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식탐] 먹쟁이의 레알 감빵생활

  • 오피니언
  • 우난순의 식탐

[우난순의 식탐] 먹쟁이의 레알 감빵생활

  • 승인 2022-09-07 09:16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KakaoTalk_20220907_091446814
결국 그 놈이 왔다. 처음엔 냉방병인가 했다. 온 몸의 뼈마디가 쑤시고 열도 나도 머리도 아프고. 아침에 일어나 혹시 몰라서 검사를 했다. 음성이었다. 연차를 내고 쉬었지만 몸살기는 여전했다. 다음날 아침에 또 검사했지만 음성. 안되겠다 싶어 병원에 갔더니 양성이란다. 일주일간 자가격리. 고기 많이 먹어라, 코로나엔 비타민 C가 좋다더라…. 지인들의 조언이 쏟아졌다. 한 친구는 축하한다고 했다. 이참에 푹 쉬라고.

2년 전 코로나 19가 발생한 후 나에겐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코로나 이전엔 먹거리를 그때그때 조금씩 사서 해먹었다. 해서 냉장고가 휑했었는데 지금은 터질 지경이다. 여기저기 도토리를 묻어 놓는 다람쥐처럼 음식물을 쟁여 놓는 것이다. 일종의 불안심리다. 그래서 동네마트에 매일 들른다. 가면 뭐라도 한두 개는 꼭 사온다. 틈틈이 할인 세일도 하기 때문에 지나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먹을거리가 넘쳐나 시들고 썩어서 버리는 채소가 만만찮다. 엥겔계수가 장난이 아니다. 확진 덕분에(?) 이참에 요긴하게 먹게 생겼다. 그래도 부족한 감이 들어 병원 갔다가 집에 오는 길에 고기, 빵, 라면 등 한보따리 또 샀다. 자가격리 만반의 준비 끝!

감빵생활 첫째 날은 하루종일 거실에 큰 대(大) 자로 누워 TV만 봤다. 아무 생각없이 웃음 실실 쪼개는 예능 프로만 골랐다. '라디오 스타' 재방을 두 번이나 봤다. 류승수, 김규리, 김호영, 류희관이 나왔는데 MC 김국진이 배꼽 잡고 얼굴이 벌개지도록 웃었다. 그 모습에 나도 덩달아 낄낄댔다. 영화 채널에서 '기묘한 가족', '뷰티풀 뱀파이어' 도 봤다. '뷰티풀 뱀파이어'는 한국영화로 이런 영화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정통 뱀파이어 서사를 180도 비트는 B급 영화다. 숨은 진주를 발견한 것처럼 경이로웠다. 약을 먹었더니 몸살기도 누그러지고, 먹고 놀고 먹고 놀고. 흠, 감빵생활도 나쁘진 않군.

그런데 이 코로나란 놈이 만만치 않았다. 얼추 나았나 싶었는데 새로운 증상들이 나타나 숙주를 쉽사리 놔주지 않았다. 불면증과 식욕 저하 그리고 극심한 인후통.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니 아침엔 몸이 물먹은 솜처럼 천근만근이었다. 밤새 기침과 목은 침을 삼키기 힘들 정도로 아팠다. 거기다 재택 근무라는 명이 떨어졌다. 빌어먹을 구닥다리 노트북은 느려터진데다 글씨마저 깨알 같아서 눈이 빠질 것만 같았다. 낮 12시까지 일을 끝내고 나면 식은땀이 쫘악 흘렀다. 30분 정도 뻗어 있다 일어나기를 매일 반복. 부아가 났다. 어떤 사람은 온전히 1주일 쉬다 출근하는데 어떤 사람은 재택근무하고. 젠장, 먹고 사는 거 힘드네.

