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주연에서 주인공으로

  • 오피니언
  • 교단만필

[교단만필] 주연에서 주인공으로

소원 신탄진중학교 교사

  • 승인 2024-11-28 16:28
  • 신문게재 2024-11-29 18면
  • 임효인 기자임효인 기자
clip20241128085651
소원 신탄진중학교 교사
내가 교직 생활을 시작한 해에 래퍼 비와이(BewhY)가 정규 2집 앨범 'The Movie Star'를 발매했다. 발매된 지 몇 년이 흘렀어도 수시로 정주행하게 되는 이 앨범은, 누군가를 연기하는 '주연'이 아니라 내 모습 자체로 '주인공'인 삶을 살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아티스트가 음악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고민하는 것처럼 이제는 나도 교단에서 나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때가 된 것 같다. 그래서 올해는 특히 이 앨범을 소개하는 문구에 주목하고 있다.

'주연에서 주인공으로. 나는 영화가 되었다.'

배우들은 영화 속에서 누군가의 모습을 연기하는 동안 자기 본래 모습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연기가 완벽할수록 관객의 찬사를 받으니, 배우의 삶을 내려놓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배우가 아닌 '주인공'으로서 살아갈 때 그의 삶 자체는 빛나는 영화가 된다. 그렇다면 교단에서 나는 '주인공'으로 살고 있는 것일까?

신탄진중학교에서 근무한 지 어느덧 3년이 되었다. 이 학교에 갓 부임했을 때는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겠다는, 오래전부터 꿈꿔온 교사의 모습을 다시금 떠올리며 다소 치기 어린 모습으로 교직 생활을 했다. 그러나 돌아보면 교육에 대한 깊이 있는 철학보다는 가르치는 기술에 주목했고, 어떻게 하면 내 수업을 좋은 의미로 포장할지 고민하던 날들이었다. 어쩌면 나는 교육 현장의 '주연'으로서 훌륭한 교사의 단면을 흉내 낸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무척 부끄러워졌다. 그래서인지 올해는 수업하기를 희망했던 학년, 희망했던 업무에 배정됐음에도 학년 초부터 슬럼프에 빠지고 말았다.

눈에 띄는 성과는 없지만 수업에 대한 고민을 꾸준히 이어왔고, 최근 몇 주간 1학년 아이들과 수업 시간에 공정한 선거를 홍보하는 뮤직비디오 제작 활동을 했다. 아이들의 손을 거쳐 선곡과 개사, 촬영과 편집이 이뤄지는 동안 나는 아이들의 말과 행동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여러 상황에서 아이들이 어떤 선택과 판단을 하는지 유심히 관찰했다. 감사하게도, 모둠에서 역할이 크든 작든 상관없이 아이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했고 자기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작품을 만들어냈다.

이 활동의 특징은 모둠 구성원 모두가 화면에 모습을 드러내도록 규칙을 정해 두었다는 점이다. 규칙에 따라 아이들은 필연적으로 자기가 만든 작품의 배우가 되고, 배우들은 모둠에서 작성한 스토리보드에 따라 연기를 한다. 하지만 연기의 어색함을 견디지 못해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단순히 연기에 집중하지 못하는 문제라기보다, 아이들에게는 실제 자신의 삶이 배우로서의 삶보다 먼저였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화면 속 아이들의 모습은 부자연스럽게 보일지라도 오히려 그 모습 자체로 자연스럽다.

아이들이 만든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하기 위해 아이들의 삶 자체에 주목했다. 학급에서 만든 작품들을 각 반에서 상영하는 'VIP 시사회'를 열었더니 한 공간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감독이자 배우인 진귀한 현상이 일어났다. 상영 전 감독님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고, 여러 작품은 마치 어떤 영화제의 단편 영화를 상영하는 것처럼 차례대로 이어서 공개되었다. 이 시사회의 특징은 상영 후에 감독님들을 앞으로 모시고 진행하는 '관객과의 대화'다. 이 자리에서는 모두에게 '감독님', '배우님'의 호칭을 썼고, 아이들도 영화제 콘셉트에 몰입해 서로를 존중하며 소감과 질문을 나누었다. 배우로서 아이들은 출연 분량에 따라 주연과 조연이 나뉘었을지 몰라도 작품에서는 모두 '주인공'이었다. 게다가 화면 속에서 내가 아닌 누군가를 한껏 연기하기보다는 자기 그 자체를 보여주었으니, 아이들은 이미 '주인공'으로 살고 있는 셈이다.

