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현의 재미있는 고사성어] 제76강 과하지욕(袴下之辱)

  • 문화
  • 장상현의 재미있는 고사성어

[장상현의 재미있는 고사성어] 제76강 과하지욕(袴下之辱)

장상현/ 인문학 교수

  • 승인 2021-06-22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제 76강: 과하지욕(袴下之辱) : 바짓가랑이 밑을 지나가는 모욕

글자의 구성 : 袴(사타구니 과), 下(아래 하), 之(~의, 관형격조사), 辱(욕되게 할 욕)



출처 : 사마천의 사기(史記) 회음군열전(淮陰君列傳)에 기록되어 있다.



본 고사성어는 이보다 더 큰 치욕이 없을 때를 비유한다, 그리고 큰 뜻을 품은 사람은 하찮은 일로 논쟁을 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내포하고 있다.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과 함께 한(漢)나라를 세우는데 큰 공을 세운 한신(韓信)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어려서부터 장차 나라의 최고 명장(名將)이 되겠다는 큰 뜻을 품고 있었다. 그는 '손자병법(孫子兵法)'을 좋아해 밤낮으로 열심히 탐독하였다. 또 천하의 최고 명장(名將)을 꿈꾸며 다른 무사나 협객들처럼 늘 보검을 차고 다녔다.

하루는 그가 주막(酒幕)에서 술로써 공허한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술 몇 모금에 취기가 오른 한신은 졸린 두 눈을 비비며 습관적으로 옆구리에 찬 검을 뽑았다. 그리고는 긴 한숨과 함께 도로 집어넣었다.

그가 몸을 비틀거리며 주막을 나와 골목에 들어서자 회음(淮陰)의 푸줏간 패들 가운데 한 젊은이가 한신을 얕잡아보고 놀려 댔다. "보아하니 덩치도 크고 무예에도 꽤나 능한 자처럼 늘 보검을 차고 다니던데 어디 나와 한번 겨뤄보지 않겠느냐?"라고 시비를 걸어왔다. 이에 한신은 "어찌 감히 너와 겨루겠느냐. 오늘은 내가 급한 볼일이 있으니 그만 길을 비켜라"라고 하자 불량사내는 "검술은 몰라도 사람을 죽이는 법은 알고 있을 테지? 겁쟁이가 아니라면 그 검으로 내 목을 쳐 보거라." 한신이 한 발자국 물러서자 불량배는 더욱 신이 나서 말했다.

"키는 8척인 놈이 배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네. 이깟 일에 벌벌 떨다니. 이 마저도 못하겠다면 내 가랑이 밑으로 기어나가 보라."라고 하며 불량배는 저잣거리 가운데 두 다리를 쩍 벌리고 섰다.

두 사람의 오가는 고성에 구경꾼들이 우르르 몰려들었고, 심한 모욕에 더는 참을 수 없어 한신은 손으로 보검을 꽉 잡고 한참 동안 그를 노려보았다.

"만약 저 자를 죽이면 나는 살인죄로 신세를 망칠 것이 분명해. 어쩌면 죽을 죄를 면치 못할지도 모르는 이 상황에서 명예나 체면을 지켜서 무엇 하리."

한신은 불량배를 한참 훑어보더니 납작 엎드려 그의 다리 사이로 엉금엉금 기어 지났다. 모여 섰던 구경꾼들은 배를 끌어안고 웃었다. 그 후 사람들은 한신을"가랑이 사이로 지나간 놈"이라고 불렀다.

'인욕(忍辱)', 그것은 '치욕(恥辱)을 참는다'는 뜻이다.

큰일을 위해서는 목전의 작은 이익에 현혹(眩惑)되어서도 안 되겠지만, 굴욕(屈辱) 또한 참고 견뎌낼 줄 알아야 한다.

주(周)나라 건국의 발판을 완전하게 닦아 놓은 문왕(文王)이 자기의 맏아들 삶은 국을 폭군 주왕(紂王)으로부터 받아 꾹 참으면서 마신 것이나,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오왕(吳王) 부차(夫差)에게 패한 후 스스로 부하 되기를 자청하고 말똥을 치우고, 심지어는 오왕(吳王) 부차(夫差)의 대변을 찍어 맛보았던 것도 대사(大事)를 위해서는 인욕(忍辱)이 있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만약 그 때 문왕(文王)이나 구천(句踐)이 그렇게 하지 않았던들 아마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한 철학자는 "모욕(侮辱)과 수치(羞恥)를 겪으며 배우는 것이 가장 빠르고 확실하면서 가장 오랫동안 그 교훈을 잊지 않게 해준다"라고 말한다.

굴욕은 사람들에게 깊이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주며 순조로운 상황에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교훈을 몸소 체험하게 해 준다. 굴욕은 더 깊은 현실체험을 통해 사회를 정확히 이해하고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사고방식을 갖고 광활한 성공의 길을 개척할 수 있게 해준다.

