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공직자는 궁신접수 불벌기장 겸손의 자세로

  • 오피니언
  • 사외칼럼

[기고]공직자는 궁신접수 불벌기장 겸손의 자세로

김정환 한국영상대 교수·전 세종경찰서장

  • 승인 2024-03-18 17:53
  • 신문게재 2024-03-18 18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김정환 서장
김정환 한국영상대 교수
궁신접수 불벌기장(躬身接水 不伐己長)이라는 명언이 있지요. 궁신접수(躬身接水)란 '제갈량의 처세학'에 나오는 말로 아무리 화려한 찻잔이라도 반드시 주전자 밑에 있어야 하고 옹달샘 물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는 마실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또 불벌기장(不伐己長)은 '북제서'에 나오는 이야기로 익은 벼는 숙이고 물이 찬 병은 소리가 나지 않는 겸손의 미덕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삼국지의 주인공은 뭐라 해도 자신을 항상 낮추면서 상대에게는 존중·배려를 실천한 제갈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그는 공정과 상식의 리더십으로 유비를 도와 위의 '조조', 오의 '손권'과 함께 천하 삼분지계를 완성했지요.

제갈량은 유비에게 삼고초려라는 대우를 받고 세상에 나왔지만 관우와 장비의 위세에 늘 굽히면서 자신이 직접 기획하고 지휘한 전투에서 패배하면 스스로 자리를 내려놓거나 '읍참마속'을 하는 등 스스로 낮추고 성찰하는 자세로 공직을 수행합니다. 유비가 조조의 10만 대군에 쫒겨 달아날 때 수많은 백성이 유비를 따라오자 이를 버려야 한다는 제갈량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의 권고에도 '아무리 어려워도 사람이 먼저다'라는 유비의 애민사상에 감복해서 끝까지 유비 곁을 지킨 사람이기도 합니다. 유비가 임종 때 "태자 유선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승상 당신이 황제가 되어 나라를 다스려달라"라는 진정성이 약간 의심되는 유언에도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나약한 2대 황제 유선을 지키며 무한 충성을 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제갈량이 많은 사람으로부터 충신으로 기억되는 이유는 병법, 유학, 주역, 천기 등 모든 면에서 출중한 것 외에 자신보다 부족한 상대에게까지도 항상 낮은 자세로 인간다움을 잃지 않은 겸손, 겸양의 자세로 처세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겸손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일화가 있습니다. 고을을 잘 다스릴 수 있는 비법을 얻기 위해 무명선사를 찾은 약관의 '맹사성'은 선사가 따라주는 녹차 물이 넘쳐서 방바닥 적시는 것은 보면서도 자신의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을 보지 못한 게 부끄러워 황급히 나가다 문틀에 머리를 박은 다음 크게 깨달아서 청백리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평생 갚지 못한 젊은 아낙에게 빌린 뱃삯 5전의 빚이 날마다 쌓여 가기 때문에 저금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면서 배려와 겸손의 미덕을 몸소 실천하셨던 '고암'스님도 있습니다.

험한 이 세상을 지혜롭고 슬기롭게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일단 겸손하고 볼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나보다 더 잘나고 더 똑똑한 사람이 너무도 많이 있고 언제든지 그 강호의 고수를 만나는 날이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맛있는 모이를 두고 주도권 쟁탈전을 벌이다 승리한 닭이 담장에 올라가 승리의 '꼬끼오'를 우렁차게 외치는 순간, 하늘을 날던 독수리가 순식간에 낚아채 가버리는 것처럼 '저 사람 저렇게 질주하다가는 위험하지?'라면서 많은 사람이 걱정하는데도 정작 본인은 제 잘난 맛에 천방지축 날뛰다가 결국 어려운 지경에 빠지고 마는 사례를 우리는 종종 보고 있습니다.

궁신접수 불벌기장(躬身接水 不伐己長), 바야흐로 우리 국민들이 주권자임을 스스로 확인하는 소중한 시간인 투표일이 다가옵니다. 선거철만 되면 출전한 모든 주자는 "일단 저를 뽑아만 주신다면 국민의 행복한 삶을 위해 이 한 몸 다 바치겠다"는 공약과 함께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허리가 땅에 닿도록 인사를 하고 온라인상에서는 눈이 휘휘 돌아갈 정도로 수많은 약속의 메시지를 올립니다.

