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노년의 삶과 그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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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디세이] 노년의 삶과 그 의미

양성광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

  • 승인 2025-08-04 11:14
  • 수정 2025-08-04 11:20
  • 신문게재 2025-08-05 18면
  • 심효준 기자심효준 기자
양성광 원장
양성광 원장
큰맘 먹고 휴가를 내서 아이가 직장에 다니고 있는 뉴욕 맨해튼에 1주일 동안 다녀왔다. 늘 보살펴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아이는 어느새 훌쩍 자라 어른이 되었나 보다.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핫플레이스를 구경시켜 주고 식당도 척척 예약해 주었다. 한편으론 대견하면서도 이제는 내가 보살핌의 대상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약간 이상해지기도 했다. 우리 아버지도 그런 마음이었을까? 늘 나를 대견스레 바라보시고 허허 웃기만 하셨었는데. 허연 머리칼과 깊게 파인 이마 주름 속에 감춰져서 그렇지, 당신의 삶은 그때도 여전했었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자신은 굶어도 자식 먹을 것은 어떻게든 챙겼었고, 지긋지긋한 가난의 굴레를 끊고자 자식 교육에 '올인'했었다. 그들 대부분이 돌아가시고 남은 빈자리를 이제 그들의 자식들이 채우고 있다. 이들도 이미 나이로는 노인이 되었지만, 몸과 마음은 아직 청춘이다. 은퇴했지만 아직 돈을 더 벌어야 하고, 보살핌을 받을 나이지만 아직도 부모를 모시거나 자식을 끼고 사는 이가 많다. 은퇴해 한숨 돌릴 새도 없이 어쩌면 이전보다 더 치열한 생활 전선과 마주한다.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부부의 노후와 챙겨야 할 가족에 비해 모아 놓은 돈이 턱없이 부족하다. 기껏해야 딸랑 집 한 채에 몇 년 치 연봉 정도 모아놨는데 매달 꼬박 내야 할 것은 왜 그리 많은지. 몇 달을 버티다 결국은 재취업 시장에 내몰리는 경우가 많다. 통계청의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60세 이상 취업자 수는 1년 전보다 37만 명 늘었으며, 고용률은 48.3%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고용률이 이처럼 높은 것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절실함이 커서 단순노동이나 비정규직 등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벌어 놓은 돈이 많아서 험한 일에 내몰리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고 이들이 모두 은퇴 후를 유유자적하게 보내는 것은 아니다. 이들도 대책 없이 늘어난 수명을 감당키 힘든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가장 힘든 점은 아직 일할 수 있고 건강도 괜찮은데, 할 일만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들이 은퇴하여 가정에서 접하는 최신식 전자기기는 낯설고 익숙지 않아 매사에 서툴다.

그래도 험난한 시대를 버텨온 내공으로 하나씩 적응해 가지만 불현듯 이런 삶의 의미가 뭐지 하는 회의가 밀려올 수 있다. 벗어나려면 현실을 인정하고 자신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쉽지 않다. 어찌저찌 적응한다 해도 어쩔 수 없는 무력감에 빠져 시간만 흘려보내기 십상이다.

나는 몇 년 전 운 좋게도 은퇴 전에 하던 일과 관련 있는 곳에 재취업해서 인생의 보너스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예전에 한창 바둥거리던 때만큼은 아니지만 다시 에너지가 솟아 새 업무에 열정을 쏟아도 피곤하지 않다. 그러나 가끔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몸이 굳어 그런가 하고 부러 더 열심히 움직여 보지만, 결국은 노쇠해져서 그런 것 같다. 건망증도 심해져서 신호등 파란불의 엔딩 깜박임처럼 깜박하는 것이 더 자주 일어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일머리는 그대로인지 아니면 오랜 경험 덕분인지 골칫거리 업무도 해결 방안과 처리할 순서가 곧바로 선명히 떠오른다.

북미에서는 겨울의 문턱에서 갑자기 찾아오는 짧은 기간의 따뜻한 날씨를 '인디언 서머'라 부른다. 은퇴 후 운 좋게 맞은 내 인생의 인디언 서머는 내게 남은 생의 의미를 찾는 좋은 시간이 되고 있다. 연어는 바다에서 수천 킬로미터를 헤엄쳐 자신이 태어난 강물로 거슬러 오른다. 수컷은 암컷이 힘들여 산란한 알을 지키려 뼈가 드러나도록 자갈을 헤치고, 포식자들을 막아낸다. 그 끝엔 죽음이 기다리지만, 연어는 흔들리지 않는다. 살아 있었던 이유가 그것이기 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내가 살아 있는 이유와 앞으로도 살아갈 의미를 찾아야 살이 터지고 뼈가 드러나도록 마지막 힘을 다할 수 있을 텐데…. /양성광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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