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율사들의 싸움방식

  • 오피니언
  • 시사오디세이

[시사오디세이] 율사들의 싸움방식

송복섭 한밭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 승인 2025-03-10 10:28
  • 신문게재 2025-03-11 18면
  • 심효준 기자심효준 기자
2023120401000190300005941
송복섭 교수
소설로 출간되었다가 인기에 힘입어 영화와 넷플릭스 드라마로 흥행한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를 보면, 주인공은 출세한 신분을 상징하는 고급 세단을 몰고 다니며 업무를 본다. 링컨 차를 타고 있을 때 복잡하게 꼬인 변호 사건의 실마리를 푸는 아이디어가 잘 떠오른다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억울하게 누명을 쓴 피해자를 절묘한 논리로 역경에서 구하는 장면이 반복되지만, 압권은 살인혐의가 있는 갑부를 변호하는 일이었다. 줄곧 의뢰인을 의심하지만, 고액의 수임료보다도 억울함을 호소하는 끈질긴 설득에 진심이라 믿고 사건을 맡는다. 결국, 법의 허점을 노린 기막힌 변리로 무죄를 선고받게 만들지만, 혐의를 벗은 순간 갑부는 자신의 죄를 실토하고 주인공에게 비웃음을 날리며 사라진다. 평결은 이미 내려졌고 수임료는 두둑이 챙긴 후이었으며 주인공의 표정에 깃든 잠깐의 고뇌가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법원 판결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피고인이 재판의 부조리함과 법관의 완고한 태도에 분개해 석궁으로 판사에게 위해를 가하는 사건이 있었고 이 실화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재판과정이 얼마나 곤란하고 힘들면 예로부터 다툼을 법정으로 가져가지 말라는 당부의 말이 생겼겠느냐만, 여전히 시시비비는 결국 법정에서 다뤄진다. 복잡한 실체와 은밀한 내막을 어찌 법관이 심문조서와 자료만을 가지고 정확하게 판결을 내릴 수 있을까마는 제도는 그렇게 유지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공정한 재판을 법관의 판단에 전적으로 맡길 수 없다는 생각에 배심원 제도를 운용한다. 그런데도 미국 드라마에는 배심원들의 성향을 분석해 동정을 유도하는 전략과 막후에서 거래하는 시도들도 속속 등장한다.

좀처럼 법정에 서는 일이 없는 대부분 국민은 재판이 어찌 진행되는지 알 일이 없다. 그저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셈이다. 다만 모든 기소와 판결에 대해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하는 바람만을 갖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지난 몇 달 동안 진행된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변론은 재판과정에 대한 믿음에 의구심을 키우게 했다. 진실과 실체를 확인한다기보다는 기대하는 대답을 유도하기 위해 희한한 논지를 펴는가 하면, 증인을 윽박지르고 미비한 법적 절차를 문제로 삼는 모습을 거의 생중계로 지켜봤으니 말이다. 듣다 보면 모두가 그럴싸한 논리를 가지고 있지만, 진실을 밝히는 일과는 동떨어진 논리 대결을 벌이는 드라마 속 장면을 지켜보는 느낌이다. 이기기 위해 열심히 싸우는 율사들의 모습이 애처롭고 억지를 강변하는 태도는 민망하기까지 하다.

어느 법조인은 한 칼럼에서 직업인으로 십수 년 그리 살다 보면 사람 자체가 그렇게 변하는 것 같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율사들은 일반인과는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법정이 원래 그런 곳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그전까지는 몰랐던 실체를 국민 다수가 이번 기회에 적나라하게 지켜봤다는 데 고민이 있다. 더는 법정이 정의를 구현하는 곳이 아니라 공감하기 어려운 논리로 율사들끼리 싸우는 전쟁터이고 진실보다는 승리와 그에 따른 보상이 관건인가 하는 이미지를 심어 줬다면, 선량한 국민은 앞으로 어디에 정의를 의탁할 것인가?

한 가지 기대하는 구석이 있긴 하다. 양심과 역사적인 심판이 있다는 것이다. 비록 어느 순간 법정에선 졌다 하더라도 의문을 남긴 사건은 나중에 누군가가 다시 조명한다는 사실이다. 탐사 보도가 됐든 영화가 됐든 세월이 흘러 다시금 사건을 되돌아보고 억울한 피해자뿐만 아니라 영리한 논리로 억울한 죄인을 만든 율사들도 함께 평가한다는 것이다.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가 소설 속 가상 인물이 아니라 현실의 율사라면 어땠을까? 고액의 수임료는 억울한 의뢰인을 구하고자 애쓰던 양심과 바꾼 평생의 형벌이 되지 않을까? 얼마 전 식사 자리에서 한 변호사가 되뇌던 말이 생각났다. 불쑥불쑥 그만두고 싶은 충동이 이는 참 힘든 직업이라고……. 남들에게는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일자리일 텐데, 그 이유가 이런 것 때문이었을까?

