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이걸 보며 웃을 날이 오면 좋겠다

  • 오피니언
  • 교단만필

[교단만필] 이걸 보며 웃을 날이 오면 좋겠다

  • 승인 2020-07-09 13:37
  • 수정 2021-06-24 13:50
  • 신문게재 2020-07-10 18면
  • 김흥수 기자김흥수 기자
111
김지혜 천안북중학교 교사
지난해 11월, 1학년 주제선택 국어 시간이다. 주제로는 UCC만들기, 보드게임으로 창의 인성 다지기 등의 활동을 했기 때문에 아이들은 주제선택 국어 시간을 은근히 기다렸다. "선생님, 다음 주제는 뭐예요?" 기다리는 아이들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응, 이번 시간부터는 우리가 시를 쓸 거야." "시요?", "시 쓰기 노잼이에요"라는 등 아이들의 원망이 자자했다.

주제선택 국어 시간의 제목은 "국어? 하고 싶은 거 다 해"였기 때문에 아이들의 원성은 더욱 컸다. "하고 싶은 거 다 하라면서요. 저희는 시 쓰기 싫단 말이에요", "시는 어떻게 쓰는 거예요?" 미안하지만 아이들의 원망에서 힌트가 떠올랐다.

"얘들아, 시 쓰기 싫으니? 그럼 '시 쓰기 싫다'라는 주제로 시를 써 보자."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었다. 아이들은 정말로 시를 쓰기 싫어했지만, 시는 써야 했고, 6주 동안 시 쓰기 프로그램을 강행했다. 아이들에게 시 쓰기가 어렵지 않다는 걸, 시 쓰기가 생각보다 '노잼'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다른 학교 학생들이 쓴 문집을 보여주며 너희가 이러한 책의 작가가 될 거라는 점을 강조하고, 학생들이 쓴 시를 읽어주며 시 쓰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내가 썼던 오글거리는 사랑시도 공개했다.

아이들은 사랑 이야기를 항상 경멸하는 듯, 야유하는 듯, 하면서도 사실은 가장 큰 관심을 보인다. 어쩌면 흑역사일지도 모를 선생님의 짝사랑, 그리고 그 짝사랑의 마음을 담은 시를 보면서 아이들의 마음이 움직였다. 그때부터 우리들의 6주간의 대장정이 시작됐다. 사랑, 친구, 우정, 학교생활의 어려움, 강아지, 중딩이 생각하는 인생에 대한 고찰….

이 와중에 어떤 아이는 정말로 '시 쓰기 싫다'라는 주제로 시를 썼다.

'나는 시를 쓰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다. 그렇지만 수행평가 0점을 맞을 수는 없으니/시인지 모를 글씨를 적어본다.'

현실적이다. 하지만 글솜씨가 범상치 않다. 계속 읽어본다.

'지금은 투정 부리는 애처럼 싫다고 하지만/이걸 보며 웃을 날이 오면 좋겠다.'

물론 시 쓰기는 싫었을 것이다. 선생님의 강요에 못 이겨, 수행평가 0점을 맞기 싫어서 억지로 시를 썼을 것이다. 하지만 '이걸 보며 웃을 날이 오면 좋겠다'라고 생각한 아이가 있다. 한 마디면 충분했다. 이 문장은 너무도 인상 깊어서 이 시집의 제목이 됐다. 그리고 120페이지 분량의 우리 시집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가 됐다.

시 쓰기를 싫어했던 아이는, 자신의 마지막 문구가 시집의 제목이 된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로 인해 아이가 작가로서의 자부심을 느꼈기를, 단 1%라도 시를 좋아하게 됐기를 기대해 본다. 그 아이는 아마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문구가 한 권의 시집의 제목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자신의 작은 영향력이 120명의 시를 대표하는 큰 영향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2020년. 코로나라는 무서운 질병이 대한민국을 바꾸어 놓았다. 온라인으로 개학을 하고 아이들은 일정을 나누어서 등교 중이다. 그런 와중에도 우리의 시 쓰기는 계속되고 있다. 사랑에 대하여, 소중한 것들에 대하여, 중딩이 생각하는 인생에 대하여….

