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으로]늦가을, 부모 생각

  • 오피니언
  • 세상속으로

[세상속으로]늦가을, 부모 생각

김재석 소설가

  • 승인 2023-11-06 10:13
  • 신문게재 2023-11-07 18면
  • 이상문 기자이상문 기자
김재석 소설가
김재석 소설가
11월 초순, 단풍이 늦가을 단비를 맞으며 지고 있다. 알록달록했던 나뭇잎이 빗님 소리에 놀라 우수수 떨어지면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리라

김소월의 시에 곡을 얻은 <부모>라는 이 노래는 1969년에 발매되었다. 자장가처럼 어머니 입에서 흥얼거리던 노래였다. 어머니 품에 안겨있던 어린아이가 부모가 되었고, 이제 시집 보내야 할 딸을 두고 있다. 세대와 세대를 넘어 삶은 이어지고, 또한 우리는 어쩌다 생겨나와 이 이야기를 듣고 있다. 김소월의 시는 마치 어른들을 위한 철학적 동시같다는 느낌이 든다.



내 속에는 아직도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어린아이가 있다. 해맑은 눈동자를 굴리며, 머리를 쓰다듬는 어머니의 손길을 느끼며, 그녀의 입술을 말없이 지켜보는….

기억의 창밖에서 나는 어머니와 어린 나를 바라보며 이 둘은 부모와 자식이란 인연으로 어떻게 연결되었을까 싶다.

우리 민담에는 아기를 점지해 준다는 삼신할머니 설화가 있다. 우리가 믿든 믿지 않든 명부의 세계에는 이런 역할을 하는 삼신할머니가 있을지 모른다. 옥황상제의 명을 받아 인간세계 윤회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카르마(업보)라는 시스템이 있어 삼신(영혼육)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민간신앙으로 믿어왔다. 과학계에서 이 문제는 '오컴의 면도날'과 같아서 증명할 수 없는 문제는 논제가 되지 못한다. 어쩌면 과학적 발견으로 본다면 인간은 분자 덩어리이고, 원소의 결합이 만들어낸 생물체일 것이다. 최근의 홀로그램 우주가설에선 우리는 그저 실체가 모호한 가상의 존재일 뿐이다.

과학의 영향을 받은 서양철학은 '인간은 세상에 던져진 실존적 존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의 의미도 부여하지 않는다. 삼신은 분리되고 오직 증명 가능한 육체 기능만이 논제의 대상이 될 뿐이다. 우리가 노쇠화되어가는 기계이거나 홀로그램 정보체라고 생각한다면 허망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동양에는 아직도 삼신사상이 강하다. 영혼과 육체가 혼줄로 연결되어 있고, 영혼의 세계, 명부에서는 조상의 음덕을 중요하게 여긴다. 우리는 제사라는 형식을 통해 조상을 기리고, 그 음덕을 받고자 한다. 한마디로 제례문화 내지 축제를 통해 삶의 순환성과 연속성을 되찾고자 했다. 조상은 섬기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결국 내가 조상이 되는 연속성 상의 하나인 것이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이것을 마치 붉은 실로 촘촘하게 이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관계의 인드라망인 것이다.

나는 한때 종교적인 이유로 부모에게 제사지내는 형식을 취하지 않았다. 지금은 종교적 이유를 떠나서 제사라는 형식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다만 청수를 한 그릇 떠놓고 기도를 한다. 부모와 조부모와 그 위의 조상줄을 타고 내려와 어쩌다 생겨나서 그 음덕을 기원하는 실존적 존재로서 말이다.

내가 붉은 실로 연결된 딸에게 해 줄 말이 있다면 '너는 세상에 홀로 떨어진 존재가 아니야. 조상신이 돌보고, 나도 조상신이 된다면 너를 돌볼 거야. 넌 우리의 미래이고, 최고의 조상이지. 그러니 가슴을 펴고 세상을 축제처럼 즐기기를….'

돌아가신 어머니가 내 귓가에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재석 소설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갑천 야경즐기며 워킹' 대전달빛걷기대회 5월 10일 개막
  2. 수도 서울의 높은 벽...'세종시=행정수도' 골든타임 놓치나
  3. 충남 미래신산업 국가산단 윤곽… "환황해권 수소에너지 메카로"
  4. 이상철 항우연 원장 "한화에어로 지재권 갈등 원만하게 협의"
  5.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1. 충청권 학생 10명 중 3명이 '비만'… 세종 비만도 전국서 가장 낮아
  2. 대학 10곳중 7곳 올해 등록금 올려... 평균 710만원·의학계열 1016만원 ↑
  3.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4. [춘하추동]삶이 힘든 사람들을 위하여
  5. 2025 세종 한우축제 개최...맛과 가격, 영양 모두 잡는다

헤드라인 뉴스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무죄판결 파기환송…유죄 취지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무죄판결 파기환송…유죄 취지

대법원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게 무죄를 선고한 2심 판결에 대해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이에 따라 이 후보는 서울고법에서 다시 재판받아야 한다. 서울고법은 대법원의 판단 취지에 기속되므로 유죄를 선고해야 한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영재 대법관)는 5월 1일 이 후보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지난 3월 28일 사건을 접수한 뒤 국민의 관심이 지대하고 유력 대권 주자인 이 후보의 피선거권 여부가 달려있다는 점을..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올 시즌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는 프로야구 한화이글스가 9연전을 통해 리그 선두권 경쟁에 돌입한다. 한국프로야구 10개 구단은 29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휴식 없는 9연전'을 펼친다. KBO리그는 통상적으로 잔여 경기 편성 기간 전에는 월요일에 경기를 치르지 않지만,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프로야구 5경기가 편성했다. 휴식일로 예정된 건 사흘 후인 8일이다. 9연전에서 가장 주목하는 경기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리는 LG 트윈스와 승부다. 리그 1위와 3위의 맞대결인 만큼, 순위표 상단이 한순간에 뒤바..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생이 교직원과 시민을 상대로 흉기 난동을 부리고, 교사가 어린 학생을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학생·학부모는 물론 교사들까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찰과 충북교육청에 따르면 28일 오전 8시 33분쯤 청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특수교육대상 2학년 A(18) 군이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 4명과 행인 2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A 군을 포함한 모두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계성 지능을 가진 이 학생은 특수교육 대상이지만, 학부모 요구로 일반학급에서 공부해 왔다. 가해 학생은 사건 당일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해 특..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 ‘꼭 일하고 싶습니다’ ‘꼭 일하고 싶습니다’

  •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