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식탐] 친애하는 나의 위장에게

  • 오피니언
  • 우난순의 식탐

[우난순의 식탐] 친애하는 나의 위장에게

  • 승인 2021-12-29 10:32
  • 수정 2021-12-29 17:41
  • 신문게재 2021-12-30 18면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1111111111
최강 먹보왕 '히밥'엔 어림없지만 나 역시 먹는 거라면 체면 따지지 않는 거 너도 알지? 도우가 두툼한 피자도 네 쪽 반이나 먹어치우니 말야. 내 몸의 중심 위장(胃腸)아, 애 많이 쓴다. 그런데 지지난주 휴일에 스타벅스 초코조각케이크를 후식으로 먹고 나서 뱃속이 조청 끓듯 부글부글하던데 이런 적 없었잖아. 하긴 초콜릿이 듬뿍 들어간 데다 크기도 다른 것보다 크긴 하더라만. 근데 너도 알잖아, 난 맛있는 게 있으면 앉은 자리에서 다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는 거. 여자들은 맘에 드는 남자 앞에선 조금만 먹는다던데 난 남자 앞에서도 음식을 남긴 기억이 없어. 두툼한 돈가스도 밥과 샐러드는 물론이고 고기도 소스를 듬뿍 찍어 접시를 깨끗하게 비웠었지.

위장 너! 맘에 안 드는 게 있어. 넌 뭐든지 안 가리고 잘 받아주는데 왜 술은 싫어할까? 먼저 칼럼에서 회식문화를 비판했지만 사실 난 술 잘 마시는 사람이 증말 부러웠거든. 손목을 딱딱 꺾으며 폭탄주를 들이켜는 사람을 보면 경이로움 그 자체였지. 애주가들은 술맛을 알면 인생을 안다고 했어(꼭 그런 것도 아니지만). 친구들과 술 한 잔 하며 객기도 부리면서 스트레스 훌훌 날려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모르는 사람은 내가 말술 하는 줄 안다니까. 못 마신다고 하면 내숭 떤다고 눈 흘겨. 아우 씅빨나. 톱톱한 막걸리를 마시면 입에선 달착지근한데 너는 발광을 하니 참. 술 마시고 사고 칠까봐 그런 거야?

흔히 먹는 거 갖고 장난치면 안된다고 하잖아. 물 먹인 소고기, 저질 중국산 고춧가루 등. 그런데 사람을 밥으로 고문한 인간들이 있었어. 12월 30일 오늘은 김근태 서거 10주기야. 김근태는 민청련 활동으로 1985년 남영동 치안본부에서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당했어. 그는 자신의 고문 기록서 <남영동>을 썼어. 이 책을 읽을 때 김근태가 겪었던 고문을 상상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경험한 당사자나 알 수 있겠지. 김근태는 고문 기술자들한테 울부짖으며 살려 달라고, 아니 곱게 죽여 달라고 애걸복걸했어. 그런 김근태를 내려다보면서 낄낄대는 인간 백정들! 이놈들은 고문할 때는 밥을 주지 않는데 밥을 먹이고 고문하면 속이 버리기 때문이래. 그러니까 밥을 안 주면 고문이 시작된다는 걸 알게 되는 거지. 더 무서운 건 고문을 안할 때도 밥을 주지 않아 고도의 심리적인 압박과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는 거야.

고문 얘기해서 네가 잔뜩 쪼그라들었구나. 영화 '자산어보'엔 재밌는 인물들이 등장해. 그 중 가거댁은 푸근하고 솔직담백한 여인이야. 유배 온 정약전이 "내가 사학죄인이라 불편한가? 내가 께름칙한가?"라고 묻자 가거댁은 "아이고 아녀라, 잘생겼어라" 넉살좋게 받아치는 품이 여간 아니었어. 영화엔 흑산도의 바닷고기들이 많이 나와. 가거댁은 몸이 쇠약해진 정약전을 위해 창대가 잡아온 솥뚜껑만한 문어와 전복을 가마솥에 넣고 푹 끓여 상에 올려. 정약전이 어찌나 맛있게 먹던지 네가 꼬르륵 소리를 냈잖아.



