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식탐] 몸이 원하는 대로 먹는다

  • 오피니언
  • 우난순의 식탐

[우난순의 식탐] 몸이 원하는 대로 먹는다

  • 승인 2023-01-11 13:41
  • 수정 2023-01-11 17:14
  • 신문게재 2023-01-12 18면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1443747428
게티 이미지 제공
SBS 장수 프로그램 '세상에 이런 일이'는 재미나고 특이한 소재를 다룬다. 그 중 특별한 식성의 소유자들은 볼 때마다 놀랍다. 음료수·국·짜장면 등 모든 음식에 고추장을 들이부어 먹는 남자, 멀미약을 하루에 스무병 이상 먹는 할머니, 밥에 설탕을 듬뿍 몇 수저 넣어서 비벼먹는 여자, 청양고추보다 훨씬 매운 고추를 아무렇지 않게 먹는 다섯 살 아이…. 더 놀라운 것은 이들이 병원에서 검사한 결과 아무 이상이 없다는 사실이다. 멀미약은 말 그대로 약 아닌가. 충분히 생길 법한 위장병, 고혈압, 당뇨 같은 질병도 없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이 사람들은 하나같이 먹고 싶어서 먹은 것뿐이라고 말한다.

건강 염려증 환자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현대인은 음식에 대해 꼼꼼하게 따져 먹는다. 당, 나트륨, 지방, 단백질, 탄수화물, 콜레스테롤, 포화지방 등 이것저것 가려먹어야 할 게 너무 많다. 동물은 어떨까. 본능이 강한 동물이야말로 어떻게 먹을까. 간혹 인간은 독버섯을 먹고 사망하거나 간신히 살아나는데 멧돼지, 고라니는 어떻게 그 것을 피해 갈까. 사막의 낙타는 짠 소금을 핥아 먹고 사자는 사냥한 임팔라를 내장부터 파먹는다. 내장은 갖가지 영양분이 풍부하지만 쉽게 부패한다. 동물은 본능적으로 위험한지, 안전한지 인지하는 능력이 있는 모양이다. '개 풀뜯어 먹는 소리 하고 있네'라는 우스갯말이 있다. 어릴 적 우리 집 개가 풀을 뜯어먹는 걸 봤다. 엄마는 개가 뱃속이 안 좋아서 풋것을 먹고 속을 게워내려는 것이라고 했다. 본능이야말로 과학이다.

나는 식욕 앞에선 참을성이 없다. 맛있는 걸 먹을 땐 세상이 핑크빛이다. 지난 연말엔 동지가 가까워오자 팥죽이 사무치게 먹고 싶어 동짓날 연차를 냈다. 그날은 맹추위와 함께 눈보라가 몰아쳤다. 온 몸을 중무장하고 보문산 아래 절로 향했다. 안경에 김이 서려 앞이 뿌연 상태서 엉금엉금 걷다가 그만 경사진 길에서 꽈당 넘어졌다. 머리가 띠잉 하면서 골이 흔들리는 듯했다. 뇌진탕은 아닌 것 같아 그대로 직진. 재작년엔 좀 짰는데 이번 팥죽은 완벽했다. 진하고 입천장에 짝짝 붙는 쫀득한 새알도 그득했다. 머리에 난 주먹만한 혹과 맞바꿔 먹는 셈이지만 후회하지 않았다. 12월 끝자락에 회사에서 피자먹을 일도 있었다. 피자를 보는 순간 내 위장은 에어로빅 선수처럼 격하게 움직이고 입안엔 침이 가득 고였다. 단숨에 여덟 쪽을 먹었다. 맛있게 먹으면 많이 먹어도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는다.

작년 여름에는 '요맘때'라는 콘에 푹 빠져 살았다. 부드럽고 달콤하고 요거트 맛이 나는 이 아이스크림이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가 않았다. 의사들은 아이스크림은 설탕 범벅이라 많이 먹으면 몸에 해롭다고 경고한다. 나도 건강을 생각해야 할 정도로 늙어가는 나이지만 어느새 내 손은 아이스크림을 집어 든다. 에이 못 참아, 그냥 먹을래. 한동안 원 없이 먹고 나니 어느 순간 뚝! 몸의 호르몬이 알아서 조절하는 건가.

