에게 유연하게 다양한 원리를 섭렵할 기회를 줘야하지 않을까라는 수용이 의문시되는 응답을 해야 하는 저런 일, 지난 6년여 동안 해 오던 '평생 교육기관에서의 강의여부 문제'를 플러스-마이너스 양극단 중 어느 한 쪽에 기울기를 못하는 우유부단함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요런 일, 며칠 내에 편집 마감해야 할 책자의 목차를 정하지 못해 이 원고 저 원고를 넣고 빼는 일, 갖가지 일들이 손가락으로 세기가 부족하다.

세상사. 바람결에 티끌인양 무심히 내몰아 흘려보낼 이런 일도 있지만, 삶의 지반을 지켜줄 단단한 일이기에 어떻게든 섬겨야하고, 지켜야하고, 바로 세워 다스려야 할 저런 일도 있다. 삶의 모습처럼 일의 빛깔과 냄새는 좋든 나쁘든 다변적이기에, 이런 다양성을 지닌 세상사의 지극한 사리(事理)를 그냥 간과할 순 없다. 그 사리의 처음과 끝은 선택이다. 선택은 스스로의 방향을 정하고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진다는 사실을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선택의 문제로 고민하는 일은 늘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선택 과정에서의 진지한 고민은 삶을 더 가치 있게 만들어준다. 특히 내가 택한 길이 가시밭길 일 때 그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그 터널을 빠져나와 되돌아보면 삶의 의미가 더욱 충만해졌음도 또한 사실이다.

여기서 셰익스피어 극에서 햄릿의 독백을 패러디 해보자. "선택은, 곰곰이 새길 경우, 일부만 현명하다./그리고 언제나 4분지 3은 겁쟁이다. (…)맞아, 선택의 결과는 /선택에 대한 명분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선택의 과정에선 지푸라기 하나를 놓고도 위대하게 싸우는 거다, 나의 운명이 걸려 있다면."(4막 4장) 즉 자신이 선택했다면, 자기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지푸라기 하나를 놓고도 위대하게 싸우지'만, 통제 할 수 없는 것은 그냥 받아들이자는 사유의 질문이다. 요런 물음은 사유의 틀 일 뿐만 아니라, 선택명제의 궁극적 기능은 '이것이냐, 저것이냐'라는 대등한 두 현상을 나침반 삼아 열린 생각의 제 3의 길을 열 수 있게끔 돕는 일이다.

삶도 그럴게다. 이런 저런 일의 선택의 기로에서 사유와 실행의 기준이 모두 다르듯 적절함은 오직 나만이 알 수 있을게다. 단독자(單獨者)로서의 자기 성찰이 중요한 이유다. 타인과의 비교가 바람 불 듯 일상인 세계에서 우리는 계속 흔들릴 것이다. 하지만 나름의 척도과 중심을 익히면 휠지언정 꺽이진 않을 것이다. 인생은 매번 흔들리면서도 나름의 중심을 찾는 과정이다. 한 해를 마무리 짓는 이 때. 삶은 '앎의 양이 아니라 선택의 장에서 의심하며 깨친 사유의 질이다'라는 산책의 아포리즘을 선물로 얻었다. 자박자박 낙엽 쌓인 조촐한 숲길이 좋았고 냄새도 좋았다. 그래 이런 저런 일 겪어내느라 한 해 수고 많이 했고, 고마웠어.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부산 70세 이상 버스 교통비 지원, 조례 제정 추진
  2. 대전교도소·대전의사회 협력, 수용자 대면진료 ‘메디컬센터’ 전국 첫 개설
  3. '대학생이 제안한 위성을 우주로'…항우연 경연대회 7개 팀 선정
  4. 32사단, 대둔산에서 6·25 전사자 유해발굴 착수
  5. 대전 금연구역 5만여 곳에 지도원 35명… 단속 한계에 정책 실효성 의문
  1. [사이언스칼럼] 발전소를 더 지어도 풀리지 않는 전력망의 기술 과제
  2. [책으로여는 미래] AI 시대, 깊이 읽고 바르게 판단하는 힘…학교도서관에서 키운다
  3. [세상보기] 각자도생의 시대
  4. 고교 이주배경학생 급증하는데…대전·세종 한국어학급 '0'
  5. 육군 32사단, 세종서 화학탄 공격 대비 대량사상자 관리 훈련

헤드라인 뉴스


서산공항 운명 가를 타당성 재조사, 서산시 경제·정책성 확보 총력

서산공항 운명 가를 타당성 재조사, 서산시 경제·정책성 확보 총력

충남 서산시가 서산공항 건설사업의 타당성 재조사에 본격 대응하며 사업 정상 추진을 위한 경제성과 정책성 확보에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서산시는 서산공항 건설사업의 총사업비 증액에 따라 진행되는 타당성 재조사에서 공항 건설의 필요성과 지역 발전 효과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충남도와 긴밀한 협력체계를 구축해 대응할 계획이라고 22일 밝혔다. 이번 재조사는 서산공항 건설사업비가 기존 484억 원에서 899억 원으로 늘어나면서 추진됐다. 국토교통부는 8월 기획예산처에 타당성 재조사를 요청했으며, 기획예산처는 15일 한국개발연구원(KD..

금강유역 물관리·소방 역량 결집… 재난 대응망 강화
금강유역 물관리·소방 역량 결집… 재난 대응망 강화

기후위기 시대 복합재난에 대응하기 위해 물관리와 소방 전문기관이 손을 맞잡았다. 한국수자원공사(K-water) 금강유역본부(본부장 이종식)는 23일 전북 전주시 본부에서 전북소방본부(본부장 진형민)와 위기대응 공동 협력체계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최근 집중호우와 태풍, 대형화재 등 재난 양상이 복잡해지는 상황에서 양 기관이 보유한 전문성과 기반시설을 연계해 현장 대응력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이번 협약의 핵심은 재난 발생 시 물관리 전문기관의 시설과 자원을 소방 대응체계에 적극 활용하는 데 있다. 우선 시설물의 안정적인..

20년째 제자리 성남중 설립…대전 동구의회 대책 촉구
20년째 제자리 성남중 설립…대전 동구의회 대책 촉구

대전 동구 성남동에 중학교 학교용지가 계획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학교 설립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학생들의 통학권 보장과 지역 간 교육격차 해소를 위한 중학교 설립 필요성이 다시 제기됐다. 23일 대전 동구의회에 따르면, 이지현 의원은 제296회 임시회 제3차 본회의에서 성남동 지역 학생들의 통학 여건 개선과 교육격차 해소를 위한 '성남중 설립 촉구 건의안'을 발의했다. 이번 건의안은 2004년 성남동 구성지구에 중학교 학교용지가 계획된 이후 20년 넘게 학교 설립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지속되고 있는 주민들의 교육환경..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수험생들의 꿈을 향한 섬세한 붓 터치 수험생들의 꿈을 향한 섬세한 붓 터치

  • 2026 대전 장애인 취·창업박람회 성료 2026 대전 장애인 취·창업박람회 성료

  • 대전 3대 하천 가을 꽃단지 ‘인기’ 대전 3대 하천 가을 꽃단지 ‘인기’

  • 대전경찰청, 제81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 개최 대전경찰청, 제81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 개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