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다문화] 차 한 잔

  • 다문화신문
  • 천안

[천안다문화] 차 한 잔

  • 승인 2025-07-20 13:13
  • 수정 2025-07-20 13:14
  • 신문게재 2024-12-08 2면
  • 충남다문화뉴스 기자충남다문화뉴스 기자
할머니께서는 식사를 마치시면 늘 녹차를 드셨다. 남부철기(南部鉄器)로 만든 큐스(急須)에 녹차 잎 한 숟가락을 넣고 따뜻한 물을 부어 40초 동안 우려낸 후, 유노미(湯呑み)에 가득 채우시곤 했다. 정성 들여 우려낸 그 녹차에서는 진한 쓴맛 속에 은은한 단맛이 배어나는 깊은 풍미를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일본에서 녹차는 시즈오카나 교토 우지처럼 지역마다 고유의 풍미를 지닌 고급 찻잎이 있으며, 단순한 음료를 넘어 하나의 '문화'로 소중히 여겨진다.

반면 한국에서는 녹차 외에도 다양한 차를 경험했다. 감잎차, 옥수수차, 둥굴레차 등 '의식동원(醫食同源)'이라는 말처럼 건강을 중시하는 차가 풍부했다. 모두 향긋하고 몸에 좋으며 부드러운 맛이었다. 처음 한국에서 녹차를 마셨을 때, 일본 녹차의 쓴맛에 익숙했던 나에게는 자극적이지 않고 연하게 느껴졌다. 일본 녹차의 떫고 진한 맛만 알던 시절에는 그것이 '맛있는 차'라고 생각했으니까 한국에 와서 처음 접한 티백 녹차는 연하게 느껴져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과 함께 광덕사를 방문했다. 사찰 안을 걷다가 우연히 스님 한 분을 만났고, 멀리서 왔다는 저희에게 차를 대접해 주시겠다며 아담한 방으로 안내해 주셨다. 스님께서 건네주신 차 한 잔은 연한 노란빛을 띠고 있었으며,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이었다. 그 차를 마시며 느꼈던 마음의 편안함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전에는 한국 하면 김치나 불닭처럼 붉고 매운 자극적인 음식만을 떠올리기 쉬웠다. 하지만 사찰에서의 차 경험을 통해 한국 문화의 또 다른 면을 알게 된 듯한다. 매운맛 일색의 한국 음식 뒤에 숨겨진, 마음을 진정시키고 편안함을 선사하는 차분하고 부드러운 문화적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굳이 그 나라에 가지 않아도 다양한 차를 쉽게 구할 수 있다. 차 맛은 단순히 찻잎의 종류뿐 아니라 그 땅의 공기, 물, 기온, 그리고 함께했던 사람들에 따라 다르게 기억된다. 일본 녹차의 떫은 맛은 식사 후 차를 우려주시던 할머니를 떠올리게 하고, 한국 사찰에서 마신 부드러운 녹차는 복잡한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었던 평온의 순간을 상기시킨다. 때로는 매운 음식을 먹은 후 달콤한 믹스 커피나 아이스 커피가 생각나듯, 마음을 진정시키거나 집중해야 할 때는 쌉싸름한 일본 녹차가, 편안함이 필요할 때는 부드러운 한국의 차가 각기 다른 매력과 의미를 지닌 이 모든 차들이 그 자체로 소중한 차 한 잔이다.
오노이쿠요(일본)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천안시의회 노종관 의원 대표발의, '천안시 건축 조례 일부개정조례안' 본회의 통과
  2. 21년 만의 행정수도 재추진...3가지 관문 통과가 관건
  3. 일상 속 위험, 예방이 먼저!
  4. 원모어아이 v2.0, 조달청 혁신제품 선정...기술력 입증
  5. 국세청, 집중호우 피해 납세자에 세정지원 강화
  1. 매월 22일 '소등의 날' 실천...세종시민이 탄소중립 선도
  2. 타이어뱅크(주)의 서비스 혁신·지역사회 나눔....7월에도 쭈욱~
  3. 19일 오후부터 충청권에 또 폭우…오전까지 침수·담장 붕괴 등 비 피해
  4. 지역 어르신들에게 삼계탕 선물
  5. 천둥 번개 동반한 강한 비… 대전·세종·충남 최고 150㎜

헤드라인 뉴스


정청래 62.7% 충청서 기선제압 …與 당권주자들 해수부 논란엔 `침묵`

정청래 62.7% 충청서 기선제압 …與 당권주자들 해수부 논란엔 '침묵'

더불어민주당 8·2 전당대회 첫 지역 순회 경선인 충청권 권리당원 선거인단 투표에서 정청래 후보가 62.77%의 득표율로 중원을 민심을 잡으면서 기선을 제압했다. 그러나 정작 충청권 강력 반발하고 있는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 논란에 대해 당권 주자와 최고위원 등 세 명의 후보 모두 한마디도 하지 않아 지역 민심을 외면했다는 비판이 거세다. 19일 민주당에 따르면, 충청권 권리당원 투표 결과 정청래 후보가 3만 5142표(62.77%)를 획득하며 2만 846표(37.23%)를 얻은 박찬대 의원을 큰 격차로 제쳤다. 투표에는 전체 권리당..

제10회 대한민국 국제 관광박람회 18일부터 나흘간 개최
제10회 대한민국 국제 관광박람회 18일부터 나흘간 개최

올해로 10회를 맞은 대한민국 국제 관광박람회(KITS:Korea International Tourism Show)가 18일부터 21일까지 나흘간 일산 킨텍스 제2전시장 7홀에서 열린다. 대한민국지방신문협의회와 KITS조직위원회가 공동 주최하고 ㈜한국전시산업원이 주관하는 이번 박람회는 국내외 관광업계 정보 제공의 장과 관광객 유치 도모를 위한 비즈니스의 장을 마련해 상호 교류의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할 예정이다. KITS는 관광객 유치를 위해 지역별 특색을 살린 여행 콘텐츠와 국제 관광도시 및 국가 홍보, 국내외 관광 콘텐츠 간 네트워..

[이슈현장] 꿀벌이 사라진다… 기후위기 속 대전양봉 위태
[이슈현장] 꿀벌이 사라진다… 기후위기 속 대전양봉 위태

우리에게 달콤한 꿀을 선사해주는 꿀벌은 작지만 든든한 농사꾼이기도 하다. 식탁에 자주 오르는 수박, 참외, 딸기 역시 꿀벌들의 노동 덕분에 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 세계 식량 공급의 약 90%를 담당하는 100대 주요 농산물 중 71종은 꿀벌의 수분 작용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꿀벌들이 사라지고 있다. 기후변화와 '꿀벌응애'라는 외래종 진드기 등장에 따른 꿀벌 집단 폐사가 잦아지면서다. 전국적으로 '산소호흡기'를 들이밀듯 '꿀벌 살리자'라는 움직임이 일고 있으나 대전 지역 양봉..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민생회복 소비쿠폰 신청, 지급 D-1 민생회복 소비쿠폰 신청, 지급 D-1

  • 위험한 하굣길 위험한 하굣길

  • 폭우에 대전 유등천 교량 통제 폭우에 대전 유등천 교량 통제

  • 민생회복 소비쿠폰 접수창구 준비 민생회복 소비쿠폰 접수창구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