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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동중 최윤주 교사. |
작은 학교에서 온 나는 모든 것이 낯설기만 했다. 새 학교에 부임하면 적응 기간이 1년이라는데 나는 그것보다 더 걸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3월 초는 정신이 없었다. 선생님들 익히랴, 학생들 익히랴.
"선생님, 제 이름 아세요?"라고 물을 때마다 "시간을 좀 더 줄래."라며 학생들의 이름과 얼굴을 익히고 있었다. 때론 이름과 얼굴의 불일치로 난감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러던 3월의 어느 날, 박 선생님께서 "교문에 어쩜 그리 멋진 말을 붙여 놓았데요? 정말 감탄했어요."하는 것이었다.
"교문에 뭐가 붙어 있어요?"
"네. 시간 내서 한번 보세요."
"난 그동안 보지 못했네요."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살고 있는 나를 자책하며,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교문에 가보니 학생들을 맞이하기 위해 붙여 놓은 현수막에는
"너희들은 우리의 봄이야."라는 따뜻한 환영 인사가 적혀 있었다. 그것도 핑크색으로 예쁘게.
교무실로 온 나는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물었고, 바로 교무부장님의 생각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러한 문구를 내걸게 된 계기도.
교무부장님이 전에 근무하던 학교에서 좋은 말을 걸었더니 그 문구에 학생들이 반응하는 것을 보고 나도 그렇게 해야지 결심했고, 이동해 온 본교에서 실천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런 이유로 "너희들은 우리의 봄이야."라는 문구는 나의 뇌리에 깊게 박혔다.
3월, 4월, 5월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적응 중이다. 그리고 3월에 걸린 감기가 5월이 된 지금도 떨어지지 않고 있다. 몸도 마음도 힘들어 하고 있다. 그러나 난 이곳에서 좋은 선생님들을 만났다.
가르치는 학생들만 보면 이뻐서 웃음이 절로 나온다는 박샘, 학생들의 장점을 눈을 뜨고 찾아보고 그 즉시 폭풍 칭찬을 한다는 윤샘, 학생들에게 져 주어야지 어떻게 하겠냐는 박샘, 학생들 입장에서 생각하고 챙겨주는 이샘, 학생들의 눈높이로 바라봐 주는 위샘, 학생들에게 좋은 프로그램 하나라도 더 해주고 싶다는 신샘 등 선생님들을 통해 나는 배우고 있다. 각각 다른 색채를 띠고 아롱이다롱이인 우리의 봄과 살아가는 법들을.
세상 어느 곳에서 "○○샘." 하고 나를 스스럼없이 부르겠는가? ○○샘에게 자기 고집을 꺾지 않고 할 말을 다하겠는가? 누가 더 귀엽냐고 묻겠는가?
나는 나이 많은 티를 내며 우리의 봄들에게 "그저 웃지요."라는 시 한 구절로 대답을 대신한다.
그런 봄들에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크고 작은 아픔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몸의 아픔은 시간이 지나면 낫지만 마음의 아픔은 오래오래 상처로 남아 있었다. 그들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단지 이름을 불러주는 것뿐이었다.
김춘수 시인은 '꽃'이라는 시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했다. 내가 그들의 이름을 힘주어 불러 주었을 때 그들은 나에게 봄이 됐다.
아직은 이른 봄이라 많은 시련을 겪고 이겨내며 나아갈 터이지만, 그들이 온갖 어려움을 잘 이겨내고 희망찬, 그리고 새로운 봄을 맞이할 것임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제 나에게는 봄을 만날 시간들이 많이 남지 않았다. 내가 걸어온 길이 걸어갈 길보다 훨씬 더 많으니 말이다. 그래서 올해 만난 봄들에게 더 정이 가는지도 모르겠다. 날마다 티격태격하면서도 되돌아서서 웃음을 짓는 것을 보면.
하루하루가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끼며, 우리의 봄들과 순간순간을 행복하게 영위해 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너희들은 우리의 봄이야'라고 표현한 교무부장님의 그 아름다운 마음이 그리고 금산동중의 선생님들의 마음이 학생들에게 전해져 해마다 아름다운 봄을 맞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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