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지역과 대학이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교육문화권

  • 오피니언
  • 여론광장

[기고] 지역과 대학이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교육문화권

임현섭/충남대학교 응용생물학과 교수

  • 승인 2025-10-26 10:17
  • 신문게재 2025-10-27 18면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임현섭 교수
임현섭 교수
9월 교육부의 '글로컬대학 30' 사업 선정 최종 발표에 따라, 충남대학교와 공주대학교가 통합 기반으로 하는 사업 추진의 첫 단계를 시작했다. 2028년 통합대학 출범이라는 일정이 제시되면서, 지역사회에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교육의 도시로 성장해온 이 지역에서 대학이 지닌 의미와 정체성이 흔들릴지 모른다는 걱정은 충분히 이해되고 공감되는 부분이다. 대학은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도시의 문화와 경제, 시민의 자부심이 모여 있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역사회가 불안해하는 이유는 통합 그 자체보다, 통합대학의 비전과 목표가 충분히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학이 어디로,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과 그림이 보이지 않으니, 변화가 곧 상실로, 발전이 아닌 흡수로 비춰지는 것이다. 이제 통합은 행정 절차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과 가치의 문제이며, 대학과 지역이 어떤 미래를 함께 설계하느냐에 따라 이번 시도의 의미가 달라질 것이다.

세계 곳곳에는 대학이 지역과 함께 성장하며 도시의 품격을 높인 사례가 많다. 대표적으로 미국 위스콘신대 매디슨(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 과 텍사스 A&M대학 컬리지스테이션(Texas A&M University, College Station) 은 대학이 지역사회를 성장시킨 모범적 모델로 손꼽힌다. 인구 10만 명 남짓의 작은 도시가 대학을 중심으로 산업·예술·문화·창업이 어우러지는 '지식과 혁신의 도시'로 발전했다. 대학의 연구와 문화가 지역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지역의 자원이 다시 대학의 성장을 뒷받침하는 선순환이 자리 잡은 것이다. 대학이 지역을 키운 것이 아니라, 서로의 강점을 살려 함께 성장하며, 더 큰 공동의 가치를 만들어 낸 사례다.

이들 대학은 지역의 역사와 문화, 산업을 조화롭게 엮어 하나의 교육문화권(Educational?Cultural Zone) 을 형성하였고, 그 결과 전 세계의 수많은 학생이 각 대학이 가진 고유한 교육 철학과 문화를 배우기 위해 찾아오고, 다시 세계 곳곳에서 인재로 성장해왔다. 이것이 바로 지역의 특성을 기반으로 한 차별화된 교육문화가 만들어내는 선순환 구조이다. 우리 역시 이러한 차별화된 '우리만의 교육문화 벨트'를 구축할 때, 젊은 인재들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이고 정주할 수 있는 새로운 교육 생태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대학은 교육 공급자의 관점이 아니라, 전국과 전 세계의 학생이라는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교육상품으로서의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 미래의 학생들은 더 이상 지역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교육을 '상품'처럼 비교하며, 철학·경험·문화의 차이를 기준으로 대학을 선택한다. 따라서 우리 대학이 만들어가야 할 길은 단순한 표준화가 아니라, '우리 지역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차별화된 교육'이다. 지역의 역사, 문화, 과학기술, 예술, 그리고 시민의 삶이 어우러진 통합적 교육 경험이 곧 충남·세종·대전권 대학의 브랜드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철학이 구현될 때, 충남대학교와 공주대학교의 통합은 단순한 행정 조정이 아닌 대전·세종·충남을 아우르는 새로운 교육문화권의 창조로 나아갈 수 있다. 이 교육문화권은 어디서나 받을 수 있는 일률적이고 일반적인 교육이 아닌, 지역의 문화와 산업, 예술과 생활이 연결된 살아 있는 교육의 장이 되어야 한다. 학생들은 강의실을 벗어나 산업 현장에서 배우고, 예술가와 협업하며, 과학과 인문이 교차하는 현장에서 새로운 지식을 창조해야 한다.

특히 인문학적 깊이와 함께 현장 중심의 과학기술 교육이 결합될 때, 대학은 사고력과 실천력을 함께 키우는 새로운 교육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 대전·세종·충남은 이미 풍부한 문화유산과 예술적 자산, 그리고 과학기술 인프라를 품고 있다. 이러한 기반 위에 융복합 교육이 더해질 때, 우리 지역은 기술과 산업뿐 아니라 문화와 철학이 공존하는 진정한 창의문화도시로 거듭날 것이다. 결국 인문학적 깊이와 과학기술의 현장성을 함께 갖춘 차별화된 교육문화권이 완성된다면, 우리 지역은 더 이상 '지방의 대학도시'가 아니라, 대한민국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창의문화 생태계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지역의 성장을 동반시켜, 지역의 소멸이 아닌 지역의 확장을 이끄는 새로운 계기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희망과 비전을 가진 대학만이 지역을 성장으로 이끌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다. 미국의 많은 대학들이 그랬듯, 대학이 지역의 미래를 설계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때, 지역은 대학과 함께 더 크게 성장했다. 세계의 대학이 도시의 품격을 바꾸고 지역의 자부심을 키웠듯, 대학의 철학과 비전은 도시의 방향이 되고, 교육의 혁신은 지역의 도약이 된다.

