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처=ぽんきち 블로그 |
도시락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우연이었다. 남편의 직장에서 식당 보수 공사로 사흘간 점심을 각자 해결하라는 공지가 내려온 것이다. 외식을 하거나 음식을 시켜 먹을 줄 알았는데, 남편은 도시락을 부탁했다. 처음엔 내키지 않았지만, "혹시 다른 직원들이 도시락을 챙겨온다면?" 하는 묘한 자존심이 발동했다. 맞다! 도시락문화인 일본에서 왔는데…. 결국 여러 반찬을 곱게 담아 도시락을 내주었고, 남편은 초등학생처럼 들뜬 얼굴로 직장에 나갔다.
그날 저녁, 남편은 빈 도시락통을 내밀며 "아무도 도시락을 안 가져왔더라"라고 말했지만, 얼굴에는 흐뭇함이 가득했다. 직장 동료들이 "부럽다", "좋겠다"라는 말을 건넸다며 즐거워했다. 그렇게 사흘간의 도시락은, 남편에겐 작은 자랑거리가 되었고 나에게는 오래된 기억을 불러왔다.
그 기억은 어머니의 도시락이었다. 직장생활을 병행하시면서도 아버지 도시락을 20년 넘게 준비하셨고, 오빠와 나까지 합쳐 하루 세 개의 도시락을 6년 동안 만들어주셨다. 누구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하며 정성을 기울였던 그 시간은 지금 생각해도 경이롭다. 일본의 많은 아이들이 바로 그런 도시락을 통해 부모의 사랑을 느끼며 성장한다. 한국의 급식 제도가 효율적일 수 있지만, 그 정성 어린 손길은 대체하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한편, 도시락에 얽힌 내 개인적인 기억도 있다. 한국에 와서 딸이 유치원에서 소풍 가는 날이었다. 나는 일본식 캐릭터 도시락을 정성껏 준비했다. 포켓몬 모양으로 꾸민 도시락에 뿌듯했지만, 돌아온 딸은 울며 말했다.
"엄마, 다들 김밥인데 나만 포켓몬이야!"
순간 속이 허탈했지만, 생각해 보면 그 또한 웃음 섞인 추억이 되었다. 도시락은 단순히 끼니를 해결하는 도구가 아니라, 가족의 관계와 문화, 그리고 세대 간 기억을 이어주는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이즈미야마시가꼬 명예기자(일본)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