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대전 첫 개원의사는 누구?…1928년부터 한국인 의사 활약

일제강점기 대전 첫 개원의사는 누구?…1928년부터 한국인 의사 활약

김영수 연세대 의과대학 연구조교수 발표
1928년 개원 김종하·하용철 첫 의사 가능성
도립대전의원 예산 한 차례 부결뒤 마련돼
60병상 규모에 전염병환자 분리 수용도

  • 승인 2021-09-19 11:02
  • 수정 2021-09-19 11:13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도립대전의원
도립대전의원 옛 모습.

대전에서 처음 개원한 한국인 개인의료기관이 당초 알려진 1946년 박외과의 박선규가 아니라 1928년 중앙의원을 개원한 김종하(金鍾夏)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일본의사 상당수는 대전철도병원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대전철도병원이 대전에 개인의료기관을 만드는 발판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영수 연세대 의과대학 연구조교수는 최근 대전에서 개최된 '대전의 의료와 위생' 학술대회에서 대전의 의료인과 도립대전의원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1928년 김종하 대전 첫 개원의

다수의 일본인들이 대전의 시가지에서 의업을 행하는 가운데 1928년경부터 한국인 의사가 개업을 하거나 지역 의료기관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김종하(金鐘夏)는 1928년 대전에 중앙의원을 개원했는데 함경남도 출신으로 1924년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해 같은해 7월부터 12월까지 경남 마산도립의원 외과에서 근무한 것으로 조사됐다. 1928년 8월 동아일보에 김종하가 대전에서 가난으로 치료받지 못하는 극빈 환자를 대상으로 하루 3명씩 무료로 치료해주기로 했다는 기사가 게재됐다.

하용철(河龍鐵)은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대전철도병원에서 근무했다. 대전교회의 신자였으며, 빈민치료에 앞장서며 크리스마스를 맞아 대전교회와 연합해 예배당에서 무료로 진료했다는 기사가 1929년 12월 동아일보에 게재된 것으로 보아 이미 이때부터 대전에서 개원의로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2004년 대전시가 발행한 '대전시보건의료사'에서 대전의 최초 개원의료기관을 1940년 조선총독부가 실시하는 의사고시에 합격한 박선규가 1946년 개원한 박외과라고 기록하고 있다.

김 교수는 "대전철도병원에 발령받은 것을 계기로 의사들이 대전지역에 개원하는 발판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라며 "1928년 중앙의원을 개원한 김종하가 대전에서 개원한 최초의 한국인일 가능성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도립병원 대전설치 찬반 팽팽

도립병원을 대전에 설치하는 방안에 충남도 평의회에서 격렬한 찬반 논쟁이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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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립대전의원은 1971년 충남대 의과대학 부속병원으로 전환돼 지금의 충남대병원의 모태가 됐다.

공주에 이미 자혜원이 있었으나 대전에도 자혜의원 만들어달라는 요구가 1910년부터 대전주민에게서 제기됐고, 1920년대 초 부지 선정 및 매수 작업도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러나 도립의원 설치 예산을 두고 충남도가 얼마만큼의 예산을 지불할 수 있는가의 문제에서 예산안이 한 차례 부결됐다. 1927년 충남도 평의회는 대전 도립의원 설치비 중 지방비 보조금에 대한 극렬한 반대했고 그해 12월 한 차례 예산안을 부결시켰다. 예산안을 두고 논쟁은 지속돼 도립대전의원 설립에 1928~1929년 두 해 동안 10만원의 국고보조와 권업비 및 보조 6만6550원, 병원에 대한 9만3000원 계상하는 것으로 1928년 2월 평의회에서 가결됐다.

이로써 도립대전의원은 대흥교 서중학교 쪽 부지(1만평)에 1930년 3월 말에 준공하고 같은 해 6월 7일 개원식을 갖고 6월 10일부터 진료를 시작했다. 부지는 전체 9787평에 건물은 본관 347평, 일반병사 208평, 렌트겐 및 자외선 수술실 등 45평을 포함해 931평의 건물이 들어섰다. 한 번에 60여 명의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고, 격리병실 및 소독실 등도 120평으로 상당한 규모였다. 

 


▲대전철도병원 거쳐 지역 정착

김 교수는 일본 의사시론사가 당시에 편찬한 '일본의적록'을 통해 도립대전의원에 종사한 의사들 이름을 확인했다. 의사의적록에는 인물별 출생기록, 학력, 의사면허번호, 개원한 병원 이름 및 주소, 전공과, 경력 등이 담겼다.

