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노벨상과 대전 골령골 학살 민간인 유해 현상 보존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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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디세이] 노벨상과 대전 골령골 학살 민간인 유해 현상 보존의 필요성

박양진 충남대학교 고고학과 교수, 대전충남 민언련 공동대표

  • 승인 2025-07-14 14:32
  • 신문게재 2025-07-15 18면
  • 심효준 기자심효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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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양진 교수
얼마 전 인류 진화와 고유전자 연구 분야에서 놀라운 성과가 국제 저명학술지인 셀과 사이언스에 동시에 발표되었다. 중국 연구진이 하얼빈에서 발견되었던 약 15만 년 전의 인류 두개골 어금니의 '치석'에서 DNA를 추출하는 데 성공하였고, 이 표본이 현생 인류의 사촌격인 데니소바인임을 밝혀낸 것이다.

2022년 스웨덴의 스반테 페보는 네안데르탈인의 게놈 서열을 처음으로 분석하고 데니소바인의 게놈을 해독한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가 문을 연 고유전자 분석과 복원 연구는 이제 시간적 범위도 더욱 오래전으로 확대되었고 유전자 추출과 복원 기술도 더욱 발전하였다. 수십만 년 전의 고인류의 화석에서 유전자 정보를 추출하고 분석할 수 있게 되었고, 그동안 축적된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여 극소량의 DNA로도 유전자 서열을 복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유전자 분석은 고대 인류의 진화 연구에만 활용되는 것은 아니다. 범죄 감식이나 실종자 확인 등에서도 유용하게 사용된다. 부패가 매우 심한 인골이라고 하더라도 날로 새롭게 발전하는 유전자 추출과 판별 기술을 통해서 신원을 확인할 수 있고, 그 확률은 시간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한국전쟁의 혼란기에 전국 곳곳에서 학살된 민간인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고, 그 가운데 대전 골령골에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민간인의 유해는 지난 십여 년 동안 발굴을 통해 수천여 구가 수습되었다. 세종시의 추모의 집에는 대전 골령골, 경산 코발트 광산, 김천 형무소 등에서 학살되었던 민간인의 유해 4000여 구가 안치되어 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행안부와 대전 동구청이 그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유해를 집단으로 화장한 후 이를 합사하려 추진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러한 행정 당국의 시도가 사실이라면 이는 민간인 학살의 핵심 증거를 회복 불가능하게 말살하고, 억울하게 돌아가신 가족의 유해를 찾으려는 유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의 최소한의 권리와 희망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행위이다.

아무리 훼손이 심한 유해라고 할지라도 유전자 정보를 추출할 수 있는 과학적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수십만 년 전 두개골에서 유전자 정보를 획득하는데 필요한 것은 0.3 mg의 치석에 불과하였다. 우리가 매년 충치를 염려하여 치과에서 긁어내는 그 치석이다. 이러한 최첨단의 분석 기술은 지금은 매우 어려울 수도 있고 비용이 많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과학 기술의 발전 속도를 감안한다면, 지금 안치된 민간인 희생자의 유해에서 앞으로 유전자 정보를 추출하고 신원을 확인할 가능성은 갈수록 열려 있다. 지금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를 집단으로 화장하려는 시도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실종된 자국 병사들의 유해를 발굴하고 신원을 확인하는 사업을 추진하면서, 적국이었던 베트남 병사 유해의 유전자 판정에 기술적, 재정적 도움을 제공하고 있다. 한국전쟁의 혼란기 속에서 부당하고 불법적인 국가 폭력의 희생자였던 민간인의 유해를 행정 당국이 집단 화장하려는 시도는 법적으로도 문제가 많지만, 윤리적으로도 정당하지 않은 일이다.

대전 골령골 등지에서 그동안 발굴을 통해 수습된 유해는 당연히 그대로 현상 보존하여 새로 설립될 위령 시설에 안치하여야 한다. 이후 국가의 재정적, 기술적 지원을 통해 장기적 계획에 따라 유전자 검사를 실시함으로써 한 사람 한 사람의 신원을 파악해야 할 것이다. 또한 신원 판정과 비교를 위해 갈수록 고령화되는 피해자 유가족의 유전자 정보를 확보하여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수천 구의 유해가 각각 누구인지를 밝혀내는 것이 국가 폭력의 희생자들과 그 유가족에게 합당한 최소한의 정의를 실현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박양진 충남대학교 고고학과 교수, 대전충남 민언련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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