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참으로 어려운 자식 교육

  • 오피니언
  • 풍경소리

[풍경소리] 참으로 어려운 자식 교육

이향배 충남대 한문학과 교수

  • 승인 2020-12-07 15:39
  • 신문게재 2020-12-08 19면
  • 김소희 기자김소희 기자
이향배 충남대 한문학과 교수
이향배 충남대 한문학과 교수
도둑질을 직업으로 삼은 아버지와 아들이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도둑질하는 방법을 가르쳐줬다. 아들은 재주가 있어서 아버지보다 도둑질하는 능력이 더 뛰어나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직 그런 단계가 아니라고 했다. 지혜는 배워서 이루면 한계가 있고 스스로 터득해야 넉넉해지는데 아들이 아직 이런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내 기술을 쓰면 삼엄한 성도 들어가서 숨겨둔 보물도 훔칠 수 있겠지만 한번 차질이 생기면 재앙도 따른다. 찾을 수 있는 형적이 없도록 임기응변에 대처하는 것은 자득한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다. 너는 아직 그런 단계가 아니다." 아들은 생각해보거나 들어보지도 못한 말이었다.

어느 날 밤에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부잣집으로 도둑질하러 갔다. 아들에게 창고 안으로 들어가서 보물을 훔치게 하고는 밖에서 문을 열쇠로 잠갔다. 그리고는 도둑이야 하고 소리치고는 도망갔다. 집주인과 하인들이 깨서 확인해보니 없어진 물건도 없고 창고 열쇠도 그대로 잠겨 있어서 안으로 돌아갔다. 창고 안에 있는 아들은 빠져나올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아들은 손톱으로 벽을 긁으며 쥐 소리를 냈다. 창고 안에 쥐가 들었다고 생각한 주인은 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등을 들고 열쇠를 열어 창고 안을 살피려는 순간 아들은 순간적으로 뛰어 도망 나왔다. 아들은 연못가로 도망가다가 큰 돌을 집어 호수로 던지고 다른 길로 갔다. 쫓아오던 사람들은 물소리를 듣고 연못으로 도망간 줄 알고 주변을 수색했다. 그 사이에 아들은 빠져나올 수 있었다.



집에 와서 아들은 아버지에게 따져 들었다. "짐승도 자기 자식은 보호하는데 어떻게 아버지가 자식을 버릴 수 있나요?" 아버지가 천천히 말했다. "지금부터는 네가 천하에서 독보적인 도둑이 될 것이다. 남에게 배운 기술은 분명히 한계가 있지만 마음에서 터득한 것은 그 응용이 무궁하다. 내가 너를 함정에 빠뜨린 것은 너를 구해주는 것이다. 급박하게 쫓기는 상황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네가 어떻게 쥐 소리를 내며 돌을 던질 기묘한 생각을 했겠느냐."

이는 강희맹의 '훈자오설(訓子五說)' 중 도자설(盜子說)의 내용이다. 당시에 명문가 자식들이 학문을 해 명성이 조금 드러나면 이전의 사람을 무시하고 학문이 앞선 것으로 건방을 떨고 다녔다. 이는 아들이 도둑질을 아버지에게 자랑하던 때와 같다. 어려운 환경에 당해서 스스로 지혜를 터득해야 참된 지식이 되며 어떠한 일도 능수능란하게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강희맹은 아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요즘 수능이 끝난 지 얼마되지 않았다. 내 딸은 수능이 끝나자마자 머리를 염색하고 코를 뚫는다고 통보했다. 염색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코를 뚫는다는 것은 청천벽력같은 소리였다. 둘 다 안 된다고 할 수는 없어서 머리염색만 허락했다. 곧바로 미용실에서 염색하고 카톡에 올린 사진에는 머리가 빨강색이었다. 그것도 찐한 빨강색.

경쟁에 치달리는 수능 공부는 어렵고 힘든 과정이다. 그 경쟁에서 이겨서 명문대학을 가기를 바라는 것은 부모라면 똑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렇다면 명문대학에 가면 정말로 만족할까. 나는 딸아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본다. 딸과 대화를 나눠보면 하고 싶은 일이 계속 변한다. 자신도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말이다. 그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그것을 고민해보고 대학에 진학한 학생과 무작정 성적에 맞춰 진학한 학생과는 실제 대학생활에서 차이가 많다.

