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식탐] 여름의 별미 아욱

  • 오피니언
  • 우난순의 식탐

[우난순의 식탐] 여름의 별미 아욱

  • 승인 2019-07-17 13:04
  • 신문게재 2019-07-18 18면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아욱
손바닥만한 구두 속에서 하루종일 구겨져 있던 발을 꺼낸다. 열 개의 발가락을 쫙 펴고 스트레칭한다. 허물을 벗듯 블라우스, 스커트를 훌훌 벗는다. 온 몸을 옥죈 갑옷을 벗어 내려놓은 기분이다. 그리고 창문을 활짝 열고 거실에서 큰 대자로 벌러덩 눕는다. 물 먹은 솜처럼 몸이 천근만근이다. 이대로 잠들면 천년동안 깨어나지 않을 것만 같다. 전쟁 같은 하루다. 눈이 퉁퉁 부은 채 종종 걸음으로 출근해 하루종일 '전기의자'에 앉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린다. 내 일용할 양식을 제공하는 한 뼘의 바운더리를 목숨 바쳐 지켜야 한다. 어쩔 도리가 없다. 달리 무슨 방도가 있겠나. 좀이 쑤셔 베베 꼬이던 몸은 이젠 석회화되기 직전이다. 자유로운 세상에서 자유를 누릴 수 없는 노예 인생이다.

한낮의 열기가 가시면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열린 베란다 창문 밖에선 차 소리가 요란하고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진다. TV에선 지방 소식을 전하는 저녁 프로그램에서 리포터가 시골 주민들과 먹거리를 손에 들고 홍보하느라 열을 올린다. 30분이 지났을까. 아래층인지 아니면 그 아래층인지 한창 저녁밥을 준비하는 모양이다.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솔솔 풍겼다. 타인과 철저히 구분되는 구조의 아파트에서 이웃의 존재를 깨닫게 해 주는 것이 음식냄새다. 어느 날은 청국장 찌개, 또 어느 날은 삼겹살 굽는 냄새. 비오는 날엔 간혹 파전이나 김치전 부치는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러면 나도 덩달아 그날 저녁은 김치전을 두어장 부친다. 음식으로, 누구인지 알 수 없는 타인들과 한끼 밥상을 공유하는 셈이다.



거실 바닥에 껌딱지처럼 붙은 몸을 이불 개듯 일으킨다. 잠깐의 휴식으로 파김치같았던 몸이 다소 피로가 풀렸다. 일단 쌀을 물에 담근다. 아욱죽을 쑬 참이다. 간단하게 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 여름에 자주 한다. 냄비에 불린 쌀과 물을 넉넉히 넣는다. 거기에 고추장을 조금 넣고 된장을 푼 다음 끓인다. 육수는 따로 내지 않고 표고버섯가루만 넣는다. 펄펄 끓을 때 아욱을 넣고 되직해질 때까지 뭉근히 끓이면 된다. 이것이 나만의 아욱죽이다. 된장이 들어간 아욱죽은 속이 편하다. 부드럽게 씹히는 밥알과 아욱이 된장과 어우러져 아무리 많이 먹어도 속이 부대끼지 않는다. 죽 종류는 다 좋다. 김치죽, 호박죽, 팥죽, 콩나물죽…. 시중에서 파는 호박죽은 호박을 곱게 갈아서 만든 거지만 어릴 적 먹은 호박죽은 재료가 살아있었다. 그걸 시골에선 호박풀떼라고 불렀다. 숭덩숭덩 썬 호박과 물로 질게 반죽한 밀가루, 팥 등을 넣었다. 지금은 죽이 별미지만 예전엔 간단한 재료로 많은 양을 만들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먹을 것이 귀한 시절 눈물겨운 생존의 자구책이었다.