/송복섭 한밭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해수부, 중국과 해운 회담으로 현안 합의
  2. 해양사고 선박의 30%, 기존 행위 반복… 예방책 없나
  3. 더불어민주당 지방선거 당선자 현충원 참배! 허태정 방명록에 남긴 말은?
  4. 대전농협-보라미봉사단, 농촌 일손돕기 볼사활동 진행
  5. 장기수 천안시장 당선인, "시민과 함께 정책을 만들고 시민과 함께 미래 열 것"
  1. 천안 수신멜론축제 6~7일 개최
  2. 소비자원-정수기 사업자정례협의체, 학교 정수기 안전 사용 캠페인 진행
  3. [한화에어로 참사] "더는 일터에서 목숨 잃지 않길"…합동분향소 조문 잇달아
  4. 백석대 소셜비즈니스융합전공, 고려인 후손 돕기 모금 캠페인 전개
  5. 세종시 '탄소중립' 이벤트, 13일까지 지속… 어디로 가볼까?

헤드라인 뉴스


690g 초미숙아, 세종서 100일간 치료 끝 퇴원 앞둬

690g 초미숙아, 세종서 100일간 치료 끝 퇴원 앞둬

출생 당시 체중이 690g에 불과했던 초미숙 이른둥이가 100일이 넘는 치료 끝에 건강을 회복하고 퇴원을 앞두고 있다. 세종충남대학교병원은 임신 23주 5일 만에 태어난 극소저체중 이른둥이가 의료진의 집중 치료를 통해 건강하게 성장해 퇴원을 준비하고 있다고 5일 밝혔다. 경남 창원에 거주하는 산모 A 씨는 임신 23주차에 양막이 파열돼 세종충남대병원으로 긴급 전원됐으며, 하루 만에 시작된 진통으로 체중 690g의 초미숙아를 출산했다. 아기는 출생 직후 신생아 소생술을 받은 뒤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 치료와 정맥영양 치료 등을..

더불어민주당 지방선거 당선자 현충원 참배! 허태정 방명록에 남긴 말은?
더불어민주당 지방선거 당선자 현충원 참배! 허태정 방명록에 남긴 말은?

허태정 대전시장을 비롯해 더불어민주당 6.3지방선거 당선자들이 5일 현충원을 참배했다. 허 당선인은 더불어민주당 당선인들과 함께 현충탑에 분향하고 호국영령들에 대한 넋을 기렸다. 허 당선인은 참배 후 방명록에 "민생을 되살리고 시민주권 시대를 열어 대전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겠습니다."는 글을 남겼다. 이어 당선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에서 "대전의 국회의원 7분, 5분의 구청장 그리고 시의회 구의회 민주당의 절대적인 다수당의 지위를 갖게 됐다. 강력한 추진력으로 대전의 변화, 또 시민주권 시대를 여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무거운 책임..

400년 전 절절한 사부곡(思婦曲)…당진시 `안민학 애도문` 국가보물 승격 추진
400년 전 절절한 사부곡(思婦曲)…당진시 '안민학 애도문' 국가보물 승격 추진

당진시가 20대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아내를 향한 남편의 애틋한 사랑이 담긴 충남도 유형문화재 제243호 '안민학 애도문 및 백자명기'를 국가 지정 문화유산(보물)으로 승격시키기 위한 절차에 나선다. 시는 6월 5일 충남도 문화유산 안민학 애도문의 국가지정(보물) 승격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2018년 도지정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안민학 애도문은 안민학 선생이 부인을 여의고(1576년 5월 10일 병자년) 관에 넣은 부장품으로서, 한글로 쓰인 16세기 애도적 내용의 편지다. 애도문은 1978년 소유자가 14대 조모인 현풍 곽씨 묘를 충..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 지방선거 당선자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조문 대전 지방선거 당선자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조문

  • 지방선거 끝…선거벽보 철거 지방선거 끝…선거벽보 철거

  • 분주한 개표소 분주한 개표소

  • 허태정 대전시장 후보 당선 ‘확실’ 허태정 대전시장 후보 당선 ‘확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