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식탐] 찌개 국물만 짠 게 아니다

  • 오피니언
  • 우난순의 식탐

[우난순의 식탐] 찌개 국물만 짠 게 아니다

  • 승인 2024-03-27 09:37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KakaoTalk_20240326_173314604
풍미식당 김치찌개
대전 중구 예술가의 집 근처에 김치찌개로 유명한 식당이 있다. 김치찌개는 밥집의 기본 메뉴다. 흔하디 흔한 김치찌개. 하지만 내가 먹어본 김치찌개 중 이곳이 단연 으뜸이다. 나름 분석하자면 육수 때문인 것 같다. TV 프로 '생활의 달인'의 식당들은 하나같이 육수가 남다르다. 달인들은 짐작도 못하는 재료들을 육수로 사용한다. 심지어 찹쌀떡도 여러 가지 재료를 넣고 푹 끓인 육수를 쓰더란 말이다. 물론 시중엔 '사짜'들도 널렸다. 종종 사먹던 길거리 떡볶이집이 있는데 어묵국물에 말린 새우와 큼지막하게 썬 무가 둥둥 떠 있어 믿음이 갔다. 주인 아주머니도 강조했다. "우린 조미료 절대 안넣어요." 그런데 어느날 지나다가 못볼 걸 보고야 말았다. 손님이 없는 틈을 타 갈색 조미료를 수저로 푹푹 퍼넣는 게 아닌가. 그 뒤론 여엉.

3월 초 후배와 김치찌개를 먹었다. 후배한테 수제 돈가스, 김치찌개, 황태탕 중 먹고 싶은 걸 고르랬더니 김치찌개를 찍었다. 어라? 돈가스를 예상했는데. 나의 선입견이 보기좋게 뭉개졌다. 회사를 그만둔 후배는 얼굴이 환했다. 얘가 이렇게 하얬나 생각할 정도로. 역시 식당은 손님들로 바글바글했다. 찌개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김으로 식당 안이 뿌옜다. 김치찌개를 주문하면서 라면사리도 추가했다. 큼지막한 고깃덩이와 김치가 수북했다. 가위로 고기와 김치를 숭덩숭덩 자르며 침을 삼켰다. 한참 끓인 후 후배 접시에 듬뿍 담아 건넸다. 그간의 일상을 묻자 아침에 눈을 뜨면 기분이 좋고 몸이 가볍단다. 지난 시간의 힘들었던 과정을 말할 땐 눈에 이슬이 비쳤다. 사실 사회생활 하면서 힘들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일은 둘째고 사람들과 부대끼며 생기는 갈등이 가장 큰 요인이다.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이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옛날 옛적 한 아이는 학교 가기를 죽기보다 싫어했지. 학교는 그 아이에겐 감옥이었어. 어떡하면 학교에 안 갈 수 있을까 궁리만 하면서 다녔어. 학교는 이거 하지 마라, 저거 하지 마라 왜그렇게 하지 말라는 게 많은지. 하라는 건 공부밖에 없었어. 선생님들 손엔 항상 몽둥이가 들려 있었지. 1980년 중2 때였어. 어느날 수업 끝나는 종이 울리자마자 아이는 친구가 준 껌 반쪽을 씹었는데 그걸 선생이 보았어. "우난순! 정화위원회에 올라가." 아이는 얼른 껌을 뱉었어. 사회정화위원회. 마석도의 강적 주성철보다 더 악랄하고 비열한 전두환이 사회질서 기강 차원에서 만들었어. 껌좀 씹었다고 선생이 겁박하다니. 전두환이 지은 죄가 있어서 불안한거야. 그래서 공포분위기를 조성한거지. 그땐 교화시킨다는 명목으로 별의별 이유를 들이대 삼청교육대로 끌어가던 시대였으니까.

