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현의 재미있는 고사성어] 제208강 세모(歲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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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현의 재미있는 고사성어] 제208강 세모(歲暮)

장상현/전 인문학 교수

  • 승인 2024-12-31 13:28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제208강 세모(歲暮) : 한해가 저무는 때, 섣달그믐께

글 자 : 歲(해 세/ 설날, 년) 暮(저물 모)



내 용 : 세모는 섣달그믐께, 세밑, 년 말 (東亞 漢韓中辭典 1983년 동아출판사)

한 해(甲辰年)가 저물었다. 많은 일들이 지나갔다. 돌아보니 좀 아쉽기는 하나 모든 분들 덕분에 한 해를 보람 있게 보냈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새해의 소망(所望)을 잔뜩 품고 또 다시 시작해 보는 거다.

守歲(수세/ 제야의 밤을 새우며)

門上揷桃何詭誕(문상삽도하궤탄) 대문에 꽂는 도부(桃符) 너무도 허황되고

庭中爆竹奈支離(정중폭죽내지리) 뜰 안의 폭죽 소리 시끄럽고 지루 하네

?瘟丹粒猶虛語(벽온단립유허어) 벽온단으로 온역(瘟疫)피함도 헛말이지만

爲倒深杯故不辭(위도심배고불사) 깊은 술잔 기울이려 짐짓 사양 않노라



桃符(도부) : 설날 아침에 악귀를 쫓기 위해 문짝에 붙이던 조그마한 나뭇조각

瘟丹(벽온단) : 예전에 전염병을 물리쳐 막는다던 알로 된 약(藥)

『동문선』 권 20에 실린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칠언절구(七言絶句)이다.

첫 구절에 나오는 도부(桃符)는 복숭아나무로 만든 부적이란 의미이다. 이는 악귀(惡鬼)를 쫓는 부적의 일종으로 복숭아나무 판자에 신도(神?)와 울루(鬱壘)라는 두 신상(神像)을 그려서 대문 곁에 걸어 두어 악귀를 쫓는다는 고사에서 유래된 것이다.

마당에서 폭죽을 터뜨려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것도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풍속의 하나였다. 또 열병을 물리치는 데 유용하다는 벽온단(?瘟丹)을 만들어 향으로 피우거나 단약(丹藥)으로 술과 함께 복용하기도 하였다. 궁중에서는 내의원에서 제작하여 임금께 진상하기도 하고 민간에서 만들어 서로 선물하기도 하였다. 이규보는 이런 부적이나 폭죽놀이, 벽온단 등은 모두 실제 효용이 없는 헛소리라 치부하면서도 제석(除夕)에 술을 마실 수 있다면 사양하지 않겠노라는 호쾌한 일면을 보여 주고 있다.

위의 시는 짧은 칠언 절구이지만 제야(除夜)에 행하는 여러 풍습이 고루 담겨 있다. 보통 수세(守歲)는 '해 지킴'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섣달그믐 밤에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새우는 풍습에서 시작되었다

해가 갈수록 절기(節氣)와 명절(名節)이라는 마음 설레는 일이 없어지지만, 세모(歲暮)는 한해의 마지막 역할을 해주는 부분이기에 한 해를 막연하나마 돌아보게 된다.

소식(蘇軾)이 지은 「궤세(饋歲)」, 「별세(別歲)」, 「수세(守歲)」의 시(詩) 서문(序文)에 "한 해가 저물 때에 서로 음식물을 가지고 문안하는 것을 '궤세(饋歲)'라 하고,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서로 불러 함께 마시는 것을 '별세(別歲)'라 하고, 섣달그믐 저녁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는 것을 '수세(守歲)'라 하니, 촉(蜀) 지방의 풍속이 이와 같다."라고 하였는데, 중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고려 때부터 수세(守歲)의 풍습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섣달그믐 밤에 잠을 자지 않는 이 풍속은 '경신수야(庚申守夜)'라는 고사와 관련이 있다. 곧, 60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경신일(庚申日)이 되면 사람의 몸에 기생하고 있던 삼시충(三尸蟲)이 잠든 사이에 몸 밖으로 빠져나가 상제(上帝)에게 그동안의 죄과를 낱낱이 고해바쳐 수명을 단축시킨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를 막으려고 잠을 자지 않고 지킨다는 것이다.

이 후로부터 섣달그믐날이 경신일(庚申日)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렇게 밤을 새우며 액막이를 하는 수세(守歲)풍속은 고려 때 매우 성(盛)했고 조선시대까지 행해졌다.

또 『동국세시기』 에 "섣달그믐날 밤 인가에서는 방, 마루, 다락, 곳간, 문간, 뒷간에 모두 등잔을 켜놓는다. 흰 사기 접시 하나에다 실을 여러 겹 꼬아 심지를 만들고 기름을 부어 외양간, 변소까지 불을 켜놓아서 마치 대낮 같다. 그리고 밤새도록 자지 않는데 이를 수세(守歲)라 한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제야에 집안 곳곳에 등불을 켜놓는 것은 악귀를 쫓기 위한 풍습(風習)이다. (인터넷 守歲 참조)

수세(守歲)가 실제 부정을 쫓고 병을 막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해마다 일정하게 반복적으로 행하는 풍속은 사회 구성원에게 안정감과 기대를 갖게 한다. 하지만 공동체가 다 같이 행하는 세시 풍속의 의미가 쇠퇴한 요즘은 생활의 마디를 느끼기 힘드니, 해가 바뀐다는 것이 그저 달력이 바뀐다는 의미로 보면 될 것이다.

옛적 세모(歲暮)에는 예절(禮節) 또한 중시했고, 이를 잘 지켜 어른에 대한 공경(恭敬)과 나눔의 예(禮)를 실행했다.

섣달 그믐날이 되면 집안의 어른에게 고기나 술 기타 음식을 보내기도 하고, 어른이 아랫사람에게 보내기도 하는데 특이한 점은 아랫사람이 웃어른에게 드리는 세찬은 어른이 보내는 것보다 적어야 한다. 그 이유는 세찬을 빙자해서 뇌물이 오가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로 사회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아름다운 풍속임에 틀림이 없다.

그 외에도 묵은세배, 세모등불행렬 등 이웃과 함께하는 우리네 조상님들의 지혜와 사랑이 담긴 아름다운 풍속이라고 자랑할 만한 소중한 문화이다(家禮圖鑑 2,000년 韓國譜學硏究員 卷根社 참조)

세모(歲暮)!

우리 조상들이 지키려 했던 어쩌면 허상인 것 같지만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의미심장(意味深長)한 문화임에 틀림이 없다. 힘들고 괴로운 일상에서 서로를 위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기위해 자율적으로 행했던 전통의식이 호방스러우면서 정(情)을 깊이 느낄 수 있는 가엾은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다.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시각에, 지나온 시간을 성찰(省察)하고 새로운 각오로 새해를 준비하는 것은 큰 의미의 세모(歲暮)에 할 일이라 할 수 있다.

장상현/전 인문학 교수

장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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