세월이 지난 후의 일이지만 사기(史記)를 집필한 사마천(司馬遷)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한신에 대한 논평(論評)을 통해 '만약 한신이 도(道)를 배워 겸양(謙讓)을 지키며 자기의 공적을 자랑하거나 재능을 내세우는 일이 없었던들 한(漢)나라 왕조에 대한 그의 공훈은 저 주공(周公)과 강태공망(姜太公望)에 비교될 수 있는 것이어서 국가의 원훈(元勳)으로서 뒷 세상에 길이 사당(祠堂)의 제사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기를 꾀하지 않고 천하가 이미 통일되고 난 뒤에 여전히 반역을 꾀하고 있었으니 온 집안이 전멸을 당하게 된 것도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젊은 시절 모욕을 참고 성공한 처세가 말년에 역적으로 참수된 사연이 참으로 안타깝다. 역시 인간은 어떻게 죽었는가가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一勤天下無難事 百忍堂中有泰和(일근천하무난사 백인당중유태화)'라는 말이 있다.

한 번 부지런하면 천하에 어려운 일이 없고, 백 번 참으면 가정에 큰 화평이 온다는 뜻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주는 이 참다운 교훈인 참을 줄 아는 미덕(美德)이 실천으로 연결되기를 기대해본다.

장상현/ 인문학 교수

2020101301000791400027401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수입산을 한돈으로 속여 홈쇼핑 판매 농업회사 대표 '징역형'
  2. 신탄진공장 사망사고 한솔제지 대표 중대재해처벌법 송치
  3. 두쫀쿠로 헌혈 늘었지만… 여전한 수급 불안정 우려
  4. 대전권 사립대 2~3%대 등록금 인상 결정… 2년 연속 인상 단행
  5. 한국노총 전국 건설·기계일반노동조합 2차 정기대의원대회 개최
  1. 2026년 과기정통부 기후·환경 R&D 예산 75% 증가… 연구재단 29일 설명회
  2. 대전 서북부 새 관문 ‘유성복합터미널 개통’
  3. 인미동, 대전.충남통합 속 지방의회 역할 모색… "주민 삶과 민주적 절차 중요"
  4. 고교학점제 선택과목 성취율 폐지·생기부 기재 축소… 교원 3단체 "형식적 보완 그쳐"
  5. ‘공정한 선거문화 조성을 위해’

헤드라인 뉴스


대전에 사람이 모여든다... 일류경제도시로 상한가 `대전`

대전에 사람이 모여든다... 일류경제도시로 상한가 '대전'

대전에 사람이 모여들고 있다. 도시 경쟁력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할 단어는 '사람'이다. 경제와 문화, 생활 등 지역의 미래는 결국 사람이 만들기 때문이다. 저출산, 고령화와 수도권 집중화로 인구소멸을 우려하는 시기에 대전시의 인구 증가세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한국경제인협회가 발표한 수도권 지방자치단체(지자체)를 대상으로 한 인구감소·지방소멸 현황 및 과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비수도권 지자체의 77%는 현재 지역의 인구감소 및 지방소멸 위험 수준이 '높다'고 평가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대전시는..

민주당, 정식 명칭은 ‘충남대전통합특별시’, 약칭은 ‘대전특별시’
민주당, 정식 명칭은 ‘충남대전통합특별시’, 약칭은 ‘대전특별시’

더불어민주당이 대전과 충남 통합 특별시 정식 명칭을 ‘충남대전통합특별시’로, 약칭은 ‘대전특별시’로 정했다. 민주당 대전·충남 통합 및 충청지역 발전 특별위원회 황명선 상임위원장은 29일 국회에서 열린 특위 회의 후 브리핑을 통해 명칭과 약칭, 특별법 추진 과정 등 회의 결과를 설명했다. 우선 공식 명칭은 충남대전통합특별시, 약칭은 대전특별시다. 앞서 28일 민주당 광주와 전남 행정통합 추진 특별위원회도 통합 특별시 명칭을 '전남광주특별시', 약칭을 '광주특별시'로 정한 바 있다. 통합 특별시의 청사와 관련해선, 황명선 상임위원장은..

정부 올해 첫 부동산 공급 대책… 지방은 또 빠져
정부 올해 첫 부동산 공급 대책… 지방은 또 빠져

정부의 올해 첫 부동산 공급 대책이 수도권에만 집중되면서 지방은 빠졌다는 아쉬움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재명 정부 들어서면서 네 번째 발표된 부동산 대책인지만, 지방을 위한 방안은 단 한 차례도 담기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를 두고 지방을 위한 부동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는 29일 '도심 주택공급 확대 및 신속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은 역세권 등 수도권 우수 입지 총 487만㎡에 청년·신혼부부 등을 주요 대상으로 양질의 주택 약 6만 세대를 신속히 공급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지역별로는 서울 3..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자율주행버스 시범운행 자율주행버스 시범운행

  • 대전·충남 시도의장 행정통합 관련 기자회견 대전·충남 시도의장 행정통합 관련 기자회견

  • 대전 서북부 새 관문 ‘유성복합터미널 개통’ 대전 서북부 새 관문 ‘유성복합터미널 개통’

  • ‘공정한 선거문화 조성을 위해’ ‘공정한 선거문화 조성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