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나의 제자 이야기

  • 오피니언
  • 교단만필

[교단만필] 나의 제자 이야기

정지수 천안청수고등학교 교사

  • 승인 2025-06-20 14:34
  • 신문게재 2025-06-20 18면
  • 오현민 기자오현민 기자
20250619_천안청수고 교사 정지수
정지수 천안청수고 교사.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나의 제자 현우에 대해 얘기해 보려 한다.

처음 현우와 만났을 때는 2020년 코로나가 창궐한 시대로 3, 4월을 등교하지 못하고 원격 수업만 하던 시기였다. 두 달간 아이들의 얼굴을 모른 채 담임지도를 하다가 5월 처음 아이들을 직접 만나게 됐다.



그러다 보니 보통 3월에 시작해야 할 학생 상담이 5월에 등교수업이 이루어지고 나서야 늦게 시작되었다. 현우와 상담을 하는데 현우가 대회에 나간다고 했다.

"대회? 무슨 대회?"



"저 전국 청소년 마술 대회 나가요."

그때 처음 현우의 진로와 꿈에 대해서 알게 됐다. 국내에서 마술을 가르치는 곳이 흔치 않아서 부모님을 떠나 이곳으로 누나와 이사를 왔다는 것. 방과 후 매일 마술 학원에 가서 마술을 배우고 있으며 종종 마술 공연에 제작진으로 일도 돕고 있는 것. 그리고 코로나로 공연이 많이 취소되어 무대 경험을 쌓기 힘들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번 대회도 코로나로 취소될 뻔하다 겨우 열렸다는 것이다. 대회를 위해 밤새 준비한다는 현우의 말에 수업 시간마다 꾸벅꾸벅 졸던 현우의 모습이 이해가 됐다.

현우는 유튜브로 대회를 실시간 중계도 하니 꼭 보라고 당부까지 했다. 약속대로 실시간 중계되는 현우의 모습을 지켜봤다. 서정적인 음악을 배경으로 한 개의 공이 순식간에 다섯 개가 됐다가 연기 속으로 다섯 개의 공이 사라지는 마술이었다. 그리고 현우는 대상을 탔다.

나중에 현우가 이은결이나, 최현우처럼 공연도 하고 방송에도 나올 만큼 유명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교육청에서 지원하는 예체능 장학금도 신청해 받게 해줬다. 그 장학금이 인연이 돼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청소년 공연에 현우가 초대되기도 했다.

고입 원서를 쓸 시기가 됐을 때, 현우에게 예고나 인문계고를 추천했다. 예고를 가면 학교에서 계속 마술을 연습할 수 있고, 인문계고를 간다면 학교에 현우의 상황을 설명하고 방과후 수업이나 야자 없이 오후에는 온전히 마술 연습에 몰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우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 당시 나는 현우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검정고시를 치르고 마술 연습에 전념하겠다는 현우의 계획은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 코로나로 인해 공연 기회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현우의 장래가 어떻게 될지 보장할 수 없다. 그리고 분명 학교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고 그것들을 현우가 배우고 어른이 되길 바랐다. 바로 현우 어머니에게 전화해서 설득을 했다. 현우 어머니도 나의 생각에 공감을 하지만 현우의 고집을 꺾기 힘들다고 하셨다.

정규교육과정에 따라 대학을 입학하고 임용에 합격하여 안정적인 직업을 갖는 과정에서 나는 어른들의 말을 따라왔다. 그게 맞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현우도 나처럼 어른들이 말한 길을 따라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고입 원서를 써보자. 다녀보고 고등학교가 안 맞으면 그때 자퇴하면 돼. 학교 가서도 충분히 연습할 수 있을 거야."

미성년자가 학교의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외롭다는 것을 강조했다. 현우는 마지못해 원서를 썼지만 결국 고등학교 입학을 포기했다. 그때 나는 교사로서 한계를 느끼며 뒤에서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더 경력이 많은 교사였다면? 더 능력 있는 교사였다면? 현우를 더 잘 설득하지 않았을까? 눈물이 날 만큼 현우를 아꼈고 현우가 선택한 길이 너무 무모해 보였기 때문에 속상했다.

"선생님, 우리 곧 졸업인데 급식 같이 먹어요."

현우의 말 한마디에 나는 냉큼 학생 줄에 서서 급식판을 들고 현우와 나란히 앉아 급식을 먹었다. 나는 실질적으로 현우의 마지막 선생님인 것이다. 많은 대화들이 오가면서 여전히 현우가 고입을 포기한 것이 아쉬웠다. 그렇게 현우는 졸업을 했다.

