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현장검증의 추억 (2)

  • 오피니언
  • 프리즘

[프리즘] 현장검증의 추억 (2)

윤인섭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 승인 2025-03-18 10:02
  • 신문게재 2025-03-19 19면
  • 방원기 기자방원기 기자
윤인섭
윤인섭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곧이어 현장검증이 개시되었다. 검증현장에서 증인신문 등을 하는 경우 증인 등이 검증 시작 전에 현장에 미리 나오도록 점검함으로써 검증 현장에서의 생생한 증언 등을 들을 수 있도록 한다. 필자의 피고인 병은 자신이 혼자서 다슬기를 채취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었다. 다슬기는 손톱보다도 작아 다슬기 채취는 강바닥에서 하나 가득 퍼 올려서 자루에 쓸어 담는다. 몇 시간 작업하면 큰 마대 자루 하나 가득 다슬기가 담긴다. 그걸 짊어지고 간이 모터보트에 싣거나 보트를 끌고 다니며 강바닥에서 작업한다. 그 무게가 상당해 보였는데, 피고인 병은 이 모든 작업을 혼자서 다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피고인은 격투기선수처럼 체구가 장대하고 단단한 체형이어서 필자는 그게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하며 지켜보았다. 우리가 강간죄나 폭행죄 등의 사건에서도 피고인이나 피해자의 체구와 신장, 몸무게를 살피게 되는데 이러한 부분도 다 법관의 눈으로 살피는 것이니 넓게 보면 검증에 해당된다. 필자도 피고인의 건장한 체구를 잘 봐주시라고 강조하였다. 그런데 피고인이 작업을 시작하자마자 상당히 무리가 가는지 잘 이동하지 못하였다. 판사님이 웃으면서 한번마저 해보라고 하시니 피고인이 움직이기는 하였는데, 넘어질까 봐 위태위태하였다. 올림픽 역도경기를 보면 역기를 겨우 들기는 들었는데 성공 부자가 울리기 전 그 짧은 몇 초 동안 선수가 부들거리며 겨우 버티는 장면이 기억나실 것이다. 필자는 좀 지켜보다가 고개를 돌려 그냥 외면했다. 물안개가 자욱하고 아직은 새벽녘에 쌀쌀한 계절이었기에 피고인이 내뿜는 가쁜 숨이 허옇게 다 보이고 고요한 가운데 피고인의 부들거림이 다 전해졌다.

그런데 판사님은 왜 밤안개 자욱하게 낀 새벽녘에 현장검증을 실시하였을까.



판사님은 부임 첫날 새벽에 강둑에 불러서 미안하다며, 이 사건의 경우 강둑 건너편에서 특별사법경찰관인 단속반원들이 밤안개 사이로 피고인을 비롯한 무리가 불법채취작업 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면서, 이 사건 발생 일자와 시각, 그리고 밤안개에 이르기까지 사건 당시와 최대한 비슷한 환경에서 현장검증하기로 하고 어렵게 잡은 날이라서 어쩔 수 없었다고 설명해 주셨다. 판사님[재판정을 사건 현장으로 옮겨 개정한 것이니 판사님보다는 재판장님이라고 호칭하는 게 정확해 보임]의 진행으로 검사님이 의견을 제시하였는데, 검사님은 "방금 전 다 같이 보셨다시피, 단독 범행은 불가합니다" 정도로 정리하셨던 것 같다. 한편 검증 시에 현장에서 소송대리인이 검증대상에 관하여 진술할 필요가 있는데 주장할 내용이 많거나 정리하기 어려운 경우 주장요지서 등을 검증 시 제출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변호인 진술을 길게 한다고 유리한 상황이 아닌 것으로 보여서 필자는 짧고 임팩트 있게 "보시다시피 피고인은 체구가 장대하고 기운이 좋은 데다가 다슬기 채취를 장기간 해온지라 휴식시간을 적절히 가지면서 혼자서 충분히 작업 할 수 있다" 정도로 의견을 진술하였다. 그날 강 건너편에서 일단의 무리가 불빛을 비추면서 이쪽을 향해 말을 걸도록 했었는지는 좀 오래된 사건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아마도 "만약 저편에 단속반원들이 있었다면 단속반원들이 피고인들을 볼 수 있었는지, 피고인들은 단속반원들을 볼 수 있었는지"에 대해 다들 가정해보고 의견을 진술했던 것 같다. 그렇게 추억 많은 법무관 생활의 첫날이 시작되었다.

