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탈출 광복군 투신한 아버지, 손자들에게 알려줄래요"

  • 사회/교육
  • 국방/안보

"일본군 탈출 광복군 투신한 아버지, 손자들에게 알려줄래요"

광복절 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가보니
대한청년애국당 재무감독 문봉의 지사 손자
징집에서 벗어나 광복군 된 신의철 지사 딸

  • 승인 2025-08-16 09:46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IMG_4962
국내에서 중국 상해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원 비밀결사 활약한 문봉의 애국지사의 손자 문수천 씨가 묘비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임병안 기자)
광복 80년을 맞은 2025년 8월 15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된 위인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려는 발길이 이어졌다.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대한독립애국단과 혈복단으로 활약하며 임시정부를 도운 문봉의 애국지사의 손자를 비롯해 일본군을 탈출해 광복군에 합류한 신의철 지사의 딸을 만나 독립운동 공훈록에도 담기지 않은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독립유공자 2묘역에서는 문봉의(1878~1937) 애국지사의 둘째 손자인 문수천(82) 씨는 묘소 잔디밭에 앉아 할아버지의 묘비에 적힌 생몰년도와 공적을 적은 묘비문을 종이에 옮겨서 쓰고 있었다. 낮 최고 31도까지 오르는 무더운 날씨였고, 그늘 한점 없는 묘소에서 그는 생각에 잠긴 듯 한참을 앉아 있었다. 충남 태안군 안면에서 태어난 문봉의 애국지사는 3·1운동 이후 우리 민족의 정부로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이후 '제2차 독립시위운동'을 전개하기 위한 대한청년애국당에 1919년 가입해 재무감독을 맡았다. 대한청년애국당은 국내에서 중국 상해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는 비밀결사로써 국내에서 군자금을 모아 임시정부에 조달하고, 임시정부의 선전활동과 각종 명령을 이행해 저항과 독립을 향한 불씨를 지피는 역할을 했다. 문봉의 지사는 논산 출신의 신현구와 함께 조직을 충청도로 확장하고, 군자금 200원을 모금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전달했다. 1919년 11월 하순경 대한독립애국단장 신현구가 일제 경찰에 붙잡히고 애국단을 계승하는 조직으로 혈복단(血復團)을 결성하고, 문봉의 지사가 충청남도단의 대표를 맡았다. 1920년 1월 일본경찰에 대한독립애국단 조직의 전모가 드러나면서 문 지사 역시 체포되어 1920년 12월 2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4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당시 일제가 문 지사에게 '정치범죄, 출판법 위반, 보안법 위반, 공갈취재'라는 굴레를 씌워 처벌한 판결문이 남아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손자 문수천 씨는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에 헌신하셨다는 이야기는 아버지 때까지는 잘 모르고 지냈고, 저희 손자 때에 와서 외손자가 기록을 조사해서야 알게 돼 정부에 독립유공자 지정을 신청할 수 있었다"라며 "서대문형무소에서 4년의 옥고를 치르고 대전 유성으로 돌아와 딸의 수발을 받으며 여생을 보내셨는데, 돌아가셔서 산에 모실 때 독립운동가의 묘소라고 알려져 일경에 묘가 파헤쳐질까봐 봉분을 세우지 못하고 평장으로 모셨다"고 설명했다. 이어 문 씨는 "독립운동에 전념한 남편을 대신해 서산에서 가정을 살핀 할머니까지 이곳 현충원으로 함께 모셨으니 다행이고, 후손들이 의미를 알고 더 자주 찾아왔으면 좋겠다"라고 당부했다.

IMG_4970
독립운동에 헌신한 신의철 애국지사의 딸 신미자(69) 씨가 8월 15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13살 9살 두 손자에게 80여 년 전 증조할아버지의 생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임병안 기자)
이어 독립유공자 3묘역에서 신의철(1922~2003) 애국지사 묘소에서 할머니부터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자들까지 참배가 이뤄졌다. 신의철 지사는 1944년 일본군에 징집된 이후 중국 전선에서 탈출해 광복군 제2지대 합류해 광복군 소속으로 대일 선전·심리전에서 활약했다. 일제는 태평양전쟁에서 연속된 패배로 전황이 불리해지자 1944년 중국 대륙에서의 대공세를 계획하고, 전시 동원체제를 한반도에까지 강요해 1923년 12월 1일 이후 출생한 조선인 남성을 일괄 징집했다. 신의철 지사도 경기도 강화군에서 징집되어 중국 저장성 일대에 주둔하는 일본군 부대에 배속되었고, 충칭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같은 부대에 배속된 한국인 징집병 김권·김영관·박승유와 함께 탈영해 임시정부에 귀순하고자 하는 계획을 세워 1944년 12월 3일 일본군 부대를 탈출했다. 이때 신의철 지사는 저장성 둥양현(東陽縣)에서 출발해 장시성 옌산(鉛山)까지 1000㎞를 걸어서 이동해 마침내 한국광복군을 만났다. 그는 옌산(鉛山)일대를 순회하며 일본군을 대상으로 한 선전과 사기 저하 작전에 참가하였으며,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일본의 만행과 식민 통치 하 한반도의 현실을 알렸다.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패망하자 국민혁명군을 도와 중국 내 일본군의 무장해제 작업과 관할 내 치안 유지, 한국인들의 신변 보호, 귀국 절차 원호를 담당하다가 1946년 3월 상해에서 미군 수송선을 타고 부산항으로 귀환했다. 정부는 1990년 그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이날 신의철 지사의 딸 신미자(69) 씨는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13살과 9살 두 손자의 손을 잡고 아버지 묘소를 찾았다. 신 씨는 묘소 앞에서 두 손자에게 할아버지가 살아온 삶을 소개하고 가족사진을 남기며 아이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이어지도록 노력했다.

