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식탐] 냄새와 혀의 의미심장한 관계

  • 오피니언
  • 우난순의 식탐

[우난순의 식탐] 냄새와 혀의 의미심장한 관계

  • 승인 2020-11-11 11:03
  • 신문게재 2020-11-12 18면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1
게티이미지 제공
20여년 전 어느 겨울에 감기를 호되게 앓아 죽도록 고생을 했다. 비염이 악화돼 축농증으로 발전한 것이다. 매일 치료를 했지만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콧구멍을 시멘트로 발라 놓은 것처럼 꽉 막혀 도무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머리도 깨질 듯이 아팠다. 입으로 숨을 쉬기 때문에 입 안과 목구멍이 바싹 말라갔다. 한 달 가까이 일도, 잠도,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차도가 없자 의사는 항생제를 세게 처방했다. 드디어 콧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미세하게 숨구멍이 트이는데 한 줄기 광명을 찾은 심정이었다. 문제는, 미각을 잃어버렸다는 거다. 밥을 먹는데 아무 맛이 안 났다. 종이나 지푸라기를 씹는 느낌이었다. 겁이 더럭 났다. 다행히 축농증이 치료되면서 미각은 다시 살아났다. 냄새를 맡는 후각이 미각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비 온 뒤의 숲길을 걸으면 낙엽 냄새가 난다. 물기를 머금은 솔가루나 수북이 쌓인 활엽수 잎새의 눅눅한 냄새. 가을엔 몸의 감각기관이 예민해지는 걸까. 나도 모르게 코를 벌름거리며 킁킁 냄새를 맡는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웃 집 음식 냄새를 공유할 수밖에 없다. 내 집 아래층엔 노부부가 산다. 창문을 열어놓으면 맛있는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와 입안에 침이 고인다. 콩나물 삶는 냄새,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 어떤 날 저녁엔 삼겹살 굽는 냄새. 정말 환장할 지경이다. 출근 길 빵집에서 풍기는 달콤한 냄새는 또 어떻고. 따끈따끈한 빵 냄새가 털북숭이 사냥꾼이 먹잇감을 잡기 위해 덫으로 놓은 미끼 같다고 나는 종종걸음을 치며 상상하곤 한다. 거부할 수 없는 냄새를 좇아 독이 든 빵을 덥석 받아먹자마자….

세상에는 맛있는 냄새만 있는 게 아니다. 불쾌한 냄새도 많다. 지지난주 후배기자 조훈희와 당진 출장길에 코를 쥐는 냄새에 진저리를 쳤다. 축사 냄새였다. 후배는 해외여행 가면 맛있는 음식 먹는 게 큰 즐거움이라고 했다. 그런데 대만에서의 취부두는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며 그 냄새가 축사 냄새와 똑같다고 했다. 발효음식의 공통점은 악취다. 한마디로 썩은 내가 풀풀 난다. 청국장, 홍어, 치즈, 젓갈, 된장, 삭힌 청어 등등. 오래된 변사체에서 묵은 된장 냄새가 나더라는 섬뜩한 얘기를 사건 담당 후배가 들려준 적도 있었다. 하여간 극과 극은 통하는 법. 인간은 왜 고약한 냄새에 끌릴까. 장자는 "썩어서 냄새나는 것이 새롭고 기이한 것으로 변한다"고 했다. 구더기가 꼬물거리는 치즈를 유럽에선 최상품으로 친다. 어떤 이들은 장마철 발 냄새 같은 청국장을 질색하지만 난 이 원시적인 풍미가 강할수록 좋아한다.

