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으로] 기후주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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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으로] 기후주의보

김재석 소설가

  • 승인 2023-07-24 08:51
  • 신문게재 2023-07-25 18면
  • 김소희 기자김소희 기자
김재석 소설가
올해 7월은 전국이 물난리로 몸살을 앓고 있다. 기록적인 호우로 하천이 범람하면서 어떤 곳은 뼈마디가 내려앉는 고통을 겪었다. 둑이 무너져 청주 오송 지하차도를 덮친 참사의 현장이 뉴스 화면에 비친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살아서 걸어 나온 자와 묻혀서 생을 이별한 사람도 있다. 점점 기후 이상의 징조가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지구촌에 기후주의보를 발령하고 있다.

나는 농작물 손해 조사원(손해평가사)으로 청주와 괴산 일대에서 피해조사를 다녔다. 하천변의 한 과수원은 폭우에 휩쓸려 무늬만 과수원이었음을 짐작케 했다. 키가 멀대처럼 자란 옥수수는 이번 호우에 두둑이 약해져 발을 제대로 짚고 있지 못하고 픽픽 옆으로 쓰러져 있었다. 4월경에 온 냉해로 옥수수알이 들어차지도 않았는데 호우로 피해는 더 커졌다. 어느 사과 과수원은 냉해에 우박피해, 호우까지 자연재해 3종 세트를 맞아 주인장의 마음에까지 먹구름이 가득했다. 하천이 범람한 곳은 곳곳에 도로가 유실되어 조사지역까지 들어가는데도 애를 먹었다. 정말 자연재해 앞에 인간이 만든 제방도 댐도 속수무책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수가 이토록 어려운 일이구나 싶었다. 그나마 재해보험이라도 나와서 그 분들에게 조금의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옛 중국의 설화에 우 임금이 홍수를 다스린 공으로 순 임금에게 나라를 물려받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의 이전 중국은 7년 가뭄에 9년 홍수가 드는 땅이었다고 한다. 그는 물길을 터주는 방식으로 8년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치수를 했는데, 집 앞을 3번이나 지나치면서도 들르지 않았다고 한다.

무릇 한 나라의 임금은 백성의 마음을 살펴야 한다. 가장 좋은 본보기가 현장을 돌며 아픔을 위로하고 방제 대책을 세우고,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미리 방제계획을 실행하는 것이다. 윤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방문했을 때, 한국의 홍수 사태에 대해 대통령실에서 '당장 대통령이 서울로 달려간다고 별 수가 있겠느냐'는 안일한 해명을 했다가 국민 정서를 건드리고 말았다. 지지율도 하락하고 있다. 상황인식이 국민의 마음에 가 닿아 있지 않으면 아마 임기 내내 지지율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다.



기후위기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고 21세기 지구촌 어젠다이기도 하다. 나는 코로나19 때 K-방역이 나왔던 것처럼 우리나라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K-방제시스템과 기후위기 대응 모범국가가 되었으면 한다. 우 임금처럼 대통령이 솔선수범하여 현장을 돌며 전문가들과 논의하고 방제시스템을 챙긴다면 분명 국민들도 움직일 것이다.

아직 집중호우가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각에도 폭우가 쏟아지고 문자메시지에 호우주우보가 매 시간마다 띵동하며 날아든다. 집에도 누수가 있어서 벽면에 습이 차오르고 있다. 나는 예전에 쓴 <호우주의보> 시 한 편을 꺼내보았다. 우리는 선조에게 이 땅을 선물 받았고, 후대에게는 빌려 사용하고 있는 입장이다. 어쩌면 빚진 자들이다.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야겠다.

나도 빚진 마음이 있어야겠다/평생 갚을지 모를…/남동풍을 따라 장마전선이 북상했다/하루반나절/디지털 바코드같은 비가 내리고/또 반나절은 내 속에서 멜랑꼴리한 먹구름이/삐쳐나오려는 전기자극을 움켜쥐고 있었다/남에게 싫은 소리도 들었어야 했다/한 푼 빚지는 걸 못 참아 할 일도 아니었다/빚이 있다는 이유로 내 삶을 살아야 한다면 그래야 했다/장마비로 옷장 안이 눅눅하다/천정 틈으로 스며든 물기에 얼룩이 벽지를 타고 내려왔다/사람과 사람사이 눅눅한 얼룩이 핀다/디지털 바코드같은 비가 내리는/굵고 가늘고 가늘고 굵은….
김재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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