시간이 흘러 코로나 격리는 해제되었고 현우에게 어느 날 전화가 왔다. 현우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건강하고 밝았다. 그동안 내 시야가 얼마나 좁고 경직됐는지, 그리고 현우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뻤다. 그때 같이 급식을 먹으며 했던 얘기를 다시 떠올려본다.

"현우야, 언제나 선생님은 너의 담임선생님이야. 항상 응원할게. 힘들면 언제든지 연락해. 기다릴게."

언젠가 다시 찾아올 현우의 전화를 기다리며 나는 오늘도 학교에 출근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세종~충북 CTX' 완공 로드맵 가시권
  2. 총경 승진도 저조한데 경정 이하 승진도 적어… 충남경찰 사기저하·인력난 심각
  3. 대전·충남 통합 특별법 통과 시 매년 9조 6274억원 더… 충남도, 특별법 원안 반영 TF 회의
  4. "대전·충남 통합 때 권역별 인사교류" 장동혁 발언에… 교육계 "통합 취지 무색" 반발 여전
  5. 꿈돌이 호두과자 3호점 개소... 관광 핵심 거점 기대
  1. 대전시, 16일 6시부터 초미세먼지 고농도 비상저감조치 발령
  2. [사이언스칼럼] 국가 전력망의 '대동맥' 충청, 에너지 신산업의 '심장'으로 뛰어야
  3. 16억 전세금 갖고 해외도피한 50대, 경찰 추적 2년만에 검거
  4. 대전동부서, 어르신 대상 '2026 달라지는 도로교통법' 설명나서
  5. 충돌 후 전복된 차량에서 2명 구조한 32사단 김은광 상사 '칭찬혼쭐'

헤드라인 뉴스


"통합시 4년간 20조 지원, 서울시 준하는 지위 부여"

"통합시 4년간 20조 지원, 서울시 준하는 지위 부여"

정부가 대전·충남 통합 시 4년간 최대 20조 재정지원, 서울특별시에 준하는 위상과 지위 부여, 2차 공공기관 이전 우대 등 인센티브 지원을 약속했다. 김민석 국무총리를 비롯해 이형일 재정경제부 차관, 최은옥 교육부 차관, 김민재 행정안전부 차관, 문신학 산업부 차관, 홍지선 국토교통부 차관, 임기근 기획예산처 차관은 1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합동 브리핑을 개최하고 '광역 지방정부 간 행정통합시 부여되는 인센티브안'을 발표했다. 김 총리는 "정부는 대한민국의 재도약을 위해 '수도권 중심 성장'에서 '지방 주도 성장'으로의 대전환을 올..

尹 체포방해 1심 징역 5년…"일신·사익 위해 경호처 사병화"
尹 체포방해 1심 징역 5년…"일신·사익 위해 경호처 사병화"

윤석열 전 대통령이 경호처 직원들을 동원해 자신에 대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체포를 방해한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백대현 부장판사)는 특수공무집행방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구속기소 된 윤 전 대통령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윤 전 대통령이 작년 1월 3일 대통령경호처 직원을 동원해 공수처의 체포를 방해한 혐의, 12·3 비상계엄 선포 당시 국무회의 외관을 갖추려 일부 국무위원만 소집해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 국무위원들의 계엄 심의권을 침해한 혐의를 유죄로..

`대전~세종~충북 CTX` 완공 로드맵 가시권
'대전~세종~충북 CTX' 완공 로드맵 가시권

대전~세종~충북을 잇는 충청광역급행철도(CTX)의 완공 로드맵이 2026년 조금 더 가시권에 들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15일 충청권 광역급행철도(CTX) 민간투자사업 환경영향 평가 항목의 등의 결정내용을 공고하면서다. 지난해 11월 CTX 민자적격성 검토 통과에 따른 후속 절차 성격이다. 다음 스텝은 오는 2~3월경 전략 환경영향 평가서 초안 제출과 공람 및 주민의견 수렴으로 이어진다. 최초 사업제안서를 제출한 DL(대림)이엔씨 외 제3자 사업자 공모 절차는 올 하반기를 가리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최종 사업자가 선정되면, 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세종·충남, 올 겨울 첫  고농도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시행 대전·세종·충남, 올 겨울 첫 고농도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 시행

  • 충청권 ‘초미세먼지 예비저감조치` 발령 충청권 ‘초미세먼지 예비저감조치' 발령

  • 노인복지센터에 울려퍼지는 하모니 노인복지센터에 울려퍼지는 하모니

  • ‘겨울철 화재 조심하세요’ ‘겨울철 화재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