일본의적록 1925년 초판에서 대전에서 활동한 개인 의사는 8명이었고, 1926년 8명, 1930년 11명으로 집계됐다. 개업일로 보면 가장 빠른 시기가 1910년이고 대부분 대전철도병원에 근무한 뒤 대전에 정착한 경우다. 당시 대전의 특정 장소 지명인 혼초에 가장 많은 의원이 위치해 있었고, 가스가초 및 시카에초 등에도 있었다. 이들 모두 대전역 주변의 번화가에 해당하는 지역이며, 내과가 가장 많았고, 안과, 피부과 및 산부인과도 있었다.

일본인 의사 하야시다쓰오는 일본 구마모토의학전문학교 출신으로 나가사키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중국, 남만주, 북만주에서 8년간 봉직하고, 외무성 촉탁의를 역임했다. 그는 1915년 하라의원(原醫院)을 개원했고, 대전시의회사 부회장, 총독부 공보의로도 활약했다.

또 하야시 다쓰오는 일본 구마모토의학전문학교 출신으로 1918년 의사면허를 취득한 후 대전에 하야시 의원(林醫院)을 개원했으며, 호리에 에이지로는 규슈제국대학 의과대학 졸업 후 1926년부터 대전철도병원에서 근무했다.

사토 소타로는 대전 최초의 개업의로 상당히 유명한 인물인데 일본 센다이 출신으로 청일, 러일전쟁에 참여했고, 1895년 제2사단 야전병원장을 역임했다. 1908년 조선으로 건너와 1910년 2월 대전에서 사토(佐藤)병원을 개원한 후 대전철도병원장이 되었다. 제국재향군인회 대전분회장 및 대전학교조합회의 의원, 대전의사회 부회장으로도 활약한 것으로 조사됐다.

1935년 현재 대전에 13명의 치과의사가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된 자료가 있어, 이때도 치과는 일반 병의원과는 별도로 개원해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김 교수는 "1925년부터 1943년까지 대전에 일본인과 조선인 거주인은 폭발적으로 늘었으나 개업의사 수는 8명에서 11명으로 큰 변화가 없었는데 의료인력 부족뿐만 아니라 전통의학에 대한 이용이 많았던 게 아닐지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전염병 분리 67병상 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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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4월 미군이 충남도립대전병원에 페니실린을 증정하고 의료진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제공)

 

도립대전병원 개원 때 미와(三和功) 원장이 1937년까지 원장으로 역임하고, 1938년부터 오시마(大島正孝)가 제2대 원장에 취임해 1943년까지 운영했다. 도립의원은 원장 이하 의원 2명, 의무촉탁 5명이었고, 1939년 간호부조산부양성소가 개소하면서 이를 담당하는 간호부장이 신설됐다.

 

진료과목은 내과, 이비인후과, 외과, 피부비뇨과, 산부인과, 안과, 소아과, 외과 등이다. 1937년 기준 일반병 환자와 전염병 환자를 분리해 수용했는데 일반병 환자를 위한 병실은 60병상과 전염병 환자를 위한 7병상 등이었고 1938년부터는 총 75명으로 늘었다.

김영수 교수는 "1915년 조선인 인구가 1600명, 일본인이 4300명인 대전이 1937년 조선인 3만명 일본인 9200명까지 늘어 도시가 성장하면서 도립병원이 조성될 수 있었다"라며 "1932년부터 1940년까지 수용환자와 입원 및 외래 환자 수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는데, 대전이 도내 행정의 중심이 되면서 입지를 강화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해방후 도립의원 원장 권영억

이어진 토론에서 백선례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는 김 교수의 발제에 덧붙여 추가조사 결과를 설명했다. 백 연구사에 따르면 도립대전의원에 초대원장 미와(三和功) 는 1889년 2월 치바시에서 태어나 도쿄제대 의학부를 졸업하고 1928년 도립함흥의원 의관으로 임명돼 조선으로 건너왔다. 1930년 6월 도립대전의원 원장이 되는데 조선에 건너와 2년만에 일이며 개인 역량에 대한 좋은 평가가 있었다고 밝혔다. 또 도립대전의원 2대 원장인 오시마(大島正孝)는 1897년 가나가와현에서 태어나 1922년 도쿄제대 의학부를 졸업하고 1923년 조선총독부 의관에 임명돼 공주자혜병원에서 일하다가 이후 도립마산병원, 대구의원 내과부장 등을 역임했다.

1930년 도립대전의원에 두 명의 조선인 촉탁의가 있었는데 이중 권영억(權寧億)은 1892년 충북 음성에서 태어나 경성의전을 졸업하고 경기도 수원과 중국 길림성에서 개업했다. 1930년부터 도립대전의원에서 근무하며 안과과장이 되기도 했으며, 1935년부터는 전남 소록도 나환자요양소에서 10년 근무했다. 해방 후에는 대전도립병원 원장을 역임하고 1949년 음성군에서 안과전문 영제병원을 개업했다고 소개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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