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생의 시네레터] 낭만과 액션이 만날 때 '휴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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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생의 시네레터] 낭만과 액션이 만날 때 '휴민트'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 승인 2026-02-19 16:47
  • 신문게재 2026-02-20 9면
  • 최화진 기자최화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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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휴민트' 포스터.
영화가 시작하면 커다란 방이 스크린 가득 펼쳐집니다. 호텔도, 여관도, 아파트도 아닙니다. 큰 창문이 보이고 침대가 가로누워 있고, 책상이 하나 있을 뿐 그 어떤 꾸밈도 없습니다. 그저 숙소라 부를 만한 곳에 키 큰 사내가 침대에 누웠다가 일어납니다. 마지막 장면도 장소는 다르지만 분위기와 인물의 행동이 첫 장면과 동일합니다. 수미상관의 이 공간적 특징은 인물의 정체성과 관련됩니다. 그는 정보기관의 요원이지만 낯선 이방에서 임무에 충실할 뿐 국가나 조직에 긴밀히 연관되어 있지 않습니다.

감독의 전작 <베를린>(2013)의 후속편인 듯한 이 작품은 앞서 언급한 공간의 유사성과 함께 인물도, 상황도 짝을 이룬 듯 대립적이거나 유사합니다. 주인공인 남쪽의 조 과장과 북쪽의 박건은 믿음과 사랑을 준 여인을 지키지 못한 사내들입니다. 그들의 목숨을 건 액션은 국가나 이념, 체제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의리의 문제입니다. 사람이라면 적어도 이런 정도는 해야 되지 않는가 하는 정서는 류승완 영화를 움직이는 동력이며, 더불어 그것을 저버린 인간들이나 상황에 대한 분노는 액션을 타당하게 만듭니다. 의리를 도외시하는 남쪽 정보기관의 정 처장이나 북쪽 총영사 황치성도 대립적 위치에서 유사합니다.



작품의 배경이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인 것이 또한 중요합니다. 모스크바, 평양, 서울로부터 모두 먼 국경지대의 도시야말로 낭만과 액션이 만나기에 충분합니다. 정치적 소속감과 영향력을 벗어나 인간다움이 드러날 수 있으면서 아울러 법과 제도로부터 먼 불법과 범죄의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의리와 낭만적 순정으로 무장한 사내들이 보여주는 화려하고 압도적인 액션이 바로 이 이방의 경계 도시에서 펼쳐집니다.

이 영화는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구조로 인해 <베를린>이나 <모가디슈>(2022)에 비해 긴장감이나 몰입감이 다소 덜합니다. 그럼에도 배우 조인성은 놀라운 매력을 보여줍니다. 청춘 액션 스타이거나 로맨스물의 젊은 주인공에서 한 단계 도약해 인간과 세계의 부조리함을 견뎌내는 묵직한 힘을 보게 합니다. 흡사 30대 이후의 신성일을 보는 듯합니다. 그는 <맨발의 청춘>(1964) 등의 청춘물을 지나 <휴일>(1968), <왕십리>(1976), <길소뜸>(1985) 등에서 수려한 외모만이 아니라 깊이 있는 연기력으로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잡아내는 아우라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영화 속 조인성 또한 명배우의 깊이와 아우라를 느끼게 합니다.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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