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인칼럼]재판지연과 AI

  • 오피니언
  • 전문인칼럼

[전문인칼럼]재판지연과 AI

김이지 법률사무소 이지 대표변호사

  • 승인 2024-02-25 12:20
  • 수정 2024-12-03 14:38
  • 신문게재 2024-02-26 18면
  • 박병주 기자박병주 기자
변호사김이지사진
김이지 법률사무소 이지 대표변호사
최근 법원에서 당면한 가장 큰 화두는 재판지연의 해결이다. 몇 년 사이에 재판지연 문제가 매우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의뢰인들의 소송을 대리하는 필자가 피부로 느끼기에 재판지연 문제는 작년 연말께 정말로 피크에 도달했던 것 같다. 해도 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고 의뢰인을 대신해 법원에 분개하곤 했다. 해가 바뀐 지금 약간의 새로운 기운은 느껴지고 있지만, 워낙 적체가 심각해서인지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다. 여전히 의뢰인들은 '왜 이렇게 오래 걸리냐, 언제 재판이 끝나냐'라고 힘들어하고, 법원의 문제를 해결할 힘이 없는 변호사는 그저 의뢰인에게 '연락 드리기 전에는 그저 잊고 계시라'는 말 밖에는 할 수 없다.

이처럼 과거보다 재판지연이 심각해진 까닭은, 전과 달리 판사들이 열심히 일할 의욕을 꺾는 것으로 여겨졌던 과거 몇 년간의 법원 인사제도나 구성원들이 사명감이나 직업의식보다는 워라밸을 중시하는 인식 변화 등에도 기인하겠으나, 근본적 원인은 사회적인 변화에 법원이 따라가지 못해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보량은 폭증하고 개인이 수집해 제출하는 자료도 예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또 소송 건수 자체가 늘어나고 있다. 대법원의 통계에 따르면, 전국의 연간 소송 건수는 600만 건이 훨씬 넘는다. 그런데 판사는 고작 3000명 정도이다. 재판을 위한 서면과 기록의 방대한 양만 생각해봐도, 판사 3000명이 연간 600만 건을 감당하는 것은 점차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대법원은 판사 증원을 위한 법 개정과 예산 필요성을 부르짖지만, 법률안 제출권이 없는 대법원이 할 수 있는 수단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단독판사가 관할하는 범위를 늘려 사실상 재판부를 늘리는 효과를 노린다든지 여러 방안을 채택하고 있지만 언발에 오줌 누기라고 생각된다.

재판업무를 돕는 AI의 도입은 이제 정말로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필자는 ChatGPT를 생성형 AI 언어모델이 나오면서부터 변호사의 업무에 어떻게 AI가 도움이 될지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변호사 업무보다는 법원의 재판업무에 AI의 활용이 더욱 용이하고 적합하다고 본다. 의뢰인이 제공하는 날것의 데이터 중 무의미한 것과 유의미한 것을 가려내고 또 미지의 데이터를 탐색하고 새로운 형태로 가공해내는 작업 등 논리뿐만 아니라 비약적인 창조성까지 필요한 변호사의 작업에 비해, 재판 업무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상당히 기계적인 면도 있기 때문이다. 판사는 그냥 딱 보고 마음대로 결론 내리고 판결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판사의 자의적 판단을 막기 위해 결론에 도달하기까지는 연역법, 귀납법 등 논리를 사용하고 있는바, 예를 들어 민사판결의 구성은 '어떠한 법률요건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이에 해당하는 어떤 사실들이 인정되어야 하는가'라는 요건사실론에 기초를 두고 있다. 따라서 AI가 대활약할 수 있는 대표적인 분야가 아닌가 한다.