대개 부모는 나처럼 닫힌 시각에서 자식을 바라보는 이가 많다. 부모는 자식에게 자신의 길을 찾아가도록 묵묵히 바라보면서 엇나가지 않도록 조언만 해주면 된다. 부모가 볼 때 어려보이지만 자식들은 험난한 세상에서 스스로 설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 능력을 스스로 발견할 때 공부에 대한 열정도 타오를 수 있고 난관을 당했을 때 헤쳐 나올 수 있는 지혜도 스스로 터득한다. 대학이야 어디 가든 뭐가 대수인가. 그래도 코는 안 뚫었으면….

이향배 충남대 한문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천안 쌍용동 아파트서 층간소음 문제로 살인사건 발생
  2. "역대 최대 1조 2천억 확보" 김해시, 미래 성장동력·안전망 구축 탄력
  3. 교실 CCTV 설치 근거 생길까… 법사위 심의 앞두고 교원단체 반발
  4. '대량 실직 위기'…KB국민카드 대전 신용상담센터 노동자 150여 명 불안 확산
  5. 어깨·허리 부상 잦은 소방공무원에게 물리치료사협회 '도움손'
  1. 대전교육청 공무직 4일 총파업… 94개 학교 급식 차질
  2. 동구 정다운어르신복지관, 2025년 '정담은 김장나눔'
  3. 4일 밤사이 세종·충남 1~5㎝ 적설 예고
  4. 대덕구노인종합복지관, 김장김치 나눔 행사
  5. [2026학년도 수능 채점] 입시 전문가들이 말하는 정시 전략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탄력받나… 李대통령 "모범적 통합" 언급

대전·충남 행정통합 탄력받나… 李대통령 "모범적 통합" 언급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이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전·충남 행정통합에 대해 긍정적으로 언급하면서다. 김태흠 충남지사와 이장우 대전시장은 이 대통령의 긍정적 반응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히며 행정통합 법안 처리에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 이 대통령은 5일 충남 천안 한국기술교육대학교에서 '첨단산업의 심장, 충남의 미래를 설계하다'라는 주제로 열린 타운홀미팅에서 '5극 3특' 체제를 거론하며 "지역 연합이 나름대로 조금씩 진척되는 것 같다"면서도 "협의하고 협조하는 수준이 아니라 대규모로 통합하는 게 좋다고 생..

충남도, 당진에 2조 원 규모 `AI데이터센터` 유치
충남도, 당진에 2조 원 규모 'AI데이터센터' 유치

충남도가 2조 원 규모 AI데이터센터를 유치했다. 김태흠 지사는 4일 도청 대회의실에서 오성환 당진시장, 안병철 지엔씨에너지 대표이사, 정영훈 디씨코리아 대표이사와 당진 AI데이터센터 건립을 위한 투자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에 따르면, 지엔씨에너지는 당진 석문국가산업단지 내 3만 3673㎡(1만 평) 부지에 건축연면적 7만 2885㎡ 규모로 AI데이터센터를 건립한다. 이를 위해 지엔씨에너지는 디씨코리아 등과 특수목적법인(SPC)을 구성하고, 2031년까지 2조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지엔씨에너지는 이와 함께 200여 명의 신규 고용..

11월 전국 민간아파트 평당 분양가 2797만 원 달해
11월 전국 민간아파트 평당 분양가 2797만 원 달해

전국 민간아파트 ㎡당 평균 분양가가 사상 처음으로 800만원을 넘어섰다. 평당(3.3㎡) 분양가로 환산하면 2797만 원에 달했다. 5일 리얼하우스가 청약홈 자료를 분석한 결과, 11월 전국 민간아파트 ㎡당 평균 분양가격은 827만 원이다.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최고치로 1년 새 6.85% 올랐다. 전국 ㎡ 당 분양가는 지난 2021년 530만 원에서 2023년 660만 원으로 오른 데 이어 2024년에는 750만 원까지 치솟았다. 올해 들어 상승 흐름은 더 빨라져 9월 778만 원, 10월 798만 원, 11월 827만 원으로..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충남의 마음을 듣다’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 ‘충남의 마음을 듣다’ 참석한 이재명 대통령

  • 2026학년도 수능 성적표 배부…지원 가능한 대학은? 2026학년도 수능 성적표 배부…지원 가능한 대학은?

  • ‘추울 땐 족욕이 딱’ ‘추울 땐 족욕이 딱’

  • 12·3 비상계엄 1년…‘내란세력들을 외환죄로 처벌하라’ 12·3 비상계엄 1년…‘내란세력들을 외환죄로 처벌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