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칼럼] '서울의 봄'에 관한 단상

  • 오피니언
  • 문화人 칼럼

[문화人칼럼] '서울의 봄'에 관한 단상

김홍진 한남대 국어국문 창작학과 교수&문학평론가

  • 승인 2024-01-24 17:29
  • 신문게재 2024-01-25 19면
  • 김지윤 기자김지윤 기자
김홍진
김홍진 교수
영화 '서울의 봄'이 천만 관객을 동원했다. 우리 영화사에서 2003년 '실미도'가 첫 천만을 동원한 이후 현재까지 20편의 한국 영화가 천만 클럽에 가입했다. 외화 9편을 합치면 모두 30편이 천만 관객을 동원했다. 이런 영화를 접할 때 놀라는 건 인구 5분의 1이 한 영화를 봤다는 것이다. 인구 오천만 남짓에서 한 편의 특정 영화를 천만 이상이 본다. 극장을 찾기 힘든 연령층을 고려하면 적어도 인구 네 명 중 한 명꼴로 한 작품을 본 셈이다.

천만 관객 동원의 성취는 무슨 의미일까? 나의 관심은 무엇보다 그것을 소비 향유하는 대중들의 집단 무의식에 있다. 다른 건 차치하고 우리 사회에서 천만 이상의 대중이 한 영화를 보았다면, 그 영화를 구성하는 정체성이 곧 우리의 정체성이며, 무의식과 욕망을 구성하는 중요한 일부라는 것이다. 천만 클럽 영화는 한 시대의 욕망과 사회문화적 정서를 반영한다. 그리하여 대중적 성공을 이룬 영화는 영화와 사회, 영화와 대중 심리의 관계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이런 맥락에서 한 시대나 사회의 정체성, 대중들의 무의식과 정서적 풍경을 살필 때 주목해야 할 작품은 골치 아픈 작가주의 영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보다는 대중의 무의식을 반영하고 욕망에 영합하는 흥행작이 맞춤이다. 이런 문제의식은 세속적 일상인들의 삶을 역사의 무대에 소환한 아날학파의 입장을 상기시켜준다. 이들은 대중의 감정을 생생하게 파악하기를 원한다면 대단한 일류 사상가를 참조하기보다 이삼류 작가나 작품을 참조하는 게 훨씬 더 낫다고 충고한다.

통속은 세상과 통한다. 이삼류 통속 작가나 작품은 대개 평범함과 조잡성으로 인해 예술적 성취나 심미적 수준이 낮은 것으로 평가되곤 한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사실은, 대신에 세속적 삶을 살아가는 일반 대중들의 현실적이며 공통된 감정에 매우 근접해 있다는 점이다. 이들 작품은 미적으로나 지적으로 고상한 체하지 않고 본능적으로, 관능적으로, 알몸의 감각으로 세상과 소통한다. 따라서 대중들의 솔직하고 생생한 현실적 정체성과 보편적 무의식과 결핍 억압된 욕망을 파악하는 데 유효한 지점을 제공해준다. 요컨대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당대 대중들의 욕망과 무의식을 반영하며, 역사적 상처와 사회 심리적 징후를 내포한다. 가령 '변호인', '명량', '암살', '베테랑' 등은 대의명분을 앞세운 주인공이 자신을 희생하는 이야기다. 비슷한 시기에 천만 클럽에 입성한 이들 작품의 주인공은 한결같이 대의명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 '서울의 봄' 역시 이를 연속한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에 대한 공통 감정과 매혹은 역설적으로 이 시대의 퇴행과 폐색을 담고 있다. 선악이 뚜렷이 대립하는 구도에서 사적 욕망을 초개처럼 여기고 공적 대의를 위해 투쟁하는 영웅 서사에서 우리는 공정과 상식, 정의와 민주, 법치와 공적 가치를 무참히 파괴하는 악한들에게 현실에서 표출해야 할 분노를 스크린을 통해 대리 투사 해소한다.

