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사각지대가 만든 비극"…대전 교제폭력 살인에 '방지 법 부재' 수면 위

  • 사회/교육
  • 사건/사고

"법 사각지대가 만든 비극"…대전 교제폭력 살인에 '방지 법 부재' 수면 위

피해자에 가해자 처벌 의사 묻는 현행법 문제
교제폭력 처벌·방지 법 없어 보호 조치도 어렵

  • 승인 2025-07-30 17:22
  • 신문게재 2025-07-31 6면
  • 정바름 기자정바름 기자
clip20250730170617
사진 출처=게티이미지뱅크, 본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대전 괴정동 전 연인 살해 사건으로 교제폭력 특별법 부재, 반의사불벌죄 문제가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사건 한 달 전 피해자가 가해 남성의 폭행에도 처벌을 원치 않았고 경찰의 안전조치 권유도 거절했으나, 그 기저에는 보복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피해자 의사와 관계없이 가해자를 처벌하고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는 장치가 시급하지만 관련 법 제정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30일 중도일보 취재 결과, 대전 서구 괴정동의 주택가에서 A(20대)씨가 전 연인 B(30대·여성)씨를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전날 범행 현장에서 발견한 휴대전화와 B씨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6월까지 A씨 관련 112신고를 4차례 한 것을 토대로 둘이 연인 관계였고 만남과 이별을 반복해왔던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지난 6월 27일에 발생한 4번째 신고 후 조치다. 당시 편의점에 있던 A씨가 타인과 시비가 붙었고 출동한 경찰까지 폭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B씨에게도 손목을 잡고 협박하는 등 물리적 폭력을 행했다. 당시 경찰은 공무집행방해죄와 폭행죄 혐의로 A씨를 입건했다. A씨가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B씨는 폭행에 대한 처벌불원서를 경찰에 제출했다. 폭행죄는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해 피해자가 원치 않는다고 하면 가해자 처벌을 할 수 없다. A씨가 유치장에 입감되고 나서 처벌불원서를 제출했기 때문에 경찰은 협박에 의한 것은 아니라고 봤다. B씨는 긴급상황 시 신고가 가능한 스마트워치 착용 권유도 2차례 거절했으며, 이후 경찰의 연락을 받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규정상 경찰의 안전조치는 대상자가 원치 않는다고 하면 집행할 수 없다. 전날 범행은 A씨가 유치장에서 나와 경찰의 추가 조사를 앞둔 상황에서 벌어진 것으로 파악됐다.



전문가들은 B씨의 행동을 두고 용서나 연인 간 애정에 의한 것으로만 보지 말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집, 직장, 가족, 개인 정보 등 사적인 것까지 공유하는 만큼 대부분의 교제 폭력 피해자들이 심리적 압박과 보복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앞서 B씨의 3차례 112 신고 내용 중에는 A씨가 식당에서 행패를 부려 재물 손괴 죄로 입건되거나, 피해자의 오토바이를 돌려주지 않아 접수된 것도 있었다. 피의자의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성향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정현주 대전YWCA성폭력가정폭력상담소장은 "피해자들을 상담해보면, 가해자를 용서하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위협적이고 공포스러운 상황을 모면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크다"라며 "자신의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가해자가 자신 또는 가족이나 지인까지 해코지를 할 지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피해자에게 처벌 의사를 묻는 현행법은 분명 문제"라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B씨가 경찰에 보호조치를 요청했어도 스마트워치 제공, APO 연락 외에는 사실상 방도가 없었다는 것이다. 교제폭력은 가해자를 엄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법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경찰 조사에서 A씨의 스토킹 정황은 포착되지 않았는데, 피해자와 가해자의 주거 분리·보호 등 응급조치 역시 스토킹 혐의가 있어야지만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여성계에서 반의사불벌죄 폐지와 교제폭력 특별법을 촉구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교제폭력 특별법 제정은 경찰청 본청에서 국회에 법 제정을 요구를 해왔으나 여전히 부재하다. 피해자의 심리적 불안 해소를 위해 수사당국과 전문 상담기관의 연계 지침도 필요한 상황이다.