의사들은 위장은 뇌와 연결됐다고 하더라. 위장이 약한 사람은 예민하다는 증거라고. 너도 소싯적엔 까칠한 주인 때문에 고생 깨나 했지. 소화제는 상비약이었고 심한 변비로 동네 병원 가서 의사한테 못 볼꼴도 보여주고 말야. 아휴, 할아버지 의사였기에 망정이지. 그때 죽는 줄 알았어. 의사 선생이 애를 많이 쓰셔서 나중에 고마움을 표하고 싶었지만 창피해서 한동안 그 의원 앞을 못 지나갔어. 무엇을 먹느냐가 중요한 걸 알고 야채를 많이 먹고 골고루 먹으니까 이젠 네가 안정이 됐나봐. 가끔 화장실에서 끙끙거리지만 심한 변비는 없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아니면 나이 먹었다는 핑계대고 하고 싶은 말 다해서 편해진 건가. 2021년도 저무는구나. 올 한해 잘 소화하고 잘 싸줘서 고맙다. <우난순 지방부장>

1306468121
게티이미지 제공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갑천 야경즐기며 워킹' 대전달빛걷기대회 5월 10일 개막
  2. 수도 서울의 높은 벽...'세종시=행정수도' 골든타임 놓치나
  3. 충남 미래신산업 국가산단 윤곽… "환황해권 수소에너지 메카로"
  4. 이상철 항우연 원장 "한화에어로 지재권 갈등 원만하게 협의"
  5.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1. 충청권 학생 10명 중 3명이 '비만'… 세종 비만도 전국서 가장 낮아
  2. 대학 10곳중 7곳 올해 등록금 올려... 평균 710만원·의학계열 1016만원 ↑
  3.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4. [춘하추동]삶이 힘든 사람들을 위하여
  5. 2025 세종 한우축제 개최...맛과 가격, 영양 모두 잡는다

헤드라인 뉴스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이제는 작업복만 봐도 이 사람의 삶을 알 수 있어요." 28일 오전 9시께 매일 고된 노동의 흔적을 깨끗이 없애주는 세탁소. 커다란 세탁기 3대가 쉴 틈 없이 돌아가고 노동자 작업복 100여 벌이 세탁기 안에서 시원하게 묵은 때를 씻어낼 때, 세탁소 근로자 고모(53)씨는 이같이 말했다. 이곳은 대전 대덕구 대화동에서 4년째 운영 중인 노동자 작업복 전문 세탁소 '덕구클리닝'. 대덕산업단지 공장 근로자 등 생산·기술직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곳으로 일반 세탁으로는 지우기 힘든 기름, 분진 등으로 때가 탄 작업복을 대상으로 세탁한다...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올 시즌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는 프로야구 한화이글스가 9연전을 통해 리그 선두권 경쟁에 돌입한다. 한국프로야구 10개 구단은 29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휴식 없는 9연전'을 펼친다. KBO리그는 통상적으로 잔여 경기 편성 기간 전에는 월요일에 경기를 치르지 않지만,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프로야구 5경기가 편성했다. 휴식일로 예정된 건 사흘 후인 8일이다. 9연전에서 가장 주목하는 경기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리는 LG 트윈스와 승부다. 리그 1위와 3위의 맞대결인 만큼, 순위표 상단이 한순간에 뒤바..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생이 교직원과 시민을 상대로 흉기 난동을 부리고, 교사가 어린 학생을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학생·학부모는 물론 교사들까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찰과 충북교육청에 따르면 28일 오전 8시 33분쯤 청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특수교육대상 2학년 A(18) 군이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 4명과 행인 2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A 군을 포함한 모두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계성 지능을 가진 이 학생은 특수교육 대상이지만, 학부모 요구로 일반학급에서 공부해 왔다. 가해 학생은 사건 당일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해 특..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 ‘꼭 일하고 싶습니다’ ‘꼭 일하고 싶습니다’

  •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