충남대학교와 공주대학교도 마찬가지다. 이제 대학은 지역에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지역을 더 크게 만드는 희망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지역민에게 미래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함께 나아갈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줄 때, 지역은 대학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비전을 가진 대학만이 지역의 신뢰를 얻고, 그 신뢰가 다시 대학을 성장시키는 선순환을 만든다. 그때 비로소 이번 통합은 행정의 결과가 아닌, 지역과 대학이 함께 꿈꾸는 희망의 시작으로 완성될 것이다.

임현섭/충남대학교 응용생물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봉명동 시대 가고 '옥산 시대' 온다… 청주 농수산물 시장의 화려한 변신
  2. 전광석화처럼 뚫린 대전 숙원사업… 멈춘 현안들 속도전
  3. 내일부터 고유가 피해지원금 지급…첫 주는 출생년도 끝자리 요일제 적용
  4. 세종교육감 2차례 여론조사… 단일화 효과 반영되나
  5. 한밭대 우주국방첨단융합학과, 미래 안보·우주 인재 양성
  1. 출연연 공통행정 반대 목소리 잇달아 "중앙집중 통제 수단 변질"
  2. 한밭수목원 봄 나들이
  3. "부동층 잡아라" 대전교육감 예비후보 세 결집 표심 쟁탈전
  4. [주말 사건사고] 4월 마지막 주말, 화재로 인명·재산피해 잇따라
  5. 지난해 둔산·탄방 엘리베이터 나흘에 한번씩 멈췄다

헤드라인 뉴스


[기획] 선거때마다 장밋빛 청사진… 선거 끝나면 흐지부지 ‘찬밥’

[기획] 선거때마다 장밋빛 청사진… 선거 끝나면 흐지부지 ‘찬밥’

6월 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는 최대격전지이자 민심 바로미터인 충청 민심 잡기에 골몰하고 있다. 정치권은 선거철마다 지역 현안의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며 충청의 표를 애걸한다. 광역교통망 구축과 국가사업 유치, 대전교도소 이전, 원도심 활성화, 청년 유출 대응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여러 국정 현안에 우선순위가 밀리면서 흐지부지 되기 일쑤다. 지역 미래 성장동력 확충을 위한 주요 현안 상당수가 이처럼 해법을 찾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중도일보는 충청의 명운이 달린 6·3 지방선거를 30여 일 앞두..

"맛있는거 사먹을거에요" 고유가 피해지원금 신청 시작… 취약계층 발길
"맛있는거 사먹을거에요" 고유가 피해지원금 신청 시작… 취약계층 발길

27일 점심시간을 앞두고 찾은 대전 중구 오류동 행정복지센터. 민원실은 각종 서류를 발급받으려는 시민들로 붐볐지만, 한쪽에 마련된 고유가 피해지원금 신청 창구는 지난해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 때와 달리 비교적 한산했다. 긴 대기줄과 혼잡은 보이지 않았고, 조용히 신청을 마치고 돌아가는 시민들만 오갔다. 이날 창구에서 신청을 마친 차상위계층 오 모(70) 씨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번졌다. 오 씨는 지원금으로 무엇을 할 생각이냐는 물음에 "우리 같은 영세한 사람들은 이럴 때 한번 기분 내는 거지"라면서 "지인들과 맛있는 걸 사 먹을 계..

"파티원 구합니다"… 고물가 장기화에 대형마트·배달음식 소분
"파티원 구합니다"… 고물가 장기화에 대형마트·배달음식 소분

고물가 시대, 대형마트에서 상품을 나누거나 배달음식을 여러 사람이 소분하는 음식 나눔 모임이 생겨나고 있다. 그동안 창고형 대형마트 등에서 구매한 물품을 서로 나누는 형식은 자주 목격됐으나, 고물가 장기화에 일반 대형마트와 배달음식을 나누는 새로운 형식의 모임으로 진화하는 모습이다. 27일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과 SNS 등에는 대형마트부터 배달음식까지 다양한 분야의 소분 모임이 형성되고 있다. 이마트와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에서 구매한 상품을 N분의 1하는 형식의 소분 모임이 중심이다. 설명 글에는 "각종 마트와 온라인 쇼핑몰에서..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고유가 피해지원금 취약계층부터 지급 시작 고유가 피해지원금 취약계층부터 지급 시작

  • ‘3칸 굴절차량’ 실제 도로주행도 무난히 통과 ‘3칸 굴절차량’ 실제 도로주행도 무난히 통과

  • ‘초단기 계약, 임금 꼼수’…아파트경비원 처우 개선 촉구 ‘초단기 계약, 임금 꼼수’…아파트경비원 처우 개선 촉구

  • 한밭수목원 봄 나들이 한밭수목원 봄 나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