하루는 밤에 난데없이 황소만한 바퀴벌레가 점보 제트기 소리를 내며 평화로운 나의 집에 침입했다. 깜짝 놀란 나는 신문지를 말아 쥐고 음흉스런 바퀴벌레를 단번에 내리쳐 박살냈다. 가슴이 벌렁벌렁해 서랍에 있던 우황청심원을 마셨다. 이런 푸틴 같은 놈. 바퀴벌레가 남자들 정력에 좋다고 하면 씨가 마를텐데. 허기가 져 포도 한 송이를 먹었다. 입맛이 없지만 꾸역꾸역 먹었다. 나의 엄마 이순례 여사는 그러셨지. 어릴 때 감기 걸리면 밥만 잘 먹으면 감기가 뚝 떨어진다고. '요맘 때' 콘을 먹으면 소원이 없겠다. 요즘 내가 필 꽂힌 아이스크림이다. 얼굴에 검은 비닐봉지 뒤집어쓰고 나갔다 올까? 자가격리 마지막 날, 친애하는 벗들이 간장게장과 복숭아 한 상자를 보내며 기운 내라고 격려했다. 노란 알이 가득 찬 게딱지에 금방 지은 쌀밥을 넣어 비벼먹었다. 입맛이 확 돌았다. 게 다리는 쪽쪽 빨아먹고 씹어먹었다. 밥 두 그릇을 해치우고 마동석 주먹만한 복숭아도 쩝쩝.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을 들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이 눈부셨다. <지방부장>
우난순 수정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2027 하계 U대회...세종시에 어떤 도움될까
  2. "내 혈압을 알아야 건강 잘 지켜요"-아산시, 고혈압 관리 캠페인 펼쳐
  3. 세종시 사회서비스원, 초등 돌봄 서비스 강화한다
  4. 세종일자리경제진흥원, 지역 대학생 위한 기업탐방 진행
  5. "아산외암마을로 밤마실 오세요"
  1. "어르신 건강 스마트기기로 잡아드려요"
  2. 선문대, 'HUSS'창작아지트' 개소
  3. 천안시 도시재생지원센터, 투자선도지구 추진 방향 모색
  4. 한국바이오헬스학회 출범 "의사·교수·개발자 건강산업 함께 연구"
  5. 천안시립흥타령풍물단, 정기공연 '대동' 개최

헤드라인 뉴스


22대국회 행정수도 개헌 동력 살아나나

22대국회 행정수도 개헌 동력 살아나나

국가균형발전 백년대계로 충청의 최대 염원 중 하나인 세종시 행정수도 개헌 동력이 되살아날지 주목된다. 22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조국혁신당이 이에 대한 불을 지피고 나섰고 4·10 총선 세종갑 당선자 새로운미래 김종민 의원이 호응하면서 지역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다만, 개헌은 국회의석 3분의 2가 찬성해야 가능한 만큼 거대양당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개헌 정국을 여는 데 합의할지 여부가 1차적 관건이 될 전망이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17일 국회 소통관에서 22대 국회에서 개헌특위 구성을 제안 하면서 "수도는 법률로 정한다..

더불어민주당, 대전·충청 화력집중… 이재명 지역 당원들과 `스킨십` 강화
더불어민주당, 대전·충청 화력집중… 이재명 지역 당원들과 '스킨십' 강화

22대 총선에서 '충청대첩'을 거둔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가 22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19일 대전·충청을 찾아 지지세를 넓혔다. 이 대표를 비롯한 당 주요 인사들과 충청 4개 시·도당위원장, 국회의원 당선인은 충청발전에 앞장서겠다는 다짐과 함께 당원들의 의견 반영 증대를 약속하며 대여 공세에도 고삐를 쥐었다. 민주당은 19일 오후 대전컨벤션센터에서 '당원과 함께! 컨퍼런스, 민주당이 합니다' 행사를 열었다. 이날 행사는 전날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호남편에 이은 두 번째 컨퍼런스로, 22대 총선 이후 이 대표와 지역별 국회의..

대전 외식비 전국 상위권… 삼겹살은 서울 다음으로 가장 비싸
대전 외식비 전국 상위권… 삼겹살은 서울 다음으로 가장 비싸

한 번 인상된 대전 외식비가 좀처럼 내려가지 않고 있다. 가뜩이나 오른 물가로 지역민의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지역 외식비는 전국에서 손꼽힐 정도로 높은 가격을 유지 중이다. 19일 한국소비자원이 운영하는 가격정보 종합포털사이트 참가격에 따르면 4월 대전의 외식비는 몇몇 품목을 제외하고 전국에서 손을 꼽을 정도로 높은 가격을 유지 중이다. 우선 직장인들이 점심시간 가장 많이 찾는 김치찌개 백반의 경우 대전 평균 가격은 9500원으로, 제주(9625원)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가장 비싸다. 지역의 김치찌개 백반 평균 가격은 1년..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장미꽃 가득한 한밭수목원 장미꽃 가득한 한밭수목원

  • 대전 찾은 이재명…당원들과 스킨십 강화 대전 찾은 이재명…당원들과 스킨십 강화

  • ‘덥다,더워’…전국 30도 안팎의 초여름 날씨 ‘덥다,더워’…전국 30도 안팎의 초여름 날씨

  • 무성하게 자란 잡초에 공원 이용객 불편 무성하게 자란 잡초에 공원 이용객 불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