대전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교제폭력 112신고 건수는 3225건이 접수됐고 매해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유선화 여성긴급전화 1366대전센터장은 "올해 5월까지 교제폭력, 스토킹으로 인한 접수된 상담 역시 259건으로 전년 동기(208건)보다 늘었다"며 "반복되는 교제 폭력·살인을 막기 위해선 관련 법 제정이 시급하다. 교제폭력은 피해자들이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최근 여성가족부에서 자가진단 체크리스트를 배포했는데, 의심될 경우 전문 상담기관의 도움을 받길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정바름 기자 niya15@

clip20250730170756
여성가족부 교제폭력 진단 체크리스트 (출처=여가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부산 사직야구장 재건축 국비 확보, 2031년 완공 목표
  2. "야구 참 어렵다"…김경문 한화 감독, 한국시리즈 5차전 총력 다짐
  3. '빛 바랜 와이스의 완벽 투구'…한화 이글스, 한국시리즈 4차전 LG 트윈스에 패배
  4. 몸집 커지는 대학 라이즈 사업… 행정 인프라는 미비
  5. 신탄진역 '아가씨' 성상품화 거리 대응 시민들 31일 집결
  1. 금강 세종보' 철거 VS 가동'...시민 여론 향배는 어디로
  2. 한화 이글스 반격 시작했다…한국시리즈 3차전 LG 트윈스에 7-3 승리
  3. [썰] 전문학, 내년 지선서 감산 예외 '특례' 적용?
  4. 국민의힘 대전시당 신임 위원장에 이은권 선출
  5. 홍영기 건양대 부총장, 지역 산학협력 활성화 공로 교육부장관상

헤드라인 뉴스


대전시 "트램 공법 위법 아냐… 예산 절감 효과 분명"

대전시 "트램 공법 위법 아냐… 예산 절감 효과 분명"

대전시가 도시철도 2호선 트램 복공판 공사 계약 과정에서 입찰 부정이 있었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즉각 반박했다. 복공판 공사 기법이 예산 절감 등의 이유로 필요했고, 업체 선정 과정 역시 관련 규제에 따라 적법하게 진행됐다는 것이다. 30일 최종수 대전시 도시철도건설국장은 시청 기자실을 찾아 더불어민주당 장철민 의원(대전 동구)이 제기한 복공판 공사 업체 부정 입찰 의혹 등에 "업체 선정은 대전시가 요청한 조건을 맞춘 업체를 대상으로 역량을 충분히 검토해 선정했다"라며 "사업 내용을 잘 못 이해해 생긴 일이다. 이번 의혹에 유감을..

"야구 참 어렵다"…김경문 한화 감독, 한국시리즈 5차전 총력 다짐
"야구 참 어렵다"…김경문 한화 감독, 한국시리즈 5차전 총력 다짐

"반드시 이겼어야 하는 경기를 이기지 못했다. 야구 참 어렵다." 김경문 한화 이글스 감독은 30일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리는 '2025 신한 SOL뱅크 KBO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KS·7전 4선승제)' LG 트윈스와의 4차전을 패배한 뒤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한화는 이날 선발 투수 와이스의 호투에 힘입어 경기 후반까지 주도권을 챙겼지만, 9회에 LG에 역전을 허용하며 4-7로 패했다. 와이스와 교체해 구원 투수로 나선 김서현의 부진에 김 감독은 "할 말이 크게 없다. 8회에는 잘 막았다"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대전시, 상장사 성장 지원 본격화… 전 주기 지원체계 가동
대전시, 상장사 성장 지원 본격화… 전 주기 지원체계 가동

'일류경제도시 대전'이 상장기업 육성에 속도를 내며 명실상부한 비수도권 상장 허브 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대전시는 지역 기업의 상장(IPO) 준비부터 사후관리까지 전 주기 지원체계를 구축해 기업 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강화할 계획이다. 대전시는 2022년 48개이던 상장기업이 2025년 66개로 늘어나며 전국 광역시 중 세 번째로 많은 상장사를 보유하고 있다. 시는 이러한 성장세가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도록 체계적인 지원과 시민 인식 제고를 병행해 '상장 100개 시대'를 앞당긴다는 목표다. 2025년 '대전기업상장지원센터 운영..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겨울철 대비 제설작업 ‘이상무’ 겨울철 대비 제설작업 ‘이상무’

  • 중장년 채용박람회 구직 열기 ‘후끈’ 중장년 채용박람회 구직 열기 ‘후끈’

  •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한화 팬들의 응원 메시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한화 팬들의 응원 메시지

  • 취약계층의 겨울을 위한 연탄배달 취약계층의 겨울을 위한 연탄배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