어쩌면 일상에서도 배우로서 살아가고 있을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살도록 조명하는 것이 교사로서 나의 정체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주인공을 바라보는 애정 어린 시선은 누군가의 것도 아닌 오로지 나의 것이며, 시선에 담긴 진심은 배우가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주인공을 바라보는 나 역시 '주인공'이다.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조명하려면 교사인 내가 먼저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배우의 삶을 내려놓고 기꺼이 주인공으로 살겠다. 소원 신탄진중학교 교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세종시 '탄소중립 실천', 160개 경품은 덤… 24일 신청 마감
  2. 대전장애인IT협회, 제46회 장애인의 날 기념행사서 '발달장애인 드론날리기 대회' 성황
  3. [아침을 여는 명언 캘리] 2026년 4월24일 금요일
  4. 충청권 총경 승진 10명… 대전 3명·충남 4명, 세종 1명·충북 2명
  5. [현장에서 만난 사람]송재소 (사)퇴계학연구원 원장
  1. 대전 오월드 결국 전체 사육시설 중지명령… 당분간 재개장 어려울듯
  2. [교정, 사회를 다시 잇다] 김재술 대전교도소장 "과밀수용·의료처우 개선에 최선, 지역사회 관심을"
  3. 대전·충남 교원 10명 중 6명 "독감 걸려도 출근" 단기 대체인력 투입 쉽지 않아
  4. 세종금강로타리클럽, 일본 나라현 사쿠라이 로타리클럽과 교류 추진
  5. 따뜻한 손길로 피어난 봄, 함께 가꾼 희망의 화단조성

헤드라인 뉴스


대전오월드 전체 사육시설 중지명령… 당분간 재개장 어려울듯

대전오월드 전체 사육시설 중지명령… 당분간 재개장 어려울듯

늑대 탈출 사건이 발생한 대전 오월드 동물 사육시설 전체에 대해 금강유역환경청이 안전관리 조치명령을 내리고 완료때까지 운영중지를 명령했다. 과거 퓨마가 탈출했을 때는 해당 개체가 머물던 사육시설만 1개월 폐쇄 명령했던 것에서 이번에는 오월드 사육시설 전체에 대해 개선조치 완료 때까지 운영중지를 명하고 해제 시점을 정하지 않았다. 23일 기후에너지환경부 금강유역환경청에 따르면, 한국늑대 복원종인 '늑구'의 탈출사건이 발생한 오월드에 대해 4월 20일 사육시설 안전관리 조치명령을 내렸다.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동..

대전 오월드 결국 전체 사육시설 중지명령… 당분간 재개장 어려울듯
대전 오월드 결국 전체 사육시설 중지명령… 당분간 재개장 어려울듯

늑대 탈출 사건이 발생한 대전 오월드 동물 사육시설 전체에 대해 금강유역환경청이 안전관리 조치명령을 내리고 완료때까지 운영중지를 명령했다. 과거 퓨마가 탈출했을 때는 해당 개체가 머물던 사육시설만 1개월 폐쇄 명령했던 것에서 이번에는 오월드 사육시설 전체에 대해 개선조치 완료 때까지 운영중지를 명하고 해제 시점을 정하지 않았다. 23일 기후에너지환경부 금강유역환경청에 따르면, 한국늑대 복원종인 '늑구'의 탈출사건이 발생한 오월드에 대해 4월 20일 사육시설 안전관리 조치명령을 내렸다.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동..

5월 7일 `행정수도특별법` 공청회… 22년 한풀이 하나
5월 7일 '행정수도특별법' 공청회… 22년 한풀이 하나

2004년 신행정수도특별법 무산 이후 22년 간 깨지지 않은 위헌 판결의 덫은 이제 제거될 수 있을까. 수도권 과밀 해소와 국가균형성장이란 국가적 아젠다를 품은 신행정수도 건설은 매번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2018년 개헌안부터 2020년 행정수도특별법 발의 무산 과정을 포함한다. 이재명 정부 들어 맞이한 첫 지방선거 국면은 다를 것이란 의견이 많았다. 더불어민주당 3건, 조국혁신당 1건, 민주당·국민의힘 공동 1건까지 모두 5건의 행정수도특별법이 국토교통위원회에 상정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여·야 대표들도 별다른 이견 없이 '국회와..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4차 석유 최고가격제 동결…저렴한 주유소로 몰리는 차량들 4차 석유 최고가격제 동결…저렴한 주유소로 몰리는 차량들

  • 꽃밭에서 펼치는 투표참여 캠페인 꽃밭에서 펼치는 투표참여 캠페인

  • ‘장애·비장애 경계 허물고’ ‘장애·비장애 경계 허물고’

  • ‘에너지 절약 동참해주세요’ ‘에너지 절약 동참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