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관계'와 '인정' 그 상관 관계의 증명을 위해

  • 오피니언
  • 교단만필

[교단만필] '관계'와 '인정' 그 상관 관계의 증명을 위해

윤지혜 대전글꽃초등학교 교사

  • 승인 2020-09-17 09:39
  • 이현제 기자이현제 기자
윤지혜
윤지혜 교사
천직은 사전적으로 타고난 직업, 직분이라고 한다. 지금 교단에서 온 힘을 다해 애쓰시는 선생님 중에 누군가는 교사를 천직으로 여기고 '꿈'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느껴질 무렵부터 학생들과 함께 있는 그 날을 꿈꾸었을지도 모르겠다.

안타깝게도 필자는 어렸을 적부터 멋진 제복을 입은 경찰이 되고 싶었다. 사회 정의 구현을 늘 머릿속에 그리며 말 그대로 부모님의 간절한 바람과 설득, 수능의 굴레 속에 교대에 홀몸으로 던져졌다. 누군가는 그럴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이 그러하셨듯 대학에 그렇게 많이 준비하고 갖춰서 가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가면 다 하게 되어 있다고.



하지만 교사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꿈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철들기 전 꽤 오랜 시절 선생님의 말씀을 안 듣는 말썽꾸러기 '문제아'였기 때문이다. 모범적인 생활을 거부하면서도 멋진 경찰을 꿈꾸는 아이러니함도 물론 있었지만, 누군가는 분명 그 시절 나의 반항기 어린 눈빛과 행동들을 떠올릴 것이다. 항상 삐딱이 같던 나는 나만 바라보는 학생들의 그 똘망거리는 예쁜 눈빛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결국, 교대 진학과 동시에 한 번도 꿈꿔보지도, 그려보지도 않은 미래를 그려야 했다.

교사가 되겠다는 진학 포부를 들은 내 친구들은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안 어울려. 좀 더 진취적인 무언가 없어? 아니 교사라니. '꿈'보다 '안정'을 찾아갈 줄은 몰랐다."

예상은 했었지만 '안정'을 쫓아간다는 주변 친구들의 웃음 어린 반응을 보니 슬그머니 오기가 발동했다. 문득 교직에도 나 같이 시련도 겪어보고, 반항도 해본 사람이 필요하지는 않을까, 가끔은 보이지 않는 곳에도 길은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시절의 '오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정말 '타고난 것'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교사라는 자부심을 느끼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만 시간의 법칙'은 흔히 들어보았을 것이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최소한 1만 시간 정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법칙. 매일 3시간씩 훈련하면 10년쯤 걸린다는 그 말처럼 교사로서 학생들을 만나는 15년 남짓한 시간에 '전문가'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나름의 정의로 '교육관'을 가진 교사의 모습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교사는 수업으로 말한다. 수업도 결국은 교사와 학생의 '관계'이고 그 관계는 결국 '학생에 대한 인정'에서 나온다. 수업이라는 매시간의 성장 과정에서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자라지 않고 모두가 같은 속도를 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방향의 차이를, 속도의 다름을 인정해주는 그런 교사. 학생의 성장과 동시에 교사도 함께 자랄 수 있는 수업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학생에 대한 인정은 학창시절 성장통을 심하게 겪었기에 다른 사람들보다는 조금 더 수월했을 것으로 본다.

그런데, 교실이 비었다. 학생이 없는 교실. 필자의 교육관이었던 '관계'와 '인정'의 상관관계를 다시 한번 또 증명해 줄 학생들이 각자 집에서 직접 얼굴을 보지 못한 채 다른 형식의 수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코로나19 이후의 상황에 1만 시간 법칙을 다시 원점에서 시작해야 하는 15년 전의 신규 교사와 다를 게 없게 된 것이다. 수업은 언어적인 요소도 뿐만 아니라 비언어적인 요소 역시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학생들의 살아 있는 눈빛, 웃음, 함께 있을 때 느낄 수 있는 생기 어린 분위기를 화면 너머로만 느끼고 있는 언택트의 시대. 물리적 공간에서 함께 할 수 있음이 얼마나 큰 힘인지 새삼 느끼는 요즘이다.

