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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병안 기자 |
국가인권위원회 대전인권사무소와 KAIST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가 시민과 함께하는 재난 인권영화제를 출입증 없이는 입장할 수 없는 곳에서 개최했다. KAIST 학술문화관은 동서남북 네 방향에 출입문이 하나씩 있는데 비표를 태그해서야 잠금장치가 해제돼 입장할 수 있는 곳이다. 건물 밖에 인권영화제를 알리거나 출입문을 알려주는 안내판이 하나도 없어 네 방향의 출입문을 당기고 밀어도 보면서 열려 있지 않음을 알았다. 그리고 안에서 누군가 버튼을 눌러 잠금을 해제해서야 문이 열리고 입장할 수 있을 때 시혜적 혜택을 받은 것 같았다. 인간이 차별 없이 누려야 할 그 무엇, 그리고 정상 사회라면 구성원에게 차별 없이 보장해야 할 권리가 인권이라고 생각한다. 이때 보편성이라는 개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날 인권을 주제로 한 영화 상영 장소는 반대로 시민 배제와 차별을 경험하는 장소였다.
영화 '침몰 10년, 제로썸' 상영을 시작에 앞서 KAIST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측이 마이크를 잡고 이런 설명을 한다. "세월호 선체조사위에 참여하고 계신 우리 교수님께 메일을 받았다. 이 영화에서 이야기하는 잠수함 충돌설을 말하는 것으로 진상조사를 부정하는 것이고, 과학적 분석은 잠수함 충돌에 의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상영할 영화를 선정할 때 우리는 충분히 내용을 검토하지 못했고, 영화 이야기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게 아니다. 비판적 관람해달라."
마치 상영 불가 영화를 이제 곧 보게 될 텐데 임산부와 어린이에게 폭력성과 유해성을 주최 측이 사전에 경고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오늘 상영회에 대해서도 보도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하는 자기검열이 내면에 작동하는 것을 느꼈다. 상영 후 영화를 만든 감독 및 배급PD와 대화시간도 마련되어 있는데 무슨 일이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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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IST 학술문화관 양승택 오디토리움에서 세월호를 다룬 다큐멘터리 '침몰 10년, 제로썸' 상영을 마친 뒤 윤솔지 감독과 황용운 배급PD가 관객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임병안 기자) |
89분간의 영화 상영을 마치고 관객석에 불이 들어와 돌아보니 관객은 시민 1명과 기자 그리고 KAIST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구성원으로 보이는 학생들 6~7명뿐이었다. 감독과 PD를 초청한 상영회인데도 말이다. 세월호에서 마지막까지 구조활동을 벌인 김동수 씨가 지난해 대전에서 책 '홀' 출간에 맞춰 좌담회를 열었을 때도 중구 은행동 우금치 소극장이 가득 찰 정도로 시민들께서 찾아왔는데 말이다. 그나마 감독과의 대화 시간에 학생들이 제기한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과장된 표현일 수 있는데, 유가족이 등장하는 방식에서 인터뷰에 동원되었다고 느꼈다"라든지, "진상규명과 추모 같이 가야 하는데 이러한 진상규명 목소리에 다른 활동이 무의미해질까 걱정된다"는 의견이 나왔다. 윤솔지 감독과 황용운 배급PD는 "사고 당시 유가족은 누구보다 냉철했고, 지난 10년간 유가족과 함께 지내면서 오랫동안 만든 영화로 결론을 내리려는 게 아니라 여기서부터 여러분이 시작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제작했다"라고 설명해, 유가족 동원 인터뷰나 음모론적 관점을 반박했다.
이날 상영회가 의도적이지는 않았겠으나, 결과적으로 모욕감을 안긴 것은 아닐까 되돌아본다. 그들의 비표를 소지하지 않고서는 일반 시민은 잠금을 해제할 수 없어 배제를 경험하는 장소에서 인권을 주제로 영화상영회를 열어 무관중에 가까운 텅 빈 객석을 만들어 놓고, 상영 전에 불쑥 끼어든 주최 측의 해설로써 빨간 딱지를 붙이고, 감독과 배급PD를 초청의 형식으로 불러내 '유가족 동원된 인터뷰' 따위의 질문을 던졌으니 말이다. 세월호 11년, 그때의 기억은 사그라들고 연구의 대상으로 객체화되었기 때문일까. /임병안 사회과학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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