그런데 당선된 후 유심히 살펴 보면 그 한 몸 다 바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선거운동 기간 국민에게 한 말과 행동, 약속을 단 하나라도 잊지말고 제대로 지키는 것만이 국민에게 겸손(謙遜)을 이행하는 진정한 공직자라 생각하면서 늘 자신을 낮추면서 난세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던 제갈량의 마음을 헤아려 봅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KINS 기밀 유출 있었나… 보안문서 수만 건 다운로드 정황에 수사 의뢰
  2. 이진숙 교육장관 후보자 첫 출근 "서울대 10개 만들기, 사립대·지방대와 동반성장"
  3. '개원 53년' 조강희 충남대병원장 "암 중심의 현대화 병원 준비할 것"
  4. [춘하추동]새로운 시작을 향해, 반전하는 생활 습관
  5. 수도권 뒤덮은 러브버그…충청권도 확산될까?
  1. 법원, '초등생 살인' 명재완 정신감정 신청 인용…"신중한 심리 필요"
  2. 3대 특검에 검사 줄줄이 파견 지역 민생사건 '적체'…대전·천안검찰 4명 공백
  3. 33도 폭염에 논산서 60대 길 걷다 쓰러져…연일 온열질환 '주의'
  4. aT, 여름철 배추 수급 안정 위해 총력 대응
  5. 세종시 이응패스 가입률 주춤...'1만 패스' 나오나

헤드라인 뉴스


야권에서도 비충청권서도… 해수부 부산이전 반대 확산

야권에서도 비충청권서도… 해수부 부산이전 반대 확산

이재명 정부가 강공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보수야권을 중심으로 원심력이 커지고 있다. 그동안 충청권에서만 반대 여론이 들끓었지만, 행정수도 완성 역행과 공론화 과정 없는 일방통행식 추진되는 해수부 이전에 대해 비(非) 충청권에서도 불가론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원내 2당인 국민의힘이 이 같은 이유로 전재수 장관 후보자 청문회와 정기국회 대정부질문, 국정감사 등 향후 정치 일정에서 해수부 이전에 제동을 걸고 나설 경우 이번 논란이 중대 변곡점을 맞을 전망이다. 전북 익산 출신 국민의힘 조배숙..

李정부 민생쿠폰 전액 국비로… 충청권 재정숨통
李정부 민생쿠폰 전액 국비로… 충청권 재정숨통

이재명 정부가 민생 회복을 위해 지급키로 한 소비쿠폰이 전액 국비로 지원된다. 이로써 충청권 시도의 지방비 매칭 부담이 사라지면서 행정당국의 열악한 재정 여건이 다소 숨통을 틀 것으로 기대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1일 전체회의를 열어 13조2000억원 규모의 '민생회복 소비쿠폰' 지급 관련 추가경정예산안을 의결했다. 행안위는 이날 2조9143억550만원을 증액한 2025년도 행정안전부 추경안을 처리했다. 행안위는 소비쿠폰 발행 예산에서 중앙정부가 10조3000억원, 지방정부가 2조9000억원을 부담하도록 한 정부 원안에서 지방정..

대전·충남기업 33곳 `초격차 스타트업 1000+` 뽑혔다
대전·충남기업 33곳 '초격차 스타트업 1000+' 뽑혔다

대전과 충남의 스타트업들이 정부의 '초격차 스타트업 1000+ 프로젝트'에 대거 선정되며, 딥테크 기술창업 거점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1일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하는 '2025년 초격차 스타트업 1000+ 프로젝트'에 전국 197개 기업 중 대전·충남에선 33개 기업이 이름을 올렸다. 이는 전체의 16.8%에 달하는 수치로, 6곳 중 1곳이 대전·충남에서 배출된 셈이다. 특히 대전지역에서는 27개 기업이 선정되며, 서울·경기에 이어 비수도권 중 최다를 기록했다. 대전은 2023년 해당 프로젝트 시행 이래 누적 선정 기업 수 기준으로..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수영하며 야구본다’…한화 인피니티풀 첫 선 ‘수영하며 야구본다’…한화 인피니티풀 첫 선

  • 시구하는 김동일 보령시장 시구하는 김동일 보령시장

  • 故 채수근 상병 묘역 찾은 이명현 특검팀, 진실규명 의지 피력 故 채수근 상병 묘역 찾은 이명현 특검팀, 진실규명 의지 피력

  • 류현진, 오상욱, 꿈씨패밀리 ‘대전 얼굴’ 됐다 류현진, 오상욱, 꿈씨패밀리 ‘대전 얼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