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다문화] 도시락이 불러온 기억과 마음

  • 다문화신문
  • 세종

[세종 다문화] 도시락이 불러온 기억과 마음

  • 승인 2025-10-16 10:13
  • 신문게재 2025-10-16 8면
  • 이은지 기자이은지 기자
10월 도시락이 불러온 기억과 마음 (시가꼬)
/출처=ぽんきち 블로그
올해 들어 점심은 직접 만든 도시락으로 해결하고 있다. 10월이 된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은 단순함에 있다. 전날 저녁 반찬을 그대로 담거나, 계란말이와 소시지처럼 누구나 금세 만들 수 있는 음식을 준비한다. 겉으로는 소박하고 부실해 보이지만, 이 습관에는 작은 사연이 깃들어 있다.

도시락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우연이었다. 남편의 직장에서 식당 보수 공사로 사흘간 점심을 각자 해결하라는 공지가 내려온 것이다. 외식을 하거나 음식을 시켜 먹을 줄 알았는데, 남편은 도시락을 부탁했다. 처음엔 내키지 않았지만, "혹시 다른 직원들이 도시락을 챙겨온다면?" 하는 묘한 자존심이 발동했다. 맞다! 도시락문화인 일본에서 왔는데…. 결국 여러 반찬을 곱게 담아 도시락을 내주었고, 남편은 초등학생처럼 들뜬 얼굴로 직장에 나갔다.

그날 저녁, 남편은 빈 도시락통을 내밀며 "아무도 도시락을 안 가져왔더라"라고 말했지만, 얼굴에는 흐뭇함이 가득했다. 직장 동료들이 "부럽다", "좋겠다"라는 말을 건넸다며 즐거워했다. 그렇게 사흘간의 도시락은, 남편에겐 작은 자랑거리가 되었고 나에게는 오래된 기억을 불러왔다.

그 기억은 어머니의 도시락이었다. 직장생활을 병행하시면서도 아버지 도시락을 20년 넘게 준비하셨고, 오빠와 나까지 합쳐 하루 세 개의 도시락을 6년 동안 만들어주셨다. 누구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하며 정성을 기울였던 그 시간은 지금 생각해도 경이롭다. 일본의 많은 아이들이 바로 그런 도시락을 통해 부모의 사랑을 느끼며 성장한다. 한국의 급식 제도가 효율적일 수 있지만, 그 정성 어린 손길은 대체하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한편, 도시락에 얽힌 내 개인적인 기억도 있다. 한국에 와서 딸이 유치원에서 소풍 가는 날이었다. 나는 일본식 캐릭터 도시락을 정성껏 준비했다. 포켓몬 모양으로 꾸민 도시락에 뿌듯했지만, 돌아온 딸은 울며 말했다.

"엄마, 다들 김밥인데 나만 포켓몬이야!"

순간 속이 허탈했지만, 생각해 보면 그 또한 웃음 섞인 추억이 되었다. 도시락은 단순히 끼니를 해결하는 도구가 아니라, 가족의 관계와 문화, 그리고 세대 간 기억을 이어주는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이즈미야마시가꼬 명예기자(일본)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서울공항 인근 도심 상공 전투기 곡예비행... 안전불감증 도마
  2. <속보> 이상민 국민의힘 대전시당위원장 별세
  3. 옛 파출소·지구대 빈건물 수년씩… 대전 한복판 중부경찰서도 방치되나
  4. 차기 대전교육감 선거 진보 단일화 시작? 5명 한 자리에
  5. AI 시대 모두가 행복한 대전교육 위해선? 맹수석 교수 이끄는 미래교육혁신포럼 성료
  1. [기고] 전화로 모텔 투숙을 강요하면 100% 보이스피싱!
  2. 충남도 "해양생태공원·수소도시로 태안 발전 견인"
  3. ['충'분히 '남'다른 충남 직업계고] 논산여자상업고 글로벌 인재 육성 비결… '학과 특성화·맞춤형 실무교육'
  4. 충남교육청 "장애학생 취업 지원 강화"… 취업지원관 대상 연수
  5. 포스트시즌 준비하는 대전한화생명볼파크

헤드라인 뉴스


텅 빈 옛 파출소·지구대… 수년째 방치돼 ‘도심 흉물’

텅 빈 옛 파출소·지구대… 수년째 방치돼 ‘도심 흉물’

대전 도시철도 판암역 인근 길가에 빈집처럼 방치된 2층짜리 건물은 한때 경찰이 상주하던 파출소였다. 순찰차가 수시로 오가고 경찰이 이곳을 거점으로 판암동 일대 치안을 살폈다. 판암파출소는 2020년 3월 약 2㎞ 떨어진 곳에 새 건물을 지어 이전했고, 기존 건물은 5년째 빈 상태로 남아 있다. 경찰 조직 개편으로 대전에서 파출소와 지구대를 폐지·통합하는 과정에서 남은 청사들이 활용처를 찾지 못한 채 공실로 남아 있다. 공공청사가 단순 매각 대상으로 처리되면서 장기간 흉물로 전락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옛 중부경찰서마저..

코스피 종가 기준 최고가 경신... 3657.28에 장 마감
코스피 종가 기준 최고가 경신... 3657.28에 장 마감

미중 무역갈등 재격화 우려 속에서도 상승 출발, 3600선을 재탈환하며 장중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운 코스피가 종가 기준 최고가마저 경신했다. 15일 코스피는 전장보다 95.47포인트(2.68%) 오른 3657.28로 거래를 종료했다. 지수는 18.83포인트(0.53%) 오른 3580.64로 개장한 이후 꾸준히 고점을 높여갔고, 장 막판 한때 3659.91까지 오르는 모습을 보였다. 코스피는 전날에도 장 중 한때 3646.77까지 상승, 직전 장중 최고치(3617.86·10월 10일)를 갈아치웠으나 이후 급락해 3561.81로 장을..

`한국의 루스벨트`… 이상민 국민의힘 대전시당위원장 별세
'한국의 루스벨트'… 이상민 국민의힘 대전시당위원장 별세

'한국의 루스벨트' 이상민 국민의힘 대전시당위원장이 15일 별세했다. 향년 67세. 고인은 1958년 대전에서 태어나 대전중, 충남고, 충남대를 졸업했다. 제34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24기)를 수료한 뒤 변호사로 활동하다 현실 정치에 뛰어들었다. 17대 총선에서 대전 유성에 출마해 국회에 입성한 후 21대까지 내리 5선을 지냈다. 유성은 물론 대전, 나아가 충청발전을 위해 힘썼고, '법의 정의'를 지키고 소외계층과 사회적약자를 위한 지원에도 앞장섰다. 2023년 12월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뒤 이듬해 1월 국민의힘에 입당..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유성국화축제 개막 준비 한창 유성국화축제 개막 준비 한창

  • 이상민 전 의원 별세에 정치계 ‘애도’ 이상민 전 의원 별세에 정치계 ‘애도’

  • 포스트시즌 준비하는 대전한화생명볼파크 포스트시즌 준비하는 대전한화생명볼파크

  • 굿잡 일자리박람회 성료…취업열기 ‘후끈’ 굿잡 일자리박람회 성료…취업열기 ‘후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