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 칼럼] 5 CD 체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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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人 칼럼] 5 CD 체인저

조부연 도자디자이너

  • 승인 2024-11-13 17:02
  • 신문게재 2024-11-14 19면
  • 김지윤 기자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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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부연 도자디자이너.
두 달 전에 싸구려 CD플레이어가 고장 났다. 여러 장의 CD를 넣고 재생할 수 있는 체인저인데 CD를 인식하지 못한다. 지난 추운 겨울, 사무실 안에 있던 화분이 얼어 죽을 만큼 추웠던 어느 날부터 시작되었다. 난방기로 공기가 덮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작동을 했었다. 그렇게 겨울을 버텼던 CD플레이어가 올해 여름 무더위를 견디지 못했다. 전원을 넣으면 조그만 디지털 화면에 'NO CD'라고 뜬다. 수리를 맡겨야 하지만 게으름 탓에 미루고 있다.

대단한 음악 애호가는 아니지만 꽤 음악을 많이 들었다. 취향 저격인 음악을 찾으면 꽂히는 스타일이다. 열서너 살 때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제6번 '비창'을 카세트테이프가 늘어질 만큼 많이 듣기도 했다. 4악장, 연주 시간이 50분 정도인 교향곡을 수백 번 들었다. 아마도 일 년 동안 비창만 들었던 것 같다. 늘어난 카세트테이프를 버리고 같은 것을 몇 번 더 사서 들었다. 그 이후로 전곡을 들은 적은 없다. 하지만 지금도 비창을 떠올리면 각 장의 도입부 선율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어찌 된 일인지 비창 이후로 수년 동안 음악에 대한 기억이 없다. 스무 살이 되어 비틀즈에게 빠지면서 다시 시작되었다. 버릇을 남 주지 못해 비틀즈의 베스트 앨범을 또 일 년 동안 늘어지게 들었다. 또 다음 해는 엘비스 프레슬리에게 빠졌다. 그렇게 카세트테이프의 시대가 끝났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공방을 차렸을 때다. 누이로부터 일체형 오디오를 선물 받았다. 그때부터 이것저것 CD를 모으기 시작했다. 없어진 지 오래지만 옛 중구청 앞의 레코드 가게인 '사운드 오브 뮤직'을 제집처럼 들락거렸다. 수백 장이 넘는 CD를 꽤 자랑스러워했다.

카세트테이프건 CD건 수명이 있다. 반영구적이라지만 어느 순간 쓸 수 없게 된다. 얼마나 잘 관리해 주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생각보다 그리 수명이 길지 않다. 늘어난 카세트테이프를 기계가 씹어버리면 가까스로 꺼내 볼펜으로 돌돌 말아 어렵사리 다시 듣는다. 그것도 몇 번 반복되면 카세프테이프나 플레이어 둘 중의 하나는 반드시 절단 난다. CD는 말할 것도 없다. 조심한다고 해도 스크래치가 조금씩 조금씩 많아지고 널뛰기하듯 노래 중간에 다음 노래도 튕겨간다. 늘어난 카세트테이프나 튕기는 CD는 더 이상 듣지 못한다.

언제부터인가 이런 낡은 것을 버리게 되었다. 굵은 네임펜으로 X 표시하고 쓰레기통에 처박는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것인데 너무 쉽게 포기한다. 가끔은 쓰레기로 버려진 게 불쌍타 싶을 때도 있다. 그런데 더 불쌍한 게 있다. 멀쩡한 CD, 한두 번 재생되고 취향에 맞지 않는 것, 그래서 장식으로 꽂혀있던 것을 이제는 가차 없이 버린다. 수십 년 동안 한 번도 손에 가지 않던 것을 왜 그렇게 끌어안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언제가는 한 번쯤 듣겠지 하는 마음이었을 게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선택받지 못하고 버려졌다. 그게 너무 불쌍했다. 지금 고장 난 CD플레이어 곁에는 스무 장 남짓한 앨범만이 남아있다. 이놈들도 언젠가는 쓰레기통 행이 될게 분명타.

책도 마찬가지다. 소설을 많이 읽는다. 집과 사무실 책장이 언제부터 인가 꽂을 곳이 없어 세로로 세워놓은 책과 책꽂이의 칸 사이 빈틈에 가로로 책을 꽂기 시작하더니 책상이며 바닥에 쌓이기 시작했다. 시청 가까이 알라딘 중고 서점에 소설책을 모두 팔았다. 그나마 인기 소설은 몇 푼 되지 않지만 팔 수나 있다. 처음 살 때 비싼 값을 지불했던 전공 서적은 사주지도 않는다. 아파트 재활용 수거일에 택배 포장 박스와 함께 묶어 버린다.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탔다. 아뿔싸. 헐값에 팔아 치운 책들 속에 '작별하지 않는다'가 분명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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