신미자 씨는 "아버지는 일본군 부대를 탈출할 때 팔에 총상을 입었고 탈출 과정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는데, 외투 안쪽에 할아버지가 새겨준 태극기 덕분에 일본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중국 주민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고 들었다"라며 "귀국 후 청년시절에는 민족청년단 하점지대장으로 활동하고, 근면성실한 농업인의 삶을 사셨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신 씨는 "삼일절이나 광복절이면 아버지는 총상 입은 팔을 주무르면서 곧잘 눈물을 흘리셨는데 나라를 잃어 이름도 바꾸고 우리말도 못 쓰게 강요당하던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나서 그렇다고 하셨다"라며 "저희에게는 나라와 민족, 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셨고, 저도 아들 내외와 손자들에게 할아버지 고귀한 뜻을 전하기 위해 인천에서 함께 찾아왔다"라고 말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2030년 행정수도 거점의 광역교통망 촘촘히 구축
  2. 천안시 인구 71만명 돌파
  3. 기나긴 공방 끝, 지천댐 건설 동력 확보… 기후부, 충청권 메가프로젝트 용수 수요에 '다목적댐' 추진
  4. 교육비 격차 벌어졌는데 장학금은 평균 웃돌아… 대전 대학 엇갈린 지표
  5. 충남대 국립공주대 통합신청서 통과…구성원 찬반투표 본격화
  1. "몸무게 23.6㎏ 저는 대전샛, 우주탐험 준비마쳤어요"
  2. 특진·포상 받은 수사, 무죄 나면?… 경찰개혁 ‘사후검증’ 과제
  3. [교단만필] 가을에 피는 꽃을 어찌 늦다 하겠는가
  4. [2027 수시로 간다-대학의 색, 미래의 선택] 목원대, 전공의 벽 허물고 AI 대학으로 혁신
  5. 농지 규제 대폭 완화… 농업 외 종합 소득금 상향

헤드라인 뉴스


특진·포상 받은 수사, 무죄 나면?… 경찰개혁 ‘사후검증’ 과제

특진·포상 받은 수사, 무죄 나면?… 경찰개혁 ‘사후검증’ 과제

경찰 송치 이후 불기소나 무죄로 뒤집힌 사건까지 추적해 기존 수사 성과를 다시 평가하는 시스템 마련이 경찰개혁의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경찰이 사건 무작위 배당과 수사심사 강화, 우수 수사관에 대한 포상·승진 확대 등을 추진하는 만큼 잘한 수사뿐 아니라 결과가 뒤집힌 수사도 사후 검증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검거나 수사 실적으로 특별승진이나 포상을 받은 뒤 해당 사건이 불기소나 무죄로 끝난 경우 이를 어떻게 평가하고 인사에 반영할 것인지도 논의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27일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은 전날 오후 '경찰 범죄 수사..

담배꽁초 하나에 유성 카센터 2억 화재… 항소심도 벌금 500만원
담배꽁초 하나에 유성 카센터 2억 화재… 항소심도 벌금 500만원

담배꽁초를 제대로 끄지 않은 채 버려 2억 원이 넘는 화재 피해를 낸 남성이 항소심에서도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전지법 제2-2형사부는 실화 혐의로 기소된 A 씨의 항소를 기각하고 벌금 5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유지했다. A 씨는 2025년 3월 23일 낮 12시 13분께 대전 유성구의 한 카센터 앞에서 담배를 피운 뒤 담배꽁초를 바닥에 버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 씨가 현장을 떠난 뒤 약 4분 만에 카센터 건물 외벽에서 불이 났고, 외벽과 천장 등이 타면서 수리비 약 2억 1125만 원 상당의 피해..

2030년 행정수도 거점의 광역교통망 촘촘히 구축
2030년 행정수도 거점의 광역교통망 촘촘히 구축

충청권이 행정수도 세종시를 중심으로 한 그물망 광역교통망으로 한층 가까워진다. 2029년 대통령 세종 집무실, 2033년 국회 세종의사당 시대를 앞두고 메가시티, 즉 광역연합의 시너지 효과도 커질 전망이다. 청주공항~KTX오송역~조치원역~대전역~세종터미널~유성터미널~KTX공주역까지 각 지역 교통 거점에다 국회 세종의사당을 잇는 별도 노선들도 속속 계획되고 있다.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하 행복청, 청장 강주엽)은 28일 청주국제공항(한국공항공사 청주지사)에서 제34차 행복도시 광역계획권 교통협의회(이하 광역교통협의회)를 열고, 이..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가을을 재촉하는 비 가을을 재촉하는 비

  • 대입 수시 앞 실기준비 ‘구슬땀’ 대입 수시 앞 실기준비 ‘구슬땀’

  • ‘청렴문화 함께 만들어요’ ‘청렴문화 함께 만들어요’

  • ‘온통대전 2.0’ ‘온통대전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