냄새에는 계급이 있다. 부자 냄새와 기택네 반지하와 같은 가난한 사람의 냄새가 존재한다. 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의 하류층 사람들은 냄새가 지독하다. 오웰에게 계층이란 냄새의 문제였다. 웃기는 일화도 있다. 1983년 통치자 전두환은 단식투쟁 하는 김영삼을 방해하기 위한 전략으로, 불고기 등 음식을 차린 밥상을 병상 앞에 갖다놓고 냄새를 풍겼다고 한다. 김영삼은 그때 침을 몇 번 삼켰을까. 내가 사는 동네에 얼마 전 도넛, 꽈배기 등을 파는 튀김 가게가 생겼다. 그런데 20여일이 지나도 손님이 없어 파리만 날렸다. 나는 기름에 문제가 있다고 나름 분석했다. 고소한 기름 냄새가 천지사방에 퍼져야 하는데 쩐 내가 진동하기 때문이다. 하루는 주인에게 "조언해도 될까요? 기름 냄새가 안 좋아서 손님이 없는 거 같은데요"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주인은 "저희 가게는 카놀라유를 써요. 몸엔 좋은데 냄새는 콩기름처럼 고소하지 않죠"라며 배시시 웃었다. 궁금증은 풀렸지만 걱정은 가시지 않았다. 계속 손님이 없으면 어떡하나. <미디어부 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이진숙 교육장관 후보자 첫 출근 "서울대 10개 만들기, 사립대·지방대와 동반성장"
  2. '개원 53년' 조강희 충남대병원장 "암 중심의 현대화 병원 준비할 것"
  3. 법원, '초등생 살인' 명재완 정신감정 신청 인용…"신중한 심리 필요"
  4. 33도 폭염에 논산서 60대 길 걷다 쓰러져…연일 온열질환 '주의'
  5. 세종시 이응패스 가입률 주춤...'1만 패스' 나오나
  1. 필수의료 공백 대응 '포괄2차종합병원' 충청권 22곳 선정
  2. 폭력예방 및 권리보장 위한 협약 체결
  3. 임채성 세종시의장, 지역신문의 날 ‘의정대상’ 수상
  4. 건물 흔들림 대전가원학교, 결국 여름방학 조기 돌입
  5. (사)한국청소년육성연맹, 관저종합사회복지관에 후원물품 전달식

헤드라인 뉴스


야권에서도 비충청권서도… 해수부 부산이전 반대 확산

야권에서도 비충청권서도… 해수부 부산이전 반대 확산

이재명 정부가 강공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보수야권을 중심으로 원심력이 커지고 있다. 그동안 충청권에서만 반대 여론이 들끓었지만, 행정수도 완성 역행과 공론화 과정 없는 일방통행식 추진되는 해수부 이전에 대해 비(非) 충청권에서도 불가론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원내 2당인 국민의힘이 이 같은 이유로 전재수 장관 후보자 청문회와 정기국회 대정부질문, 국정감사 등 향후 정치 일정에서 해수부 이전에 제동을 걸고 나설 경우 이번 논란이 중대 변곡점을 맞을 전망이다. 전북 익산 출신 국민의힘 조배숙..

李정부 민생쿠폰 전액 국비로… 충청권 재정숨통
李정부 민생쿠폰 전액 국비로… 충청권 재정숨통

이재명 정부가 민생 회복을 위해 지급키로 한 소비쿠폰이 전액 국비로 지원된다. 이로써 충청권 시도의 지방비 매칭 부담이 사라지면서 행정당국의 열악한 재정 여건이 다소 숨통을 틀 것으로 기대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1일 전체회의를 열어 13조2000억원 규모의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 관련 추가경정예산안을 의결했다. 행안위는 이날 2조9143억550만원을 증액한 2025년도 행정안전부 추경안을 처리했다. 행안위는 소비쿠폰 발행 예산에서 중앙정부가 10조3000억원, 지방정부가 2조9000억원을 부담하도록 한 정부 원안에서 지방정..

대전·충남기업 33곳 `초격차 스타트업 1000+` 뽑혔다
대전·충남기업 33곳 '초격차 스타트업 1000+' 뽑혔다

대전과 충남의 스타트업들이 정부의 '초격차 스타트업 1000+ 프로젝트'에 대거 선정되며, 딥테크 기술창업 거점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1일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하는 '2025년 초격차 스타트업 1000+ 프로젝트'에 전국 197개 기업 중 대전·충남에선 33개 기업이 이름을 올렸다. 이는 전체의 16.8%에 달하는 수치로, 6곳 중 1곳이 대전·충남에서 배출된 셈이다. 특히 대전지역에서는 27개 기업이 선정되며, 서울·경기에 이어 비수도권 중 최다를 기록했다. 대전은 2023년 해당 프로젝트 시행 이래 누적 선정 기업 수 기준으로..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수영하며 야구본다’…한화 인피니티풀 첫 선 ‘수영하며 야구본다’…한화 인피니티풀 첫 선

  • 시구하는 김동일 보령시장 시구하는 김동일 보령시장

  • 故 채수근 상병 묘역 찾은 이명현 특검팀, 진실규명 의지 피력 故 채수근 상병 묘역 찾은 이명현 특검팀, 진실규명 의지 피력

  • 류현진, 오상욱, 꿈씨패밀리 ‘대전 얼굴’ 됐다 류현진, 오상욱, 꿈씨패밀리 ‘대전 얼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