위 사건은 결국 피고인에게 유죄판결이 선고되었다. 피고인은 끝까지 억울하다고 주장하였고, 필자도 최대한 강변하였다. 그러나 판사님은 "지금이야 피고인이 다른 친구들에 대해 약간의 돈을 받고 의리를 지켜준다 생각할지 몰라도 그런 관계가 얼마나 지속할지 잘 생각해보라"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진실은 누구도 알 수 없다. 판사님은 경제범죄의 경우 엄벌을 하지 않으면 재범할 우려가 매우 크다며 생각보다 쎈 양형을 하였다.



위 사건은 개인적으로나 법리적으로나 여러 가지로 기억에 남는다. 앞으로 불필요한 소송절차가 줄어들고 판사가 충원되어 여건이 개선되면 현장검증이 꼭 필요한 사건에서 검증이 활성화되길 기대해본다. 윤인섭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홈플러스 문화점 결국 폐점... 1월 급여와 설 상여금도 밀린다
  2. 서산지청서 벌금 내부횡령 발생해 대전지검 조사 착수
  3. 행정통합 논의서 소외된 교육감 선출… 입법조사처 "교육자치 당초 취지 퇴색되지 않아야"
  4. 반의 반 토막난 연탄사용… 비싸진 연탄, 추워도 못 땐다
  5. [새해설계] 설동호 교육감 "남은 임기, 창의융합인재 키우는 정책 실행"
  1. [기고] 대전·충남 통합, 대전은 왜 불리한가-통합 교육감 선거, 헌법 원칙과 제도 설계의 딜레마
  2. [내방] 맹수석 전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장
  3. 세종 집무실·의사당 건립비 ‘5조원 육박’…예산안 확보는?
  4. [영상]대전 빼고 충청특별시? 말도 안 되는 것! 시민들에게 물어봐야
  5. ‘겨울철 화재 조심하세요’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통합 정부 청사진 나온다…권한 및 재정특례 주목

대전충남 통합 정부 청사진 나온다…권한 및 재정특례 주목

<속보>= 대전·충남 행정통합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발표하는 '행정통합 인센티브'에 지방분권을 위한 과감한 지원이 담길지 주목된다. 대전·충남을 시작으로 전국 곳곳에서 행정통합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지만, 권한 배분과 재정 특례·행정 운영 모델 등 정부의 통합 지자체 청사진은 '감감무소식'이라는 중도일보 보도 이후 4일 만에 정부가 전격 발표에 나선 것이다. <중도일보 1월 12일자 1면 보도> 15일 중앙정부와 대전시, 충남도, 지역 정가 등에 따르면 김민석 국무총리는 16일 오후 1시 30분 서울청사 합동브리..

3년 새 인구 두 배… 청주 오송, 산업도시 넘어 정주도시로
3년 새 인구 두 배… 청주 오송, 산업도시 넘어 정주도시로

청주 오송 인구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전국 유일의 KTX 철도분기역을 품은 청주 오송읍이 첨단 바이오산업 육성과 함께 생활 인프라 확충에 속도를 내며 살기 좋은 정주도시로 급성장하고 있다. 오송의 인구는 2022년 말 2만4862명에서 2025년 12월 기준 4만9169명으로 3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최근 1년 새 청주시 내에서 가장 큰 폭의 인구 증가를 기록한 지역도 오송이다. 청주시는 다양한 세대가 정착해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생활환경 전반에 걸친 정주여건 개선 정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고 있다. 시는..

세종 올 3000억 규모 한글문화단지 기반 다진다
세종 올 3000억 규모 한글문화단지 기반 다진다

세종시가 한글 문화도시 정체성과 위상을 더욱 확고히 한다. 올해는 3000억 원 규모의 한글 문화단지 조성 발판을 마련하고, 2027 국제비엔날레 성공 개최를 위한 '한글미술관' 건립을 통해 한글의 세계화와 산업화 기반을 다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남궁호 세종시 문화체육관광국장은 15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 같은 내용의 업무계획을 발표하고, '풍요와 품격이 있는 문화·체육·관광도시' 도약을 위한 비전을 제시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4대 핵심과제로 ▲시민과 함께하는 문화예술도시 기반 조성 ▲한글문화 중심도시 도약 ▲체육·관광 인프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충청권 ‘초미세먼지 예비저감조치` 발령 충청권 ‘초미세먼지 예비저감조치' 발령

  • 노인복지센터에 울려퍼지는 하모니 노인복지센터에 울려퍼지는 하모니

  • ‘겨울철 화재 조심하세요’ ‘겨울철 화재 조심하세요’

  • 이장우 대전시장 만난 장동혁 대표 이장우 대전시장 만난 장동혁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