그런데 여기에 가장 큰 걸림돌은 판결문 공개 문제다. 헌법 제109조가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라고 재판 공개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지만, 사실 판결문은 전면적으로 공개되지 않는다. 비실명화를 거친 일부 사건들만 신청 시 열람이 가능할 뿐이다. DB로 활용하기가 지난하다. 대법원은 판결문 공개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으나, 비실명화에 드는 비용의 예산문제 등을 들어 소극적이다. 아니, 그러다가 언제 법률 AI에 필요한 DB를 만들려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 미국 기업들은 이미 작년에 상당수 법률 AI 플랫폼을 상용서비스하기 시작했다. 법조계의 디지털 전도사이고 얼마 전 정년 퇴임하신 어느 부장판사님의 "지금은 미국 리걸테크 서비스와 겨룰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쓰나미를 맞기 전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라는 말이 나태한 내 마음에도 경종을 울린다./김이지 법률사무소 이지 대표변호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시가 총액 1위 알테오젠' 생산기지 어디로?… 대전시 촉각
  2. '행정수도 개헌' 이재명 정부 제1국정과제에 포함
  3. "국내 최초·최대 친환경 수산단지 만든다"… 충남도, 당진시 발전 약속
  4. 이 대통령, 세종시 '복숭아 농가' 방문...청년 농업 미래 조망
  5. "착하고 성실한 학생이었는데"…고 이재석 경사 대전대 동문·교수 추모 행렬
  1. [대입+]] 2026 수시 충청권 의대 지원자 46% 감소… 역대 최저치
  2. 박재형 세종충남대병원장 취임 "더 큰 도약"
  3. 일본 찾은 김진동 세종상의회장… 한-일 경제계 협력의지 다져
  4. 밝은누리안과병원 이성준 원장, 유럽 백내장굴절수술학회서 임상 연구 발표
  5. 대전 학교폭력 4년 연속 늘어… 2025년 1차 실태조사 결과 발표

헤드라인 뉴스


제4인뱅 인가 무산에 충청 지방은행 설립 `꿈` 뭉개져

제4인뱅 인가 무산에 충청 지방은행 설립 '꿈' 뭉개져

충청권의 오랜 숙원인 지방은행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한국소호은행(KSB)이 '제4인터넷은행' 인가를 받지 못하면서 충청권 기반 금융 생태계 조성에 기대를 품었던 지역민들의 박탈감을 높였다. 금융위원회는 17일 정례회의를 열고 소소뱅크, 소호은행, 포도뱅크, AMZ뱅크 등 4곳의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를 불허했다. 제4인터넷은행으로 유력하게 거론된 한국소호은행(KSB)은 대전시와 협약을 맺고 대전에 본사를 두고, 지역 특화 사업 발굴 및 정책자금 연계를 통해 지역 금융 정착을 도울 계획이었지만, 결국 정부 인가를 받지 못..

서울대 10개 만들기·탑티어 교수 정년 예외…교육부 새 국정과제 본격 추진
서울대 10개 만들기·탑티어 교수 정년 예외…교육부 새 국정과제 본격 추진

새 정부의 서울대 10개 만들기, RISE 재구조화, AI 인공지능 활용 등 교육 분야 주요 국정과제가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학문별 대가로 선정된 교수에 대한 정년 제한을 풀고, 최고 수준의 연구비를 지원하는 것은 물론 대학생 학자금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지원 대상을 확대한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교육부는 6대 국정과제를 위한 25개 실천과제(공동주관 1개 국정과제, 3개 실천과제 포함)를 최종 확정했다고 17일 밝혔다. 우선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실현해 거점국립대에 대한 전략적 투자와 체계적 육성에 나선다. 학생 1인당 교육비를..

해수부 부산 이전… `정부세종청사` 공백 해소 대안은
해수부 부산 이전… '정부세종청사' 공백 해소 대안은

이재명 새 정부가 오는 12월 30일 해양수산부의 부산 청사 개청식을 예고하면서, 정부세종청사 공백 해소를 위한 동반 플랜 마련을 요구받고 있다. 수년 간 인구 정체와 지역 경제 침체의 늪에 빠진 세종시에 전환점을 가져오고, 정부부처 업무 효율화와 국가 정책 컨트롤타워 기능 강화를 위한 후속 대책이 중요해졌다. 해수부의 부산 이전에 따른 산술적 대응은 당장 성평등가족부(280여 명)와 법무부(787명)의 세종시 이전으로 가능할 것으로 분석된다. 단순 셈법으로 빠져 나가는 공직자를 비슷한 규모로 채워주는 방법이다. 지난 2월 민주당..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숭고한 희생 잊지 않겠습니다’ ‘숭고한 희생 잊지 않겠습니다’

  • 대한민국 대표 軍문화축제 하루 앞으로 대한민국 대표 軍문화축제 하루 앞으로

  • ‘청춘은 바로 지금’…경로당 프로그램 발표대회 성료 ‘청춘은 바로 지금’…경로당 프로그램 발표대회 성료

  • 새마을문고 사랑의 책 나눔…‘나눔의 의미 배워요’ 새마을문고 사랑의 책 나눔…‘나눔의 의미 배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