얼마 전 한 방송에서 이세돌 9단이 나온 것을 보았다. 2016년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인간의 승리를 보여주었던 그 짜릿했던 순간이 다시 떠올랐다. 그 간절함을 다시금 느껴진다.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코로나19에 온몸으로 맞서는 인류. 그 싸움에서 하루빨리 인간이 승리하길 빌고 또 빈다. 그래서 어서 우리 학생들을 학교로 돌려 보내주길. 다시 마스크를 벗고 함께할 수 있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관계'와 '인정' 사이의 상관관계를 학생들 스스로 웃으며 증명해줄 수 있는 그 날이 다시 눈앞에 다가와 있는 것이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윤지혜 대전글꽃초등학교 교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의정부시, ‘행복로 통큰세일·빛 축제’로 상권 활력과 연말 분위기 더해
  2. 서산 대산단지 '분산에너지 특화지역' 지정… 기존 전기료比 6~10%↓
  3. '2026 대전 0시 축제' 글로벌 위한 청사진 마련
  4. 세종시 반곡동 상권 기지개...상인회 공식 출범
  5. 대성여고 제과직종 문주희 학생, '기특한 명장' 선정
  1. 셀트리온 산업단지계획 최종 승인… 충남도, 농생명·바이오산업 거점지로 도약
  2. 충남대 올해 114억 원 발전기금 모금…전국 거점국립大에서 '최다'
  3. 구불구불 다사다난했던 을사년…‘굿바이’
  4. 세밑 한파 기승
  5. 세종교육청 '학생생활교육지원센터' 활짝

헤드라인 뉴스


민주당 차기 원내대표에 충청 3선 조승래 의원 거론

민주당 차기 원내대표에 충청 3선 조승래 의원 거론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가 30일 각종 비위 의혹으로 자진 사퇴한 가운데 차기 원내대표 후보군 중 충청 출신이 거론돼 관심이 쏠리고 있다. 주인공은 현재 당 사무총장인 3선 조승래 의원(대전유성갑)으로 그가 원내사령탑에 오르면 여당 당 대표와 원내대표 투톱이 모두 충청 출신으로 채워지게 된다. 민주당은 김 전 원내대표의 후임 선출을 위한 보궐선거를 다음 달 11일 실시한다.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원내대표 보선을 1월 11일 실시되는 최고위원 보궐선거 날짜와 맞추기로..

대전 회식 핫플레이스 `대전 고속버스터미널` 상권…주말 매출만 9000만원 웃돌아
대전 회식 핫플레이스 '대전 고속버스터미널' 상권…주말 매출만 9000만원 웃돌아

대전 자영업을 준비하는 이들 사이에서 회식 상권은 '노다지'로 불린다. 직장인을 주요 고객층으로 삼는 만큼 상권에 진입하기 전 대상 고객은 몇 명인지, 인근 업종은 어떨지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가 뒷받침돼야 한다. 레드오션인 자영업 생태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다. 이에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빅데이터 플랫폼 '소상공인 365'를 통해 대전 주요 회식 상권을 분석했다. 30일 소상공인365에 따르면 해당 빅데이터가 선정한 대전 회식 상권 중 핫플레이스는 대전고속버스터미널 인근이다. 회식 핫플레이스 상권이란 30~50대 직장인의 구..

충북의 `오송 돔구장` 협업 제안… 세종시는 `글쎄`
충북의 '오송 돔구장' 협업 제안… 세종시는 '글쎄'

서울 고척 돔구장 유형의 인프라가 세종시에도 들어설지 주목된다. 돔구장은 사계절 야구와 공연 등으로 전천후 활용이 가능한 문화체육시설로 통하고, 고척 돔구장은 지난 2015년 첫 선을 보였다. 돔구장 필요성은 이미 지난 2020년 전·후 시민사회에서 제기됐으나, 행복청과 세종시, 지역 정치권은 이 카드를 수용하지 못했다. 과거형 종합운동장 콘셉트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충청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유치에 고무된 나머지 미래를 내다보지 않으면서다. 결국 기존 종합운동장 구상안은 사업자 유찰로 무산된 채 하세월을 보내고 있다. 행복청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구불구불 다사다난했던 을사년…‘굿바이’ 구불구불 다사다난했던 을사년…‘굿바이’

  • 세밑 한파 기승 세밑 한파 기승

  • 대전 서북부의 새로운 관문 ‘유성복합터미널 준공’ 대전 서북부의 새로운 관문 ‘유성복합터미널 준공’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