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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역에서>의 빅히트로 뒤늦게 개화(開花)한 톱 가수(top歌手) 진성의 또 다른 히트곡이 <보릿고개>다.
= "아야 뛰지 마라 배 꺼질라 가슴 시린 보릿고개 길 / 주린 배 잡고 물 한 바가지 배 채우시던 그 세월을 어찌 사셨소 / 초근목피의 그 시절 바람결에 지워져 갈 때 어머님 설움 잊고 살았던 한 많은 보릿고개여 / 풀피리 꺾어 불던 슬픈 곡조는 어머님의 한숨이었소~" =
구구절절 가슴을 쥐어짜며 눈물까지 요구하는 트롯(트로트)이 아닐 수 없다. <보릿고개>에 등장하는 초근목피(草根木皮)는 풀뿌리와 나무껍질이라는 뜻으로, 맛이나 영양 가치가 없는 거친 음식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실제 지난 보릿고개 시절엔 그것으로 생명을 구걸하고 유지했다. 따라서 그 즈음, 윤기 나는 흰 쌀밥에 더하여 여유롭게 술까지 먹는다는 것은 고관대작(高官大爵)이거나 아주 잘 자는 부자가 아닌 경우엔 불가능했다.
어제는 출근하니 아주 반가운 선물이 와 있었다. 평소 나를 어여삐 봐주시는 모 주류회사 회장님께서 보내신 신제품 보리소주였다. 2병씩 포장되어 열 개, 그러니까 스무 병이 들어있는 박스였다.
개봉하여 동료가 다섯 명이므로 그들 몫으로 다섯 포장(10병)을 추렸다. 포스트잇에 '기증'이란 표기를 하여 붙였다. 그리곤 그들의 옷장에 넣었다. 직원들이 출근하여 옷을 갈아입노라면 내가 선물(?)한 소주를 볼 것이다.
그럼 얼마나 반가워할까 싶어 괜스레 입가에 미소가 아지랑이로 피어올랐다. 어제는 오랜만에 외출한 눈보라가 갈 길을 잃은 날이었다. 폭풍한설이 몰려왔다가 잠잠해지고 다시금 경거망동을 일삼았다.
퇴근길 역시 마찬가지였다. 요양병원에 입원한 선배에게 들렀다. 근처의 식당에서 삼계탕 내지 갈비탕이라도 대접하고 싶다고 밝혔다. 하지만 휠체어에 의지하고 있는 선배가 손사래를 쳤다."다음에 날씨 좋은 날 가자."
건강처럼 소중한 건 다시없음을 깨달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시내버스에 올랐다. 집으로 들어서는 골목의 초입 편의점에서 치킨 한 조각을 샀다. 회장님께서 주신 보리소주에 맥주를 섞어 소맥(燒麥)을 마셨다.
기분이 '흐림'에서 '맑음'으로 치환되면서 하루의 피로가 저만치 계족산으로 달아났다. 그럴 즈음 아들이 친손자 모습을 찍은 사진을 가족 카톡방에 올렸다. 미래의 장군(將軍)감으로 보이는 녀석이 한없이 사랑스러웠다.
칭찬의 댓글을 달자 아들은 이어서 날도 꿀꿀하기에 부침개를 부쳐 며느리와 막걸리 한 잔을 하고 있다는 인증샷을 올렸다. 때는 이때다! 나 역시 마침맞게 즐기고 있던 소맥 사진의 업로드를 마다할 수 없었다.
[로드 투 퍼디션Road To Perdition]은 2002년에 개봉된 미국 영화다. 1931년 대공황과 금주령의 미국이 무대다. '죽음의 천사'라고 불리는 마이클 설리반(톰 행크스 분)이 주인공이다.
마피아 보스의 양아들이기도 한 그는 조직의 일원으로 중요한 임무를 해결하며 살아가고 있다. 물론 거기에는 상대 세력을 제거하는 일(킬러)도 포함되어 있다. 집에서는 자상한 남편이자 든든한 아버지인 마이클이다.
그렇지만 그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두 아들에겐 차마 자신의 직업을 말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보스의 친아들 코너와 함께 라이벌 조직에게 경고 메시지를 전하러 갔는데 코너가 보스의 명령을 어기고 돌발적인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심각한 일이 발생한다. 평소 아버지의 직업을 궁금해 하던 마이클의 큰 아들 마이클 주니어가 그 광경을 목격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아버지의 신임을 잃게 된 코너는 마이클 일가(아내와 막내)를 처참하게 살해한다.
마이클과 그의 큰 아들은 아슬아슬한 시간 차로 목숨을 건진다. 마이클은 이 모든 일의 배후에 조직이 개입되어 있다고 판단하고 어린 아들과 함께 거대한 조직을 상대로 힘겹고 험난한 복수의 여정을 시작한다.
결국 마이클은 철저한 복수를 실천하고 죽지만 살아남은 큰 아들은 다음과 같은 독백(獨白)으로 영화 속 명대사를 남긴다. "아버지가 두려워한 건 하나였다. 내가 아버지처럼 되는 것."
이 영화에서도 볼 수 있듯 이 세상의 모든 아버지가 아들(딸)에게 바라는 건 청출어람(靑出於藍)이다. 이 영화를 소환한 것은 '다 계획이 있었구나'에서 기인한다. 오래 전부터 내가 아들에게 두려워했던 것은, 나처럼 술주정뱅이(?)가 되는 것이었다.
"주정뱅이는 상감님 망건 살 돈도 술 사 먹는다"는 속담처럼 때론 대책이 없는 경우도 발생하는 때문이다. 그래서 입때껏 아이들에겐 술심부름을 단 한 번도 시키지 않았다.
하여간 나에게 맛난 술을 보내주신 주류회사 회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아들이 집에 오면 다시 또 환상의 소맥(燒麥)을 나누리라.
홍경석 / 수필가 & '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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