각설하고. 기성세대와 달리 MZ세대는 평생직장의 개념이 없다. 거창한 성공보다는 자기만의 가치있는 삶을 추구한다. 허나 한국의 직장문화는 집단주의적 성향이 강한 탓에 MZ세대로선 경직된 분위기를 힘들어 한다. 기성세대는 이런 세대가 자기중심적이라고 한탄한다. 동질성과 위계가 강조되는 한국의 조직문화는 다름을 인정하는데 인색하다. MZ세대에게 일사불란한 카드섹션은 이젠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됐다. 우리는 코에 땀이 배도록 맛나게 먹었다. 꼬들또들한 라면사리도 후루룩 후루룩 건져먹고 얼큰하고 뜨거운 국물을 호호 불면서 떠먹었다. 밥에 국물을 넣어 썩썩 비벼먹는 후배가 털털해 보였다. 나와 후배는 밥공기를 깨끗이 비웠다. 후배가 말했다. "회사를 그만두기까지 고민이 많았어요. 당장 경제적인 문제 같은 거요. 그런데 막상 닥치니까 어떻게든 살아지더라고요." 시인 함민복은 '눈물은 왜 짠가'라고 물었다. 인생은 달콤한 눈물도 맛보지만 찌개국물처럼 맵고 짭조름한 눈물을 더 흘린다. 성장통을 겪는 후배의 건투를 빈다. <지방부장>
우난순 수정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김해시, '김해맛집' 82곳 지정 확대...지역 외식산업 경쟁력 강화
  2. 인천 남동구 장승백이 전통시장 새단장 본격화
  3. 환자 목부위 침 시술 한의사, 환자 척수손상 금고형 선고
  4. 대전서 교통사고로 올해 54명 사망…전년대비 2배 증가 대책 추진
  5. 인문정신 속의 정치와 리더십
  1. 고등학생 70% "고교학점제 선택에 학원·컨설팅 필요"… 미이수학생 낙인 인식도
  2. 대학 라이즈 사업 초광역 개편 가능성에 지역대학 기대·우려 공존
  3. 대전·충남 우수 법관 13명 공통점은? '경청·존중·공정' 키워드 3개
  4. [홍석환의 3분 경영] 가을 비
  5. 충남도의회, 인재개발원·충남도립대 행정사무감사 "시대 변화 따른 공무원 교육·대학 운영 정상화" 촉구

헤드라인 뉴스


지난해 충청권 수험생 37명 ‘학폭 이력’에 대입 불합격

지난해 충청권 수험생 37명 ‘학폭 이력’에 대입 불합격

지난해 충청권 10개 대학이 수시 전형에서 학교폭력 이력을 평가에 반영해 37명이 불합격한 것으로 조사 됐다. 2026학년도 대입 전형이 이뤄지는 올해 전국 대학이 학폭 사항을 필수적으로 확인해 탈락 사례는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 된다. 18일 국회 교육위원회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과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4년제 국·공립, 사립대학 61곳이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내 학폭 처분 이력을 2025학년도 대입 전형 평가에 반영했다. 수시모집에서는 370명 중 272명(73.5%), 정시모집에서는 27명 중 26명(96.3%)..

대전시 국방·우주반도체 공급망 중심축 만든다
대전시 국방·우주반도체 공급망 중심축 만든다

K-방산 산업의 미래 경쟁력과 국가 안보를 위한 국방·우주반도체 개발 및 제조 생태계 구축에 대전시와 산학연이 뭉쳤다. 대전시와 KAIST,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한화시스템, 대전테크노파크는 18일 시청에서 '국방·우주반도체 국내 공급망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날 협약식에는 이장우 대전시장, 이광형 KAIST 총장, 방승찬 ETRI 원장, 손재일 한화시스템㈜ 대표, 김우연 대전테크노파크 원장이 참석했다. 이번 협약은 국가 안보에 필수적인 국방·우주반도체 개발 및 제조 생태계 구축을 목표로 한다. 협약 기관들은..

2025 청양군수배 풋살 최강전 성황리 마무리… `풋살 기량 뽐냈다`
2025 청양군수배 풋살 최강전 성황리 마무리… '풋살 기량 뽐냈다'

'2025 청양군수배 풋살 최강전'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11월 15~16일 이틀간 충남 청양공설운동장에는 선수들을 향한 환호와 응원으로 떠들썩했고, 전국에서 모인 풋살 동호인들은 신선한 가을 하늘 아래 그동안 갈고닦은 기량을 맘껏 뽐냈다. 중도일보와 청양군체육회가 공동으로 주최·주관하고, 청양군과 청양군의회가 후원한 이번 대회엔 대전, 세종, 충남, 충북 등 충청권 4개 시도를 비롯해 서울, 경기, 대구, 경북, 전북 등 전국 각지에서 선수들과 가족, 지인, 연인 등 2500여 명이 참여해 대회 분위기를 뜨겁게 달궜다. 이날..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찰칵’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찰칵’

  • 추위와 독감 환자 급증에 다시 등장한 마스크 추위와 독감 환자 급증에 다시 등장한 마스크

  • 계절의 색 뽐내는 도심 계절의 색 뽐내는 도심

  • 교통사망사고 제로 대전 선포식 교통사망사고 제로 대전 선포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