내가 만난 '서울의 봄' 관객들 반응은 대체로 분노의 감정을 느꼈다는 것이다. 영화의 서사는 권력욕에 사로잡힌 신군부 하나회 전두광 일당, 이에 저항 대립하는 군부 내의 충돌을 벗어나지 않는다. '봄'으로 상징되는 민주화를 바라는 주체인 시민들은 어디에도 없다. 행주대교를 단신으로 막아서고 겹겹의 바리케이트를 넘는 이태신의 확정된 실패의 저항과 광적이고 야비하기 그지없는 권력욕 사이의 충돌 비교만 있을 뿐이다. 새 세상에 대한 유토피아적 전망, 올바름에 대한 상식과 정의가 무참히 훼손되는 불의와 폭력 앞에 관객들은 분노한다. 이게 공통감이라 할 수 있겠지만, 이 분노는 퇴행 폐색된 작금의 현실을 어두컴컴한 극장에서 대리 배설하는 행위가 아닌지 모르겠다.

김홍진 한남대 국어국문 창작학과 교수&문학평론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서구 중학교서 1학년 학생 3층서 추락… 병원 이송
  2. '아산페이'구매, 보유 한도 개편
  3. 충남대·공주대 통합, 최종 절차 본격화
  4. 전국 각지서 대전으로…‘빵박 2일’ 성료
  5. 정명석 성범죄 돕고 고소 막은 JMS 간부 4명… 최대 징역 3년 6개월 구형
  1. 세종에 '국립여성사박물관' 건립… 행정수도 기관 이전 '촉매제' 되나
  2. 대전시체육회 사무처장 인선에 또 ‘정치권 외풍’ 우려
  3. 채혈부터 블랙박스까지… 경찰 증거수집 절차 잇단 제동
  4. 대전교육공무직노조 "초등학교 교장 노조간부 폭행"…교장 "사실 아니다"
  5. 박용갑 의원, '공공기관 2차 이전·대전중수청 대전 복귀' 요청

헤드라인 뉴스


실종신고 매년 수천건인데… 충남경찰 전담인력 17명뿐

실종신고 매년 수천건인데… 충남경찰 전담인력 17명뿐

실종 신고가 매년 수천 건씩 접수되고 있지만 충남지역 15개 경찰서 중 실종 사건만을 전담하는 팀은 4곳, 인력은 17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경찰서는 일반 형사사건을 담당하는 형사팀이 실종 업무까지 병행하고 있어 초동대응의 전문성과 신속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손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5일 충남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지역 내 실종 신고 접수 건수는 3032건으로 2023년 3873건, 2024년 3148건보다 감소했다. 하지만 실종 신고 이후 발견되지 않아 사건이 종결되지 않은 미해제 건수는 2023년 1..

채혈부터 블랙박스까지… 경찰 증거수집 절차 잇단 제동
채혈부터 블랙박스까지… 경찰 증거수집 절차 잇단 제동

경찰이 범죄 혐의를 뒷받침할 핵심 증거를 확보하고도 수집 과정에서 적법절차를 지키지 않아 재판에서 사용하지 못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최근 충청권에서 반복된 사례들이 음주단속과 교통사고 처리, 분실물 확인 등 일선 경찰관들이 일상적으로 접하는 업무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단순한 개별 사건으로만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 최근 경찰의 이른바 '셀프 수사 종결' 논란까지 불거진 가운데 수사 권한과 책임이 커지는 만큼, 위법한 수사나 부실한 초동대응에 대해서는 명확한 책임을 묻는 제도적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

수시 직전 9월 모평 졸업생 등 11만명 몰려… ‘N수생·사탐런’ 주목
수시 직전 9월 모평 졸업생 등 11만명 몰려… ‘N수생·사탐런’ 주목

202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의 가늠자가 될 9월 모의평가에 졸업생 등 수험생이 11만명 넘게 지원하며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자연계 수험생이 과탐 대신 사탐을 선택하는 '사탐런'도 역대 최대 수준으로 확산했다. 대전권 대학 수시모집 원서접수가 9월 7일 시작되는 가운데 지역 수험생들은 모평 가채점 결과로 수능최저 충족 가능성과 정시 지원선을 함께 따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25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따르면 2027학년도 수능 9월 모평은 9월 2일 오전 8시 40분부터 전국 고등학교 2162곳과 지정학원 574곳에서..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여러분의 새 출발을 응원합니다’ ‘여러분의 새 출발을 응원합니다’

  • ‘안전한 우리동네 자율방재단이 지킨다’ ‘안전한 우리동네 자율방재단이 지킨다’

  • 202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원서 접수 시작 202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원서 접수 시작

  • 호흡기 질환자 급증…‘건강 유의하세요’ 호흡기 질환자 급증…‘건강 유의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