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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귀신들' 포스터. |
죽음 이후의 존재이면서 산 사람 주변을 맴돌며 불안과 공포를 자아내는 귀신은 분명 고색창연한 유산입니다. 영화가 흥미로운 점은 이 오랜 귀신을 최첨단의 미래 산물인 AI의 비유로 쓴다는 것입니다. 이성과 지식 체계의 산물인 과학기술의 존재를 신화, 전설, 민담 등 설화적 모티프를 통해 풀어냅니다. AI 복제물과 귀신은 과학과 설화라는 판이한 영역과 마찬가지로 현재적 시점을 기준으로 미래와 과거로 나뉘지만 공히 현실의 욕망과 얽혀 있습니다.
실현되지 않은 욕망과 해결되지 않은 비애의 현실이 죽음 이후로 이어질 때 원혼은 극락왕생하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며 산 사람에게 해코지한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 속 상상의 세계를 합리적으로 규명할 수 있을 리 만무합니다. 오히려 그런 상상을 만들어낸 현실의 욕망과 그것을 억압하는 세계의 모순과 부조리를 들여다보는 게 설화의 본질적 가치일 것입니다.
옴니버스 형식의 이 영화 속 다섯 가지 에피소드들은 이 같은 점을 성찰하게 합니다. 유한한 인간 존재의 사유와 욕망을 미래로 지속되게 하려는 AI의 정체를 봅니다. 문제는 시간의 지속이 욕망의 실현으로 연결되지 못하리라는 점입니다. 위의 시 <거울>처럼 별개의 존재이면서도 원본인 나를 닮았기에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는 여전히 해결되지 못합니다. 나와 동일한 존재이면서 현실의 나를 온전히 극복한 '초인'이 되지 못하리라는 냉정한 예감입니다. 어쩌면 영화 속 AI 귀신들이 극락왕생하지 못하고 계속 현실을 떠돈다는 것이 불안과 공포의 진정한 본질일 수 있습니다. AI로 대변되는 첨단 과학이 인간을 유토피아로 이끌 수 없으리라는 비관적 태도가 이 작품의 주제 의식으로 이해됩니다.
이 작품은 SF 장르이지만 저예산 독립영화라는 한계를 분명히 드러냅니다. SF 장르의 형식을 갖추는 데는 기술과 자본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과학과 설화를 연결하여 현실을 성찰하고 비판적으로 이해하게 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고찰할 만합니다.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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