아욱국과 얼갈이 배추 겉절이를 함께 먹는 것도 여름철 별미다. 이 두가지면 진수성찬이다. 다른 반찬은 필요없다. 재래시장에서 벌레가 뜯어먹어 구멍이 송송 뚫린 싱싱한 얼갈이 배추를 사다 찬물에 씻어 양념을 넣고 버무리면 더위로 달아났던 입맛이 확 살아난다. 아욱국에 밥을 빡빡하게 말아 수저로 듬뿍 떠서 그 위에 배추 겉절이를 얹어 먹으면 나에겐 지상 최고의 음식이다. 국 두 대접은 기본이고 겉절이도 금방 동난다. 본디 자기애가 부족한 내게 한가지 별난 게 있다. 내가 요리한 음식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는 점이다. 남들은 혼자 해먹는 음식이 맛없어 사먹는다는데 난 된장찌개든, 비빔국수든 내가 만든 음식은 무조건 맛있다. 이건 객관적인 맛의 평가를 내려선 안된다. 내 요리솜씨가 형편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맛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음식만큼 호불호가 갈리는 것도 없다. 오늘 저녁은 호박잎 쪄서 쌈장을 만들어 싸먹어야겠다. <미디어부 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경찰청, 청내 159대 주차타워 완공 후 운영시작
  2. 용역노동자 시절보다 월급 줄어드나… ADD 시설관리노동자들 무슨 일
  3. [중도초대석] 양은주 충남유아교육원장 "유아-교사-보호자 행복으로 이어지는 교육 실현할 것"
  4. 충남교육청 문해교육 프로그램 통해 189명 학력 취득… 96세 최고령 이수자 '눈길'
  5. [영상]이 나라에 호남만 있습니까? 민주당 통합 특별시 법안에 단단히 뿔난 이장우 대전시장
  1. 대전YWCA상담소, 2025년 찾아가는 폭력예방교육 285회 운영
  2. 대전·충남 통합 추진에 지역대 지원 정책 방향도 오리무중
  3. 관저종합사회복지관, 고립·위기 1인가구 지원을 위한 맞춤형 서비스 수행기관 공동 협약 체결
  4. 국힘 시도지사, 이재명 대통령·민주당 추진 행정통합 집중 성토
  5. 대전교육감 예비후보 등록 시작… 첫날 5명 서류 접수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통합정국 충청홀대론 급부상

대전충남 통합정국 충청홀대론 급부상

대전 충남 통합 정국에서 한국 정치 고질병이자 극복 과제인 '충청홀대론'이 재차 고개를 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대전충남 통합법안이 자치분권을 위한 권한과 재정 이양은 고사하고, 광주전남 통합 특별법에 크게 못 미친다는 평가가 강력한 트리거로 작용했다. 충청홀대론은 대전 충남 통합을 위한 국회 논의과정이나 4개월 앞으로 다가온 6·3 지방선거 금강벨트 승패를 좌우할 최대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3일 지역 정치권과 대전시.충남도 등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당론으로 발의한 '충남대전 통합특별시법'에는 당초 시·도가..

대전 노후계획도시정비 선도지구 앞두고 각 단지 `긴장감 고조`
대전 노후계획도시정비 선도지구 앞두고 각 단지 '긴장감 고조'

대전시의 노후계획도시정비 선도지구 공모 기한이 두 달도 채 남지 않으면서 둔산지구 내 통합 아파트 단지들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각 단지는 평가 항목의 핵심인 주민 동의율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며 선도지구 선정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3일 대전시에 따르면 대전 둔산지구와 송촌(중리·법동 포함)지구 아파트를 대상으로 한 노후계획도시정비 선도지구 공모가 다음 달 30일부터 4월 3일까지 진행된다. 시는 접수된 신청서를 바탕으로 4~5월 중 평가와 심사를 한 뒤, 국토교통부와의 협의를 거쳐 6월에 선도지구를 발표할..

대전충남 통합정국 충청홀대론 급부상
대전충남 통합정국 충청홀대론 급부상

대전 충남 통합 정국에서 한국 정치 고질병이자 극복 과제인 '충청홀대론'이 재차 고개를 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대전충남 통합법안이 자치분권을 위한 권한과 재정 이양은 고사하고, 광주전남 통합 특별법에 크게 못 미친다는 평가가 강력한 트리거로 작용했다. 충청홀대론은 대전 충남 통합을 위한 국회 논의과정이나 4개월 앞으로 다가온 6·3 지방선거 금강벨트 승패를 좌우할 최대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3일 지역 정치권과 대전시.충남도 등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당론으로 발의한 '충남대전 통합특별시법'에는 당초 시·도가..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봄이 왔어요’ ‘봄이 왔어요’

  •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 시작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 시작

  • 행정통합과 관련한 입장 밝히는 이장우 대전시장 행정통합과 관련한 입장 밝히는 이장우 대전시장

  • 전국동시지방선거 예비 후보자 등록 준비 ‘척척’ 전국동시지방선거 예비 후보자 등록 준비 ‘척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