아이들은 여전히 시 쓰기를 싫어하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 먼 훗날, 이걸 보며 웃을 날이 오면 좋겠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아산시, 취약지역 하수도시설 일제 점검
  2. 아산선도농협, 고추재배농가에 영농자재 지원
  3. 아산시, 반려동물 장례문화 인식개선 적극 추진
  4. 천안시의회 권오중 의원, "교통약자 보호 및 시민 보행권 보장을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
  5. 천안시, 제77회 충청남도민체육대회서 주택안심계약 홍보
  1. 천안시의회 정도희 의원 대표발의, 천안시 마을행정사 운영에 관한 조례안 본회의 통과
  2. 천안법원, 신체일부 노출한 채 이웃에게 다가간 20대 남성 '벌금 150만원'
  3. 천안시의회 유영채 의원, '전세피해임차인 보호조례' 제정… 실질 지원과 안전관리까지 법제화
  4. 여름휴가와 미래 정착지 '어촌' 매력...직접 눈으로 본다
  5. 李정부, 해수부 논란에 행정수도 완성 진정성 의문

헤드라인 뉴스


李정부, 해수부 논란에 행정수도 완성 진정성 의문

李정부, 해수부 논란에 행정수도 완성 진정성 의문

이재명 정부가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을 추진하며 논란을 빚고 있는 가운데 충청권 대표 공약이었던 행정수도 완성 의지에 의문부호가 달리고 있다. 집권 초부터 PK 챙기기에 나서면서 충청권 대표 대선 공약 이행에 대한 진정성은 실종된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 따른 것이다. 자칫 충청 홀대로 해석될 여지도 있는 대목인데 더 이상의 국론 분열을 막기 위해선 특별법 제정 또는 개헌 등 행정수도 완성 로드맵을 조속히 내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15일 본보 취재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 행정수도 완성을 위해 임기 내 국회 세종의사당..

대전시의회, 유성복합터미널 BRT 등 현장방문… "주요 사업지 현장방문 강화"
대전시의회, 유성복합터미널 BRT 등 현장방문… "주요 사업지 현장방문 강화"

대전시의회가 유성복합터미널 BRT 연결도로와 장대교차로 입체화 추진 예정지 등 주요 사업지를 찾아 현장점검을 벌였다. 산업건설위원회는 도시철도 2호선 트램 건설현장, 교육위원회는 서남부권 특수학교 설립 예정 부지를 찾았는데, 을 찾았는데, 이번 현장점검에 직접 나선 조원휘 의장은 "앞으로 민선 8기 주요 사업지에 대한 현장 중심의 의정활동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조 의장은 13일 유성구 일대 교통 현안 사업 현장을 찾았다. 먼저 유성복합터미널 BRT(간선급행버스체계) 건설 현장을 방문했다. 유성복합터미널 BRT 연결도로는 유성구..

프로야구 한화이글스 흥행에…주변 상권도 `신바람`
프로야구 한화이글스 흥행에…주변 상권도 '신바람'

올 시즌 프로야구 흥행에 힘입어 경기 당일 주변 상권들의 매출이 2배 가까이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국 야구장 중 주변 상권 매출 증가율이 가장 높은 구장은 한화이글스의 홈구장인 대전 한화생명볼파크다. 15일 KB국민카드에 따르면 2022~2025년 한국프로야구(KBO) 리그 개막 후 70일간 야구 경기가 열린 날 전국 9개 구장 주변 상권 결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매출액은 2022년 대비 2023년 13%, 2024년 25%, 올해 31%로 각각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신용·체크카드로 결제한 141만 명의 데이터 5..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아빠도 아이도 웃음꽃 활짝 아빠도 아이도 웃음꽃 활짝

  • ‘내 한 수를 받아라’…노인 바둑·장기대회 ‘내 한 수를 받아라’…노인 바둑·장기대회

  • ‘선생님 저 충치 없죠?’ ‘선생님 저 충치 없죠?’

  • ‘고향에 선물 보내요’ ‘고향에 선물 보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