동물이든 인간이든 모든 생물은 기본적으로 좋은 쪽으로 나아가려는 본능이 있다고 한다. 일종의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것이다. 건강에 해로운 변화가 일어나려고 할 때 메커니즘은 그 변화와 반대되는 과정을 활성화시켜 몸을 보호한다는 원리다. 몸이 아프면 밥을 제대로 못먹는다. 그러다 회복되면 식욕이 왕성해지는 경우가 이를 증명한다. 문제는 어떤 이는 왜 병적인 비만이 되는 지는 생물학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나는 지금은 크림빵이 그다지 당기지 않아 바게트나 호밀빵을 먹는다. 지난 주말엔 소금만 한 꼬집 넣고 늙은 호박, 밤, 여러 가지 콩이 들어간 떡을 해먹었다. 이러다가 또 어느 날 단 것이 확 당길 것이다. 그럼 그땐 초코케이크를 퍽퍽 퍼먹으면 될 일이다.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 듯. <지방부장>
우난순 수정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늑구'가 비춘 그림자…대륙사슴·하늘다람쥐 우리곁 멸종위기는 '진행중'
  2. [속보] 與 대덕구청장 후보 '김찬술'…서구 전문학·신혜영, 동구 황인호·윤기식 결선행
  3. 대전교육감 출마 예비후보자들 세 불리기 분주… 공약은 잘 안 보여
  4. 집 떠난 늑구 열흘째 먹이활동 없어…수색도 체력소진 최소화에 촛점
  5. '공기·물·태양광으로 비료 만든다' 대전기업 그린팜, 아프라카 농업에 희망 선사
  1. 이재명 정부 과학기술 정책 일단은 '긍정'… 앞으로 더 많은 변화 필요
  2. '충격의 6연패'…한화 이글스 내리막 언제까지
  3. 세종보 천막농성 환경단체 활동가 하천법 위반 1심서 '무죄'
  4. 이춘희 전 세종시장 "이제 민주당 승리 위해 힘 모아야"
  5. 국고 39억원 횡령혐의 전 서산지청 공무원, 현금까지 손댄 정황

헤드라인 뉴스


행정통합 충청 지선 뇌관 현실화…野 "정치 사기" vs 與 "추후 지원"

행정통합 충청 지선 뇌관 현실화…野 "정치 사기" vs 與 "추후 지원"

좌초된 대전충남 행정통합이 6·3 지방선거 여야 최대격전지 금강벨트 뇌관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관측이 현실화 되고 있다. 정부 추경 예산안에 광주전남통합특별시 출범을 위한 예산이 누락 된 것이 트리거가 됐는 데 이를 두고 여야는 격렬하게 충돌했다. 이재명 정부가 매년 5조 원씩 총 20조 원 지원이라는 파격적 재정 특례를 내세워 통합을 밀어붙였지만, 정작 출범을 앞두고 기본 예산조차 확보하지 못하면서 충청권에서도 파장이 커지는 모습이다. 16일 정치권에 따르면 오는 7월 1일 출범을 앞둔 광주전남통합특별시에 필요한 예산 177억 원이..

지역연고 구단 `대전 오토암즈`, 이스포츠 역사상 첫 그랜드 슬램 위업
지역연고 구단 '대전 오토암즈', 이스포츠 역사상 첫 그랜드 슬램 위업

'대전 오토암즈'가 이스포츠 대회에서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며 '이스포츠 중심도시 대전'으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했다. 한 구단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것은 프로 이스포츠대회 역사상 최초다. 대전 연고의 프로 이스포츠 구단인 '대전 오토암즈'는 창단 1년 만에 국내 이스포츠 대회 '이터널 리턴 마스터즈 시즌 10'에서 올해 2월에 열린 '페이즈 1'과 '페이즈 2'(3월 대회) 우승에 이어 파이널(4월 대회)까지 제패하면서 한 시즌의 모든 주요 타이틀을 석권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이번 대회에는 전국 12개 지자체 연고 구단들이..

`함정 범죄`로 갈취·협박 빈번… 두번 우는 세종시 자영업자
'함정 범죄'로 갈취·협박 빈번… 두번 우는 세종시 자영업자

최근 세종시에서 함정 범죄 유도와 공갈로 돈을 강탈하거나 폭행하는 사건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16일 세종경찰청에 따르면 성인 남성 A·B 씨는 지난해 11월 말 세종시의 한 유흥주점에서 후배인 청소년 C 씨와 공모해 업주 D 씨로부터 술값 105만 원을 갈취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주류를 제공받은 후 "청소년에게 술을 팔았다. 술값은 못 준다. 신고 안할테니 합의금을 달라"고 협박했다. 경찰은 이들 일당 3명 중 1명은 공갈 혐의 구속, 나머지 2명은 불구속 기소했고, 대전지검과 협의 중이다. 동일 수법의 범죄가 올해 1월..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늑구 탈출 관련해 사과하는 정국영 대전도시공사 사장 늑구 탈출 관련해 사과하는 정국영 대전도시공사 사장

  • 열흘 만에 돌아온 ‘늑구’ 브리핑 열흘 만에 돌아온 ‘늑구’ 브리핑

  • 세월호 순직교사 故 김초원 씨의 부모가 전하는 생일 축하인사 세월호 순직교사 故 김초원 씨의 부모가 전하는 생일 축하인사

  • 씨 없는 포도 ‘델라웨어’…전국 첫 출하 씨 없는 포도 ‘델라웨어’…전국 첫 출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